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준비하는 낯선 사람 모임

일기장은 보물상자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소한 단 한 줄의 일기에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고, 그가 만난 수많은 이야기가 실타래 풀듯 풀려 나온다. 별 볼일 없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물상자에 숨은 보물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다. 일기에서 만나는 한 사람도 귀중하고, 짧은 이야기도 그만큼 소중하다.

웨슬리는 1725년에 한 가지 결심을 하였다. 만 21세였다. 한국 나이로는 23세였다. 그 때부터, 한 시간마다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보고 일기에 기록하였다. 옥스퍼드 대학 종신 교수로 임명받은 다음에도 그의 일기쓰기는 계속되었다. 10년을 계속한 다음에는 “꼼꼼한 일기(exacter diary)”라고 불리는 일기쓰기 방법을 만들어서, 홀리클럽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였다. 일기를 공유하는 모임은 홀리클럽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속회, 반(Band), 참회반, 선발 신도회처럼 그가 직접 만든 소그룹 모임 활동을 보면, 홀리클럽에서 암호로 일기를 쓰면서 이미 활용했던 활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자”는 권고가 계속되는 것도, 일기를 공유하며 토론하고 기도했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평생 한 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꼼꼼한 일기쓰기를 계속했다. 솔직하게 평생을 살았던 비결이기도 하다.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
웨슬리의 소그룹과 메소디스트 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785년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 설립된 <낯선 사람들의 친구(Strangers’ Friend Society)> 모임은 주목할 만하다. 웨슬리의 소그룹 회원들이 주축이 되었고,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서 그들의 친구가 되자는 실천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의 시작이었다.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존 가드너는 참담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난 때문에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영혼의 평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숨을 거두며 남긴 그의 말이 가슴에서 메아리친다. ‘이제 죽는 것 말고는 아무 희망도 없지요.’”

그가 목격한 가난한 사람은 거지였다. 몸에 두른 거적 말고는 입을 옷도 없었고 덮을 담요도 없었던 가난한 거지였다. 약해진 몸으로 홀로이 외롭게 죽어가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 만남이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을 시작할 수 밖에 없게 하였다.

동료들의 반대와 웨슬리의 후원
하지만, 메소디스트 지도자의 반대에 부딪쳐서 시작부터 난항을 겪게 되었다. 메소디스트 모임을 통해서 사용되어야 할 헌금을 개별적으로 사용하고, 특히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따로 활동하는 것을 불편해 했을 소그룹 지도자의 반대였다. 결국에는 존 웨슬리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을 흔쾌히 허락한 웨슬리는 후원금까지 따로 만들어 보냈다. 그로부터 5년 뒤, 웨슬리는 간단한 기록을 일기에 남겼다. 가난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개인 일기에는 한 줄도 안되는 암호로 간단히 기록한 것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출판한 일기의 내용이다.

1790년 3월 14일 (주일)
오늘은 편안한 날이다. 아침(6시)에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과 함께 하였다. 온전한 구호단체로 설립되었지만, 감리교회 내부의 소그룹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그리고, 의지할 데 없는 낯선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몇 년 전까지 나는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읽어보지도 못했다. 이 모임도 분명히 감리교회가 맺은 열매이다.

코로나 시대에 일기 쓰기
웨슬리의 일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 첫 번째는 암호로 쓴 개인 일기이고, 두 번째는 이야기로 풀어 쓴 출판 일기이다. 개인 일기는 한 시간 마다 자신이 한 일을 돌아보며 시간별로 기록하였고, 출판 일기는 하루 동안 생활 속에서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이야기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두 가지 형태의 일기를 함께 쓰면서도, 일상생활에서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일기쓰기 방법은 독특한 것이었다.

1735년부터 일년 반 동안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 1740년이니, 1년 반동안 쓴 자신의 일기를 다듬고 간추린 시간만 5년 정도였다. 그런 방법으로 평생 기록한 65년 또는 66년 동안의 일기를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서 모두 출판하였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기를 출판하는 과정에서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를 하기도 한다. 보여주려고 일부러 꾸민 것을 없을까? 하는 염려도 한다.

하지만, 웨슬리가 일기 쓰기에 사용한 방법과 각종 소그룹 모임을 지도한 방법을 보면, 오히려 출판 일기는 미사여구를 빼고 간결하고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간과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일기 쓰기를 시작한 뒤에, 한 시간 단위로 쓴 개인 일기를 홀리클럽 모임에서 공개한 목적에는 생활을 단순하게 정리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루 동안 기록한 생활과 생각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토론 주제로 공개한 것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어서였다.

일기 쓰기는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과정
속회, 반(Band), 참회반, 선발 신도회에서 “솔직한 대화”를 강조한 것도 일기 쓰기에서 사용한 방법을 생활에 적용한 결과였다. 그만큼 진심으로 살았고, 그 진심을 글쓰기와 메모 사용에 적용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삶과 열정이 평생 꾸밈없었는 지를 알고 싶으면 그의 일기 쓰기를 따라해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일기 쓰기는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 위해 가장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는 그의 삶과 열정을 보여준다.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에 관한 간단한 기록에서 그 방법과 열정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웨슬리의 리더십이 강력했던 까닭도 알게 된다. 5년 뒤에도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낯선 사람들의 친구> 모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