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셋째 주 찬송/9월 넷째 주 찬송

9월 셋째 주 찬송/556장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는

고모님의 찬송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전쟁 통 부모 잃은 슬픔에 가엾은 여섯 살 박이 어린 저는 고모님 품에 안겨 “찬송하는 소리 있어 거룩 거룩 하외다” 찬송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하며 흥얼거리며, 척박한 피난 살림에 밤새워 제품을 만들면서도 이른 새벽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를 행진곡처럼 부르며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지요.

십 수 년 전, 고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발인을 준비하던 새벽입니다. 영정 앞에 고요히 꿇어 앉아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고인을 묵상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CD에서 장례식 사흘간 내내 들려오는 그 모든 찬송들이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노래 아니었겠습니까.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그리운 고모님의 목소리가 되어 들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유산 한 푼도 남겨 받지 못한 처지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선물을 받았으면서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그 새벽, 고모님을 하나님의 나라로 떠나보내면서야 비로소 이 찬송 가락들이 최고의 선물, 최고의 유산임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저는 묘비석(墓碑石)에 제 귀에 쟁쟁 남은 고모님의 유언을 새겼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라고요. 우리가족은 묘지를 찾을 적마다 이 찬송을 부릅니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감사한 마음으로 조상들을 기억하며 고향을 방문하고 성묘를 하는 추석 한가위 전통은 참으로 아름다운 풍습이지요. 이는 민족의 명절로서 유대인들이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초막절과도 같습니다.

한식이나 추석 등 일 년에 한 두 차례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고 어르신들의 옛 이야기를 듣습니다. 늘 반복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일지라도 자기 존재와 뿌리에 대한 생각과 효(孝)를 몸으로 배우며 가족 공동체로서의 행복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마다 믿음의 조상을 기억하며 그들 나라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대대손손 가르치듯, 우리도 기독교적 가치관과 정신이 살아있는 가풍(家風)이 자손들에게 면면히 이어지며 지켜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찬송을 지은 권기창(1966- )목사는 후렴마다 “우리가정”이야말로 “사랑과 행복의 안식처”라고 기뻐 노래하며 “대대로 복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곡을 붙인 문성모(1954- )목사 역시 “할렐루야 우리가정”을 곡의 절정인 가장 높은 음역(音域)에 두고 있지요. 우리 명절 분위기에 한층 걸맞게 굿거리장단으로 쓰여 악구(樂句)나 악절(樂節) 끝에 ‘으이’ ‘좋다’ ‘얼시구’ 같은 추임새를 간간이 넣어준다면 더더욱 흥을 돋우리라 생각됩니다.

문성모 목사는 음악가이며 신학자인 장로교 목사이지요. 어려서부터 서울예고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서울음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에 독일 쾰른대학, 뮌스터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오스나부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 후 광주제일교회 에서 목회를 하였고, 호남신대교수를 거쳐 대전신대 총장, 서울장신대 총장을 역임하였지요. 지금은 강남제일교회 당회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전에 영락교회에서 열린 ‘문성모 찬송 330곡집’ 출판기념회에서 제가 서울바하합창단과 함께 시범연주를 하였는데요, 이날 노래로 교창(交唱)할 수 있도록 만든 예배용 ‘시편 교독송’도 우리나라 예배에선 거의 불리지 않는 영창(榮唱, Anglican Chant)을 ‘우리 것’으로 되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참석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는데요, 앞으로 예배에서 쓰여 지면 좋겠어요.

스승인 나운영 교수의 영향으로 교회음악의 한국적인 방향과 방법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문 목사가 가진 교회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작업을 좋아하여 적극 응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적 교회음악에 정열을 쏟는 몇 분 안 되는 작곡가 중 한 분이지요.

여호수아는 세겜에 모인 백성에게 한 고별설교에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종 되었던 이집트에서 구출해내신 그 때까지의 일을 낱낱이 열거하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란 말을 남기며 후대에도 기억하고 지킬 수 있도록 기념석(記念石)을 세웠습니다.

9월 넷째 주 찬송/475장 인류는 하나 되게

1908년, 영국의 문인 옥센함(John Oxenham, 1852-1941)의 찬송 “주 예수 안에 동서(東西)나 남북(南北)이 있으랴”(통 526장)는 20C 화해와 일치를 노래한 찬송의 효시(嚆矢)로 봅니다.

이 찬송도 이에 견줄만한 찬송입니다. 1967년 홍현설(洪顯卨, 1911-1990)목사가 지은 이 찬송은 급격한 세계화와 함께 소수집단과 다문화 가정 등 다문화주의 현상이 등장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지은 순전한 우리나라 찬송이지요.

홍현설 목사는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학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 선언’ 제7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는다.”라고요.

사도바울은 “너희는 유태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그러므로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에베소서 2;19)라고 했습니다.

앞서 찬송과 이 찬송은 “동서나 남북”, “민족”, “겉모양 인종 다르나”, “인류는 하나 되게 지음 받은 한 가족”이라면서, 주님은 식탁에서 “믿음 사랑 되찾는” “화해”의 “새 세계”를 “명 하신다”고 노래합니다.

작곡가 나인용(羅仁容, 1936- )교수는 연세대 종교음악과를 거쳐 미국 노드캐럴라이나 대학에서 석사를 하였고, 연세대 작곡과 교수와 학장을 역임한 우리나라를 대표적인 현대음악작곡가입니다.

많은 관현악작품과 함께 ‘심판의 날’, ‘시편 130’, ‘주의 날’, ‘호산나’, ‘십자가의 길’ 등 성가작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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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엽
연세대 성악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1960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광범위하게 교회음악 활동을 하면서 김명엽의 찬송교실1-5을 예솔에서 출판했다. 이번 25회 연재를 통해 교회력에 맞추어 미리 2주씩 찬송가 두 곡씩을 편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