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손길 내밀지 않으면 주민의 고통은 한없이 길어져
“쿠르릉, 쿠르릉…”
그 소리와 함께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렸다. 지진이 온 것과 달랐다.
통가는 환태평양 지진대인 불의 고리 시작 부근에 위치해 있어서 5-7 진도의 지진이 자주 온다. 대개는 건물을 옆에서 탁 치듯이 진동이 느껴지는데 이번처럼 건물이 부르르 떠는 느낌은 처음이다. 어제 아침부터는 흡사 뉴질랜드의 로토루아(Rotorua)에서 맡을 수 있는 짙은 유황냄새가 계속 났다.
건물이 떨리면서 동시에 귀에 통증이 왔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귀가 먹먹하더니 곧이어 고막을 쥐어짜듯이 통증이 느껴졌다. 옆에 있던 남정석 선교사, 막내인 형찬이와 나는 크게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창문으로 뛰어가 해저 화산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검고 탁한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쪽에서는 큰 돌이 굴러가는 것 같은, “쿠르릉, 크릉…”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건물이 두 번째 떨리자 우리는 모두 밖으로 뛰쳐나갔다. 건물이 더 심하게 떨리다가 무너질 것을 염려한 우리는 건물에서 좀 떨어진 마당 한가운데로 모였다.
남 선교사는, “옆에 있는 재활치료실 건물로 대피합시다. 단층이니까 무너져도 별 피해가 없을 것 같아요.”
반면에, 막내 형찬이는, “그냥 여기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우리는 여전히 마당 가운데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하늘에서 울렸다.
“쾅…”
흡사 하늘이 깨져 나가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핵폭탄이 터졌을 때 대기가 급격히 팽창하는 것 같은 대기 충격파가 우리를 덮쳤다. 해저 화산은 우리 센터에서 65km 떨어져 있다.
우리는 너무 놀라 그 폭발음이 들렸던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쪽 하늘로부터 뿌연 연기가 급격히 퍼지면서 높은 하늘을 덮고 있었다. 개들은 놀라 꼬리를 내리고 이리저리 뛰더니 컨테이너 밑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펜스 철망 밑을 비집고 들어가 옆집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필경 해저 화산이 대폭발을 했으며, 그 엄청난 폭발음 크기로 보아 큰 쓰나미가 올 것이 확실했다. 나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 자동차 키와 휴대전화기를 들고 나왔다. 남 선교사와 형찬이도 허둥지둥 따라 나왔다.
개들에게는 미안했다. “우리가 건물을 비운 사이에 이 와중에 혹시 들어와 약탈하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니 너희는 센터를 지켜다오. 우리는 최대한 빨리 돌아오마.”
우리는 게이트를 밖에서 잠그고 차를 몰고 큰 길로 나 왔다.
우리 센터는 해수면보다 약 4미터 높은 곳에 지어졌으며 2층으로 올라가더라도 고작 8미터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통가의 수도와 우리 센터가 위치한 이 통가타푸(Tongatapu)섬은 마치 접시를 엎어 놓은 듯한 지형을 가진 납작한 섬이다.
그동안 쓰나미를 예상하여 어느 지역이 얼마나 높으며 어느 지역으로 대피해야 하는지 조사해 둔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그 많은 쓰나미 경고가 있었어도 우리가 한 번도 센터를 떠난 적은 없었다.
이미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높은 지역을 향해 서로 먼저 가려고 한다. 나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목적지가 두어 군데 떠올랐지만 도저히 그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자동차 차체와 앞 유리창에 뭔가 “탁, 타다닥, 탁….”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흡사 아이들이 장난으로 흙을 집어 차에 던지는 듯한 소리였다. 화산에서 분출한 화산재와 흙덩어리들이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들이 산성비에 섞여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선교본부로 짧은 이메일을 보냈다.
