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와 관현악의 협연을 위해 작곡된 곡을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친숙한 음악 장르의 하나입니다.

피아노협주곡을 제대로 작곡하기 시작한 사람은 18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모차르트(1756-1791)와 하이든(1732-1809)일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27곡의 피아노협주곡을 남겼고 하이든(1732-1809)은 12개의 피아노협주곡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들 18세기의 작곡가들에게는 아직은 오늘날과 같이 완성된 피아노가 없었고 처음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피아노 대신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베토벤(1770-1826) 시대에 피아노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악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향상된 피아노의 기능에 힘입어 베토벤은 많은 피아노곡을 썼고 피아노 협주곡도 5곡을 남겼습니다. 그렇기에 사실상 피아노 음악을 완성한 사람은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는 낭만주의 음악이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대에 피아노 협주곡이 차지하는 공간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베토벤 사후에 나이가 거의 비슷한 작곡가인 멘델스존(1809-1847), 쇼팽(1810-1849), 리스트(1811-1886)가 각각 두 곡, 그리고 슈만(1810-1856)이 1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브람스(1833-1897)가 2곡, 차이콥스키(1840-1893)가 3곡을 작곡했고 19세기가 저물었습니다.
위에 열거한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귀하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들으려는 차이콥스키의 1번 협주곡은 아주 독특하면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존재입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는 모두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하면 1번을 생각할 정도로며 1번 협주곡은 그 인지도와 인기가 높습니다. 이 인기의 상당 부분은 아마도 4대의 호른으로 시작하는 강력하면서도 충격적인 느낌과 러시아의 토속적인 냄새가 짙게 풍겨 나오는 서주 주제의 친근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협주곡도 도입부가 충격적인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시작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1번 협주곡입니다.

작곡과 초연을 위한 진통
1874년 12월부터 작곡을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곡을 완성했습니다. 곡이 완성되자 차이콥스키는 처음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에 자부심을 갖고 기대에 차서 당시 최대의 피아니스트이자 친구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1835-1881)에게 이 곡을 헌정하려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루빈스타인은 지나칠 정도의 혹평과 더불어 곡을 거의 다 뜯어고치라고 했습니다. 당황한 차이콥스키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단 하나의 음표도 고칠 수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화가 난 차이콥스키는 당시의 또 다른 명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에게 이 곡의 초연을 의뢰하였습니다. 이 곡을 살펴본 한스 폰 뷜로는 매우 만족해했고 연주가 성공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의 생각대로 1875년에 미국 보스턴에서 뷜로의 피아노로 열린 초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회복된 우정
나중에 루빈스타인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차이콥스키에게 사과를 했고 두 사람의 우정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모스크바에서의 초연은 루빈스타인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고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곡의 진가를 깨달은 루빈스타인은 그때부터 이 곡을 알리기 위하여 많은 힘을 썼습니다. 특히 1878년 파리의 만국박람회 때 이 곡을 연주하여 파리의 청중을 열광시켰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친구에게 돌아온 루빈스타인이나 그 친구를 기꺼이 받아준 차이콥스키나 훌륭한 인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뒤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루빈스타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차이콥스키가 ‘어느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은 피아노 삼중주를 작곡한 것은 음악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곡의 구성
모두 3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너무 빠르지 않게 그리고 매우 웅장하게)
4대의 호른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와 강렬한 피아노 화음으로 유명한 1악장은 그 시작부터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그 뒤를 이어 차이콥스키가 카멘카에 갔을 때 들었다는 눈먼 거지들이 부르던 노래에 기초한 제1 주제가 나옵니다.

2악장 – Andate semplice(느리고 간결하게)
세 도막 형식의 느린 악장으로 처음에는 현악기들이 조심스럽게 피치카토를 연주합니다. 중간에는 프랑스 민요인 “즐겁게 춤추고 웃어라”를 모티브로 한 소박한 노래가 비올라와 첼로에 의해서 연주됩니다.

3악장 -Allegro con fuoco (빠르고 격렬하게)
러시아 농민의 춤곡을 소재로 한 봄이 오는 것을 기뻐하는 듯한 거칠고 흥겨운 곡입니다. 러시아의 향토성이 아주 짙게 드러나 있습니다. 마지막엔 승리를 노래하듯 화려한 독주 기교를 과시하며 끝납니다.

명곡이니 만치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 Sviatoslav Richter의 피아노와 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연주, 에밀 길레스의 피아노와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연주 등등 모두 좋지만 우리는 오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43년의 역사적인 명반으로 감상합니다.

음악을 감상하기 전에 잠깐 이 연주와 연주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04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호로비츠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택했습니다. 1925년에 독일에 진출했는데 함부르크에서 어느 여류 피아니스트의 대역으로 이 곡을 연주해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28년에 미국에서의 데뷔 연주도 이 곡으로 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명장 토스카니니와 만나게 되고 그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이 곡과 호로비츠가 얼마나 인연이 깊은지 그렇기에 이 곡에 대한 호로비츠의 애정이 얼마나 클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토스카니니(1867-1957)는 음악의 완벽주의자이며 초인적인 암보의 능력을 지닌 20세기 최고 지휘자의 한 사람입니다. 러시아 출신 호로비츠의 슬라브적인 낭만적 기질과 이탈리아 출신 명장 토스카니니의 고전적인 기질이 잘 조화되어 최고의 명 연주를 낳았습니다.

두 사람은 이 곡을 1941년과 1943년 두 번에 걸쳐 녹음했습니다. 첫 번 것은 스튜디오 녹음이고 두 번째는 실황 녹음입니다. 연주 내용은 둘 다 뛰어나지만 실황 녹음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아 우리는 1943년 녹음으로 듣습니다.

음악 감상 후에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 전서 3장 6절과 7절입니다

  1.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2.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하지만 우리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오늘 차이콥스키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작곡해도 자라나고 열매 맺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꿈꾸고 계십니까? 우선 하나님께 여쭙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계획이나 꿈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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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