8월 첫째 주 찬송/8월 둘째 주 찬송

220장(통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322장(통357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8월 첫째 주 찬송/220장(통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찬송시 ‘사랑하는 주님 앞에’는 몽고메리(J. Montgomery, 1771-1854)가 지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얼빈(Irvine)에서 모라비아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여섯 살 때 그의 아버지가 서인도의 바바도스 섬에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되어 제빵공장을 전전하며 고생을 하며 불우하게 자랐습니다.

그래도 몽고메리는 문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청년이 되면서 주간신문 ‘쉐필드 레지스터’(Shefield Register)에 직원으로 들어가 종래는 그 신문의 최고 경영자가 되고, 신문의 제호도 ‘아이리스’(Iris)로 바꾸어 운영하며 영국 국민이 애독하는 인기 있는 신문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찬송은 그가 쓴 장편 시 ‘영광스러운 우주’(The Glorious Universe Around)에서 4연에서 6연까지 발췌하여 만든 것이라는데요, 영국 찬송의 원문 처음은 “사랑의 띠로 하나 된 형제”(In one Fraternal bond of Love)로 시작됩니다.

그의 찬송가는 우리 찬송가에 ‘영광나라 천사들아’(118장), ‘시험받을 때에’(343장), ‘거룩하신 하나님’(통10장), ‘새 예루살렘 복된 집’(통225장), ‘이 곤한 인생이’(통536장) 등 다섯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곡명 TOWNER는 미국의 위대한 찬송작곡자인 타우너(Daniel Brink Towner, 1850-1919)의 이름이지요. 타우너는 그의 아버지가 음악교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음악에 접하게 되었고, 목소리가 좋아 17살 때부터 이미 바리톤 가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여 후에는 이름난 오라토리오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청년시절부터 자기보다 몇 십 년 연배인 루트(G.F.Root,1820-1895)나 웨브(G.J.Webb, 1803-1887) 같은 당대 뛰어난 찬송작가를 따라다니며 함께 활동을 하게 되면서 그들로부터 음악 레슨도 받게 되고, 평생 막역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35세 때부터 무디의 선교 동역자가 되어 후에 무디 성경학교의 음악과장까지도 지내고,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음악박사학위도 받았지요. 우리 찬송가에 그의 찬송이 네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찬송의 특이한 점은 ‘주님’을 노래하기 전에 ‘형제자매’를 먼저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께 나아오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고 나올 것을 당부한 말씀이고 보면 형제사랑을 강조한 첫 절은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주님 안에서 한 띠로 묶여진 믿음의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자는 내용의 이 찬송은 1절 처음부분에 관련 성구가 그대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사도행전 2;46-47상)

곧이어 ‘본’(本, example)이란 단어가 눈에 띠는데요, ‘본’이란 단어를 보니까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나는군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2;5-8)

바로 주님이 직접 제자들 앞에서 종의 모습으로 발을 씻으신 모습을 2절에서 상기 시키고, 3절에선 성찬(聖餐)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눈 사랑의 띠로 묶여진 한 형제의 끈끈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3박자의 2부 합창(Duet)은 형제자매 간의 사랑의 띠,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의 띠를 상징하는 듯하고, 4박자의 합창(Chorus)은 굳건히 주님의 본을 실천하자는 결의를 나타낸 듯합니다.

8월 둘째 주 찬송/322장(통357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찬송시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를 지은 분은 스코틀랜드의 마테슨(George Matheson, 1842-1906)목사님입니다. 그는 개신교 목사로서 당대 뛰어난 신학자요, 웅변가요, 저술가입니다. 그는 글라그고우(Glasgow)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장애를 극복하여 대학을 마쳤습니다. 오랜 후에는 에든버러(Edinburgh) 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으니까요.

그는 24세 때 목사가 되었는데, 문서 전도 작가로 활동했고, 특히 명설교자로서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테슨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각처에서 그가 있는 에든버러에 모여들기도 했다고도 하고요,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도 설교를 했다고 하니까 당시 꽤 훌륭한 설교자였던 것 같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자는 주제로 되어 있는 이 찬송 시는 덤바톤셔(Dumbartonshire)의 라우(Row)에서 지었다고 하는데, 자신이 발행한 ‘성가’(Sacred Songs, 1890)에 처음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섬김을 받으시길 원하시지요. 그래서 이 찬송의 1절에서는 헛된 신과 유일하신 하나님을 대비 시키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중에 제4계명까지가 하나님 소원 아닙니까?

그 중에서도 1절에서 첫째 되는 계명인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와 셋째 계명인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를 상기 시킵니다.

2절에서는 둘째 계명인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말씀을 떠 올리게 하고요. 이 시는 세상의 온갖 우상과 인간사에 있어서 하나님 이외의 재물과 명예, 모든 부귀영화까지도 우상의 부류에 넣고 있지요.

십계명의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는데, 3절에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하지 않겠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 서로 헤아려” 인데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서로 헤아려 산다고 하면 시기와 미움도 사라질 것이고 오직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지 않겠어요?

곡 제목인 PENITENTIA는 ‘참회’라는 뜻인데, 가사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죠? 원래 이 곡은 영국의 교회음악가인 디어리(Edward Dearle, 1806-1891)가 ‘아버지여,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만나오니’(Father, again in Jesus)란 찬송곡조로 쓴 것입니다.

이 곡은 설리반(Arthur Seyour Sullivan, 1842-1900)이 편집해 펴낸 찬송곡집(Church Hymns with Tunes, 1874)에 처음 발표하였습니다. 이 곡은 스톤(Samuel J. Stone, 1839-1876)목사님의 찬송 ‘땅의 곤고와 고생’(Weary of earth, and laden with my sin)의 곡조로도 불렸거든요. 그 찬송의 가사에 참회한다는 말이 나오면서 ‘참회’란 제목이 붙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설리반은 런던 출신으로 영국왕실 성가대와 왕립학교를 거쳐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유학한 후 왕립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활동한 아주 유명한 작곡가요, 지휘자이며 오르가니스트이지요. 많은 오페라와 오페레타, 교향곡, 서곡, 협주곡,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당시 런던에서 인기를 독점했던 음악가인데, 작위 칭호도 받은 음악사적 인물입니다.

이단(異端)이란 말이 있지요. 한자로만 보자면 ‘끝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겉으로 보기엔 똑 같은 것 같은데 끝이 조금 다른 것. 그야말로 짝퉁 교단, 짝퉁 교회인 것이죠. 교회에서 정통적 교의(敎義)에 벗어난 교단을 이단이라고 하는데, 이단이 횡횡하는 이즈음 우리들의 신앙도 짝퉁신앙은 아닐까 점검해 보며 참된 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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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