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지”

한명수 목사<서울 경복교회>

해밀턴에 있는 현지인 장로교회에서 키위들과 한인 목회, 그리고 교회 개척을 경험한 나로선 이민목회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힘썼지만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2015년에 크리스천라이프에 연재했던 ‘한명수의 이민목회이야기’는 나의 참회록적인 글이다. 부족한 날 끝까지 응원하며 함께 해준 남겨진 교우들께 감사와 미안함으로 마지막 설교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한국으로 왔다.

대한민국은 예상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많은 문제와 함께 해결책도 마련되는 사회다. 곳곳이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인왕산 자락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교회로 하나님께서 날 인도하셨다. 교회 주변은 도심이지만 친환경적이고 평화로운 곳이다. 맹학교, 농학교, 경복궁, 광화문이 있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교인 가운데 이민과 유학, 그리고 전문적 영역에서 외국의 경험을 가진 분들도 있다.

보수적이면서 점잖아 보이는 교회 분위기 속에서 나의 해외 목회 경험은 존중받는 분위기다. 타산지석이라고 해외에서 경험한 안목이 목회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있다. “여기가 어디지?”를 잠에서 깨면 물었던 지난 시절처럼 지금도 여기가 “한국인가, 뉴질랜드인가?”하는 몽롱함이 이어진다.

남산타워와 청와대 등 고도제한으로 도심의 주요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택에 살고 있다. 봄철이 지나도 때를 가리지 않고 하늘을 뒤덮는 미세먼지와 황사를 이젠 그러려니 생각하고 익숙해져 간다.

청와대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시위는 찬반을 떠나 지역주민들의 삶에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언어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쉽게 외국인을 볼 수 있다.

사우나에서 샤워 버튼을 어떻게 누르는지 몰라 고민하는 외국인에게 “Push”라고 말해줬더니 고마워한다. 짧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더니 처음엔 영어로 하더니 곧 한국말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한국인 여자 친구로부터 배웠는지 꽤 한국말을 구사했다.

한국에선 트로트를 비롯한 노래 열풍이다. 각종 방송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숨은 인재들이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재능을 표현한다. 어느 무명의 가수는 ‘살아야지’란 임재범의 노래를 부른다.

“산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지. 지치고 지쳐서 걸을 수 없으니. 어디쯤인지, 무엇을 찾는지 헤매고 헤매다 어딜 가려는지. 꿈은 버리고 두 발은 딱 붙이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데… 살아야지 삶이 다 그렇지. 작고 외롭고 흔들리는 거지”

처음 들어본 노래지만 ‘살아야지’란 네 글자가 내 맘을 사로잡는다. 내 지난 뉴질랜드의 삶이 “살아야지”란 의지로 채웠던 시간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해밀턴에서 지역교회 현지인 목회자들과 행사와 모임이 있을 땐 내가 있어서 인터내셔널하다고 말하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문직을 갖고 있다고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백인과 원주민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 살아남기 위해 고단할 수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고 다양한 기회도 주어졌다. 플랫 화이트와 머핀을 놓고 자연을 보며 행복할 수 있었던 여유로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는다. 쾌적함을 주는 신선한 공기, 그림 같은 푸른 하늘, 낮게 깔린 흰 뭉게구름과 푸르른 농장의 목가적 풍경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파도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또 다른 파도가 우릴 향해 달려오고 있다.

내 카톡엔 ”살아야지“란 네 글자가 가족사진 밑에 있다. 내 인생에서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작지만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연약한 동역자들을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 관심만큼 보이는 걸까? 교회가 조금씩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어 내 집안일처럼 기쁘기 그지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섬기는 교회와 교우들이 내겐 생명처럼 소중하다. 철이 들어가는지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더 느낀다. 짧지 않았던 나의 이민목회의 소중한 경험들을 곱씹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성실과 최선으로 임하고 싶다.

뉴질랜드와 한국, 그리고 그 어느 나라에서건 우린 살아야 한다. 무명가수의 간절함과 애절함처럼 경쟁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 삶이 다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 ‘살아야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죽어야 살 수 있다는 말로 와 닿았다.

죽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집착할까? 장례를 집례하기 위해 영안실도 가곤 한다. 열등감과 세상의 그 어떤 자랑도 죽음 앞엔 멈춘다. 죽은 사람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죽은 내가 이 땅에서 무슨 소망과 주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주님 앞에 설 그 날이 두렵다.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아직도 죽지 못한 내 모습에 나는 기도하고 기도한다.

절박함 속에 살아야 했고 버텨야 했던 실수 연속이었던 나의 뉴질랜드 목회였다. 내가 흘렸던 눈물과 홀로 거닐며 생각하며 품었던 소원들로 더 단단해지고 진솔해질 수 있었다. 어디든 헤쳐가야 할 문제는 기다리고 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살겠다는 절박함으로 희망의 뉴스가 오가면 좋겠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교회 또한 편리함과 자기들의 유익을 쫓는다. 그런 상황에서 내 부르심과 존재이유를 물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7). 이민목회의 수고와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고귀함을 알기에 동역자들이 지치지 않길 응원한다. 한인교회들 모두 희망으로 우뚝 서길 소망한다.

나호열의 ‘안아주기’란 시가 있다.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이/ … 그대, 어둠을 안아보았는가/ 무량한 허공을 안아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미움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정이 들면 지금 사는 곳이 고향이 된다지만 따듯한 품이 그리운 사람이 많다. 돌아보면 참 고마운 뉴질랜드의 삶이었다. 먼저 손잡아주고 헤아려 안아주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오늘이 모여 내일이 되고 훗날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된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교보빌딩에 걸린 글귀처럼 큰 기쁨이 한인공동체 위에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