“근처 해저화산에서 대폭발이 있었으며, 큰 쓰나미가 우려되어 우리는 대피 중입니다. 통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15일 저녁에 대피하면서 차 안에서 보낸 이 이메일은, 곧이어 인터넷이 끊어지면서 7일이 지난 22일에 관계자들에게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 엄청난 자연재해 소식은 전 세계에 긴급 뉴스로 전파되면서 모두 우리와 우리가 섬기는 장애인 가족들 및 통가 주민들을 염려하며 기도를 시작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화산 폭발의 충격으로 화산과 우리 섬 사이의 해저에 깔려 있던 광케이블이 여러 조각으로 끊어져서 지금도 그 조각들을 찾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리고 자주 끊겨 사용이 너무 힘든 상황이다.
30분 넘도록 겨우 200미터 움직였을 뿐이다. 그때 근처 언덕에 위치한 통가 한우리교회가 생각나서 그리로 차를 몰았다. 마침 게이트가 열려 있어서 마당에 차를 세우고 유치원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그 교회는 해수면에서 12미터 높이에 세워진 교회여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곳에는 이미 통가 한인회장 가족들이 와 있었다.
한인회장이 한참 분주히 왔다 갔다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선교사님, 밖에 기둥 사이에 로프를 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굵은 로프를 찾을 수 없어서 가는 로프를 묶었으니 혹시 쓰나미가 와서 쓸려 나가게 되더라도 꼭 붙잡으세요.”
나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저 로프를 잡을 일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곧이어 전기가 나갔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거리에는 막힌 도로 위에서 차들이 줄을 지어 전조등을 견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창문을 여니 재 냄새가 나는 바람과 함께 화산재가 날라 들었다. FM 라디오에서 시시각각 전해지는 쓰나미 경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인 16일 주일 새벽에 동이 트면서 눈에 들어온 세상은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마치 밤새 짙은 잿빛의 함박눈이 온 듯, 현관부터 이어지는 바깥 세상은 산성비와 함께 내린 화산재가 온 지면을 1-2cm 두께로 덮고 있었다.
화산재와 쓰나미로 인한 피해
얼른 빗자루를 찾아 차에 들러붙은 젖은 화산재를 걷어낸 후 즉시, 해변가 마을인 파땅아따(Patangata)로 차를 몰았다. 그곳은 우리 센터에서 직선거리로 2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뇌성마비 장애아동 싸우랄라(Saulala)가족이 사는 곳이다.
그 가정은 가난하여 만조 때에는 집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조그만 움막에서 비참하게 살았었다.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뉴질랜드에서 온 건축선교팀이 몇 년 전에 그 가정에 새집을 지어주었다. 그 집은 크진 않지만 튼튼히 지어져서 그동안 큰 사이클론이 여러 차례 왔어도 잘 버텼다.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마을로 가면서 바라본 해안가의 모습은 처참했다. 도로는 유실되었고 방파제로 쌓여 있던 큰 세탁기 만한 바위들이 거센 쓰나미 파도에 쓸려서 도로를 건너가 맞은편에 있던 집들을 부수어 놓았다. 쓰나미에 휩쓸린 집과 컨테이너, 조그만 배들이 부서진 채 함께 처박혀 있는 것도 보였다.
큰 바위들 사이를 곡예운전을 하면서 간신히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싸우랄라의 부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도로보다 높여 지은 그 집에도 쓰나미가 벽을 깨뜨리며 들이닥쳤고 그 들어온 파도가 반대편 벽도 깨뜨리면서 집안에 있던 모든 살림살이를 쓸어버렸다. 제일 급한 것은 당장 마실 물이었다. 급히 센터로 와서 생수를 챙겨 내달렸다. 그것을 건네니 싸우랄라의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를 표했다.
