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소망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박연수목사 <오클랜드안디옥교회>

마태복음 5:25-34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크리스천에게 이 땅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마다 주신 은혜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미리 살아보는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 6장은 우리에게 참 중요한 삶의 방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에 자유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와 걱정에 삶이 고달프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염려하지 말라!”
이렇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고 고민하는 인생을 향하여 마태복음 6장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무 일에도 관심을 갖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6장25절에서 말씀하신 바 있는 세상 일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뜻으로 ‘염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림나오(μερτμνα'ω)인데 이 뜻은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의 ‘메리조’에서 유래한 단어로 지나친 근심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는 상태, 마음이 나뉘어져 어수선해진 상태를 뜻합니다.

결국 이러한 염려의 늪에 빠지게 된 인생은 항상 어수선하고 분주하지만 열매가 없는 모습, 결국 참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죠.

또한 염려하는 상태를 30절에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때 ‘믿음’으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티스’는 ‘설득, 확신, 진리에 대한 확신, 믿음, 충성, 성실’이라는 의미로 아무리 예수님이 함께 계셔도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확신에 서지 못하는 제자들의 상태를 비춰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슨 근거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32절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같은 시간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자기 힘으로 자기 먹을 것을 버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고 걱정하며 사는 것은 이방인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입니까?

32절에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이 모든 필요와 쓸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것과 그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신다는 것에서 그 특징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사람의 의식주와 관련된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다 아시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것이므로,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라는 말씀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 삶의 원리로 그대로 적용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그래서 마태복음6장 34절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들여다 보면 기록된 말씀이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인가요? 아니면 내일이 되어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 일까요?’

이 구절의 번역은 어떤 성경버전보다 한글성경이 참 훌륭하게 되어있는데 34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여기서 내일이라는 것은 시간적인 개념보다는 시간이 의인화 되어 ‘내일이’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그럼 이 본문이 말하는 내일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내일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존재입니다. 내일은 ‘모른다’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무엇입니까? 내일의 소망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내일을 염려할테니까. 오늘의 삶도 버거운 너희가 내일 일까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NIV성경에도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 일은 누가 염려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는 그냥 하나님 아버지께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니까! 아버지이신 그 분이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우리의 쓸 것을 공급하시고 하늘의 곳간을 열어 우리의 삶을 채우시며 우리 자녀들의 모든 문제들(진학, 취업, 결혼, 태의 문)을 해결하십니다.

우리의 내일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염려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아버지께서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일이라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나는 결코 길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라는 이 믿음을 붙잡고 날마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내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