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에 가면 볼 것도 들릴 곳도 많지만 꼭 보아야 할 것 중 하나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그림 ‘키스(Kiss)’입니다. 빈의 관문인 공항에 <’키스’를 보지 못했다면 빈을 떠나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빈의 시민들이 이 그림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3년 전 어느 가을 날 오후, 나도 이 그림을 보러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의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오래전 처음 빈에 왔을 때 이 그림을 본 적이 있지만 다시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미술관에는 클림트 외의 다른 유명 화가들의 그림도 많았지만 ‘키스’의 인기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그림 앞에 둘러선 많은 사람의 틈을 비집고 드디어 그림 앞에 섰을 때 저는 처음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화려한 색깔에 압도당하고 있었습니다.
금박 기법(Gold Leaf)으로 그린 현란한 장식과 금빛 화려한 색채에서는 무언가 주술적(呪術的)인 분위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에 저는 ‘키스’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 위로 희미하게 떠오르는 다른 여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은 순종적으로 남자에게 입술을 맡기고 있는 그림 속의 여인이 아닌 언제나 당당하고 발랄한 알마 말러(Alma Mahler)의 얼굴이었습니다.
알마 말러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아내입니다. 지성과 재능과 미모를 모두 갖추었던 알마는 그 당시 빈의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여인이었습니다. 빈의 모든 유명 인사들과 염문을 뿌렸던 그녀는 말러와 결혼 전 화가 클림트와도 만났고 그에게 처음으로 입술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클림트도 알마 못지않은 바람둥이였지만 그가 ‘키스’를 그리게 된 동기가 알마와의 키스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날 그림 ‘키스’ 앞에선 제게 알마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위대한 음악도 한 여인으로부터
20세기 초 빈(Wien)에서 지휘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말러는 사교 모임에서 한 매력적인 여인을 발견합니다. 기다란 흑발의 고혹적인 자태로 뭇 남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치명적 매력의 여인의 이름은 알마 쉰들러(Alma Schindler)였습니다.
그녀 주변엔 빈의 내로라하는 남자들이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말러도 그중의 하나였고 혼신을 다하여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보다 19살이나 많은 그였지만 그는 구애에 성공했습니다. 그의 구애 방법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말러는 알마에게 사랑의 편지 대신 악보를 보냈습니다. 그 악보가 말러의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입니다. 말러와 막역했던 지휘자 멩겔베르그(Willem Mengelberg)가 악보의 여백에 ‘이 아다지에토는 말러의 사랑의 고백이다. 말러는 편지 대신 이 곡의 원고를 보냈고, 알마는 말러에게 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실토했기에 이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깊을 뿐 아니라 작곡에도 능했던 알마였기에 악보가 호소하는 말러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의 구애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한 여인에게 보내는 연서(戀書)가 된 악보에서 탄생한 곡이 말러의 교향곡 5번입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말러의 10개의 교향곡(대지의 노래 포함)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5번 교향곡입니다. 그의 교향곡 중 5번에서 7번의 3곡을 ‘중기 3부작’이라고 합니다. 이 3곡은 1번에서 4번까지의 교향곡과는 달리 성악을 배제한 순수한 기악곡입니다. 교향곡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그 전통을 비틀면서 말러 특유의 색채를 보다 노련하게 보여주는 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던 1901년 무렵은 말러가 고통과 행복 사이를 오가던 때입니다. 1901년 초에 그는 생명에 위험을 느낄 정도로 심한 장 출혈 증세로 요양을 떠났다가 차츰 회복되면서 돌아와 새로운 작품에 착수하며 알마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이듬해 5번 교향곡이 완성되었고 알마와 결혼하여 행복을 만끽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기에 이 곡엔 말러 스스로의 극단적인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비통한 장송행진곡으로 1악장이 시작되어 열광적인 희열의 피날레로 끝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 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러 스스로가 이 곡에 대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며 엄숙한 인간의 모든 감정으로 가득 찼으나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이 교향곡은 형식상 다섯 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지만 1악장은 여러모로 2악장의 서주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사실은 전통적인 4악장의 교향곡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각 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악장 장송행진곡 장송을 고하는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합니다. 슬픔과 절망이 교차하는 음악이 계속되다 마지막은 슬픔의 정점이듯 조용히 끝이 납니다
2악장 태풍처럼 격하게, 가장 거세게 격렬한 분노와 평화의 열망이 갈등하는 이 악장은 누구나가 말하듯 ‘추락의 악장’입니다. 찬란한 승리감이 넘치다가도 슬픔과 좌절로 조용히 끝을 맺습니다.
3악장 스케르초 시골풍의 렌틀러(오스트리아의 3박자 민속 무곡) 리듬과 도시적인 왈츠 리듬이 번갈아 나오는 춤곡으로 연주 시간이 20분이나 되는 긴 악장입니다. 하지만 이 괴이한 춤곡을 들으며 빈의 화려한 무도회를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4악장 아다지에토 알마에게 구애하기 위해 쓴 사랑의 고백으로 현악 파트와 하프만 연주하는 아름다운 악장이지만 오늘날 이 악장이 유명 인사들의 장례식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5악장 론도 고통과 슬픔이 기쁨과 환희로 바뀝니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열광적이어서 ‘ 죽음으로의 도피’로 느끼기도 합니다. 금관에 의해 격렬하게 클라이맥스가 구축되며 곡이 끝납니다.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절정을 이루는 교향곡
이 교향곡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또 유명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 때문입니다. 특히 1971년에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감독이 만든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에서 이 4악장이 영화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 삽입되어 나오면서 이 곡이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동명 소설입니다. 토마스 만은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었고 특히 말러의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말러의 제자이자 지휘자인 브루노 발터와도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던 토마스 만은 1911년에 말러가 죽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2년 뒤 그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발표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주인공 작가는 바닷가에서 쓸쓸히 죽어갑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음악가가 아닌 작가였지만 토마스 만은 이 작가를 통해 말러를 투영하였습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감독이 주인공의 직업을 아예 작곡가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잃고 슬퍼하는 말러의 모습을 화면 속에 심어 놓습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흐르던 4악장 아다지에토는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 작곡가 말러의 삶이 잘 녹아 든 교향곡 5번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향곡 5번은 모두 5악장이지만 그 절정은 4악장입니다. 그리고 그 4악장은 알마에게 구애하기 위한 연서(戀書)의 역할을 했지만 그 내면에 들어있던 것은 사실 죽음이었습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악장이 장례식장의 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그 안에 죽음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악장 장송행진곡의 죽음으로 시작된 5번 교향곡은 4악장 아다지에토의 평화로운 죽음으로 절정을 이룬 것입니다.
화요음악회에서는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레너드 버스타인이 지휘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좋으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디모데 후서 4장 7~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보통 사람이나 위대한 예술가나 모두가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위하여 싸웁니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선한 싸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싸워야 우리의 삶이 보람될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길을 마쳤기에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는 바울이 마냥 부럽습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이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도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