싸우랄라네도 공중의 큰 폭발음을 듣고 대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네 승합차에 식구들이 모두 타자 정작 뇌성마비 아동인 싸우를 태울 공간이 없어서 결국 싸우와 부모는 대피하기를 포기하고 집에 남아 쓰나미를 맞았다. 집의 양쪽 벽이 깨져 나가면서 그들은 거의 죽을 뻔했다. 나는 그들을 붙들고 주님께서 계속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센터로 다시 돌아오자 그때서야 비로소 주변의 황량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밤새 화산재가 덮였던 작은 나무와 채소 화초 등은 즉시 갈색으로 말라죽었다. 식물들이 그렇게 빨리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붕과 빗물탱크, 마당 어디에도 제 색깔을 유지하는 것은 없었다. 온통 짙은 갈색 천지였다.
개들에게 먹을 것과 물을 주었다. 여전히 화산은 연기를 뿜어내며 소리를 내고 있었고 쓰나미 경보가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높은 곳으로 대피를 해야 했다. 차에 비상식량을 싣고 섬의 동쪽 비교적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면서 보이는 주변 풍경은 사막 폭풍이 흩고 간 듯한 모습이었다.
땅속에 깊이 뿌리를 박은 뿌리식물 외에 땅 위에 있던 모든 식물은 모두 말라죽었다. 한동안 농산물을 시장에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날 저녁은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교민 집사의 세심한 도움으로 높은 지역에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 비로소 안심하며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산성비와 화산재는 이 섬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빗물저장탱크를 오염시켰다. 아무도 그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수를 사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우리도 장애인 가정들에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생수를 사려고 했으나 대부분의 상점들이 판매를 거부하거나, 한 가정에 한두 병 정도만 판매하고 있었다. 돈이 있어도 생수를 살 수 없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피해 소식은 비극적이었다. 우리 섬과 해저 화산 사이에 있던 아타타(Atata)라는 작은 섬은 쓰나미가 섬 전체를 휩쓸어 1명이 죽고 2명이 실종되었다. 그중 한 명은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27시간 동안 헤엄을 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통가에서 버려진 개들을 위한 보호 활동을 하던 영국인 여성이 해변가에 있던 유기견을 구하려다 쓰나미에 휩쓸려 죽었다. 쓰나미에 잠겼던 망고(Mango)섬에 있던 주민들은 정부의 도움으로 모두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쪽 해안가에 있던 휴양지 건물들이 터만 남기고 모두 무너졌다. 그곳에 있던 한 휴양지의 여주인은 토요일 저녁에 식당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창문을 통해 높이 15미터의 쓰나미가 오는 것을 보고 필사적으로 달려 간신히 몸만 건질 수 있었다.
매년 우리 장애인들에게 가족캠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해 주던 리쿠알로파(Likualofa) 휴양지 건물도 모두 무너졌다. 그 건물들은 지난번 사이클론 기타(Gita)가 왔을 때 무너져서 그동안 은행 대출과 정부 보조를 받아 거의 건물을 완공해 가는 즈음에 이번 쓰나미로 완전히 건물이 없어졌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쓰나미 경보가 마침내 17일 월요일 오후에 해제되었다. 많은 교회가 주일 예배를 취소하였지만, 우리는 교인들을 말씀으로 위로하고 믿음 안에서 굳게 서도록 권면하기 위해 예정대로 주일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래서 서둘러 집안과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재활치료실과 마당 및 주변에 쌓인 화산재를 제거하기 시작해서, 1월 23일 주일에 전 교인들이 모여,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셨다는 감격으로 예배를 드렸다. 1월 24일부터 시내에 나가 생수, 쌀, 매트리스 등을 구입할 수 있는 대로, 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고통을 겪는 장애인 가정들에 서둘러 나눠 주기 시작했다.
많은 가정들이 침수되었던 가재도구와 침구 등을 밖에 내놓고 말리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로는 마스크 없이는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화산재 먼지가 사방에 날려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 마음속에 갈등을 느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제 활동은 마비되었고, 사람들은 생수를 구할 수 없는 등 기본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많은 집에서는 젖은 화산재의 무게로 인해 지붕이 휘거나 물받이(gutter)가 꺾어져 내려앉고 파이프가 떨어지기도 하였다.
