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기대고 사는 사람들, 비스듬히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들었던 작년 8월 14일 화요일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음악회에 참석하여 국악 코너를 맡아 유익하고 재미있는 우리 음악을 소개해 준 정종훈 선생 가족이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 되는 염혜정 교수께서 교환교수로 오클랜드 대학에 와서 근무하는 동안 저희 아파트 맨 윗동에 살았습니다. 외동아들 이안 군도 함께였는데 화요일마다 우리 음악회에 가족 모두가 참석했습니다.

국악을 전공한 정선생 덕분에 우리 화요음악회 회원들은 1년간 국악의 참 맛을 제대로 이해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고마움에 사의를 표하자 정선생 내외는 이곳 뉴질랜드에 와서 화요음악회를 만난 것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더 큰 행운이었다며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와 같은 모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서로 기대고 살 때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서 뉴질랜드에 와서 1년 살며 화요음악회를 통해 그런 사랑을 느꼈다며 이별의 마음을 평소에 좋아하던 시(詩)로 대신하고 싶다며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를 읊어주었습니다.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정선생 가족의 마음이 전해오는 시를 가슴으로 듣고 난 뒤 우리는 베토벤을 들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Eroica)’
‘교향곡 3번’과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1802년 32살의 베토벤은 귓병이 날로 악화돼‘치유불능’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난치병과 창작의 고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차라리 죽음을 생각했기에 두 동생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 형식의 유서를 씁니다.

“이대로 죽어도 후회는 없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자유롭게 해 줄 테니.”

이 편지를 쓸 때 베토벤이 머물고 있었던 비엔나의 조용한 마을 이름을 따서 이 편지가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고 불립니다. 이 유서는 책상 속에 잠들어 있다가 베토벤 사후에 발견됩니다.

이 편지를 쓴 뒤 다행히 베토벤은 죽지 않고 죽음 대신 교향곡 3번 ‘에로이카’를 작곡합니다. 웅장하며 열정적인 이 곡은 베토벤의 위대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곡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곡으로 비롯해서 음악사의 길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귀족들이나 후원자를 위한 곡이 아니라 베토벤 스스로의 곡을 쓰겠다고 선언한 곡입니다.

당시의 청중에게는 꽤 낯설게 느껴졌을 이 곡을 기점으로 음악은 고전의 시대에서 낭만의 시대로 들어갑니다.

이 곡에 ‘에로이카’(영웅)라는 부제가 붙게 된 연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고 작곡을 시작했던 베토벤이 그가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격노하여 ‘보나파르트’라는 글자가 써있던 악보 첫 장을 찢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오히려 더욱 웅장하고 격렬한 곡, 인간을 초월하는 ‘영웅’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실망과 슬픔은 이 곡의 느린 2악장, 그 유명한 장송행진곡에서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명곡인 만큼 칼 뵘과 베를린 필하모니(1961년),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니(1984년) 등등 좋은 연주가 많지만 그날은 Arturo Toscanini(1867-1957)가 지휘하는 NBC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1949년 녹음입니다.

Arturo Toscanini(1867-1957)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토스카니니는 독일 출신의 푸르트뱅글러와 더불어 20세기 지휘사의 양대 산맥을 이룬 사람입니다.

초인적인 암기력을 자랑하는 그는 암보로 지휘할 수 있는 곡이 200여 곡의 교향곡과 100여 곡의 오페라였다고 합니다.

또한 다혈질의 성격이라 한 번은 공연을 보러 온 베니토 무솔리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파시스트 찬가를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결국 무솔리니가 고집을 꺾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음악 감상이 끝난 뒤 그날은 특별히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정종훈 선생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교환교수로 뉴질랜드에 왔다가 우리와 귀한 인연을 맺게 되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 가정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항상 같이하길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시편 121편 5-8절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특별히 8절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가정이 뉴질랜드로 나왔다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출입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 나가고 들어감을 지금부터 영원히 지켜주신다 약속하셨으니 큰 축복입니다.

‘지키다’는 영어로 preserve인데 이는 단순히 지킬 뿐 아니라 원래의 좋은 상태를 그대로 보존 보호해 주신다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날 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분이 정선생 가족 모두가 이 말씀을 붙들고 한국에 돌아가서 하나님 은혜 안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같이 축원한 뒤 그날 음악회를 마쳤습니다.

*화요음악회는 교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Devonport의 가정집 정이정(淨耳亭)에서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께서는 전화 445 8797 휴대전화 021 717028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이전 기사“뉴욕가면 돈이 보인다”
다음 기사뉴질랜드와의 인연
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