Covid-19 청정 지역이던 통가에 최초의 확진자 발생
또 하나의 충격적인 뉴스가 2월 2일 수요일에 전해졌다. 엎친 데 덮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외국에서 보내온 구호물품을 하역하던 통가인 2명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통가 정부는 이를 발표하면서 즉각적으로 1주일간 전면 봉쇄(Lockdown)을 실시하였다. 이로 인해 민간의 구호활동이 갑자기 중단되었고, 자연재해의 피해 주민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2월 9일 현재 Covid-19의 확진자는 지역 감염이 계속 늘어나면서 총 34명이 되었다. 통가 전체에 음압 병실을 2실 밖에 준비해 놓지 못한 통가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자칫 더 비극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다시 록다운을 2주 더 연장하였다. 이제는 한 주일에 화요일과 금요일 외에는 기본적인 식량조차 제대로 구입할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월 6일 주일에는 록다운으로 인해 모든 교회(망고트리교회 포함)가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인터넷도 계속 불통이어서 줌(Zoom)을 이용한 예배도 유튜브나 페이스북도 활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망고트리교회의 교인들 각 가정마다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시편 46편 1-3절에 있는 말씀으로 교인들을 위로하고 그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이 환난 중에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권면과 기도로 많은 통가 영혼들이 주님의 강한 팔로 보호를 받는다는 믿음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통가의 10만 명 국민 중에 80% 이상이 이번 해저화산 폭발과 쓰나미로 인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 고통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의 발생으로 더 깊어지고 연장되었다.
저희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지금도 멀리서 들리는 조그만 소음이나 천둥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커가고 있으며 그 고통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면 통가 주민들의 고난과 고통은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망고트리센터사역
통가 망고트리센터는 2005년에 장애인을 돕기 위해 기독교 나사렛성결교회(The Church of the Nazarene)에 의해 통가의 수도인 누쿠알로파에 설립되었으며, 2007년 2월에 김인권 남정석 선교사 부부가 부임하여 비로소 본격적인 장애인과 그 가정을 돕기 위한 재활사역을 시작하였다.
망고트리센터가 본격적인 재활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통가의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장애를 하나님의 징계로 여겨 죄의식과 수치심을 가지고 장애아동을 집에서 숨겨 키우고 있었으며, 재활을 돕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영구장애를 겪으며 고통받고 있었다.
망고트리센터는 사역초기부터 장애인들에게“예수님의 사랑으로 장애인과 그 가정에 소망을”이라는 방침을 가지고 장애인들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통가의 전체 장애인 가정들을 초청하여 매년‘장애인가족캠프’를 개최하여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서로 교제하게 함으로 소외감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
매년 방문선교팀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위해 ‘의료봉사, 새 집 지어 주기, 휠체어 경사로설치 및 주거환경개선, 보조기 제공 등을 하여 그들의 삶의 질을 높였으며, 성경가족캠프, 장애어린이 성경학교와 성인장애인 부흥집회’ 등을 개최하여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믿음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와왔다.
이러한 망고트리센터의 재활과 복음사역은 2019년에 망고트리교회를 정식으로 설립하면서 열매를 맺어서 매주 40-50명의 장애인들이 출석하며 말씀 안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다. 망고트리교회의 교인들은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복음을 전하는 열심내는 주님의 제자가 되려 함으로 2023년에 또 다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려고 기도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치료는 망고트리센터의 주된 사역이다. 우리는 매주 70-80명의 장애인들을 위해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과정을 제공하고 있으며,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퇴원 중풍환자를 위한 치료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직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센터에 오지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들을 위한 가정방문을 하는 등 매주 약 130명의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을 함께 섬기고 있다. 망고트리센터는 일체 정부의 보조금 없이 교회와 교인들의 헌금만으로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