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의 방패’

칼과 칼이 날카롭게 부딪친다. ‘쩌렁’이며 울리는 굉음과 손끝까지 저려오는 찌릿함. 내가 휘두르는 칼에 움찔하는 상대의 눈빛이 보이고 내게 칼을 휘두르는 살기 어린 상대의 눈빛도 보인다. 뒤엉킨 육체가 내뿜는 입김과 땀. 낭자한 선혈이 알 수 없는 액체와 섞여 모두의 몸을 적신다.

정신없이 찌르고 베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가? 지금 베고 있는 이 몸뚱이는 또 누구의 것인가? 잠깐 혼란스러울 찰나 어디선가 날아오는 창. 한 끗 차이로 창이 방패에 걸린다. 간발의 차이이다. 살짝만 더 안으로 들어왔어도 창끝에 내가 꽂혔을 터. 생과 사가 결정되는 것은 한 끗이다.

손에서 창이 떠난 순간 상대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한 번의 창 질에 상대도 자신의 생을 건 것. 하지만 빗나간 창을 목격한 상대의 표정에 당혹감이 느껴지고 내 칼이 그의 흉부를 지나간다. 이윽고 상대의 눈에 초점이 흐려진다.

이번엔 철퇴가 날아온다.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자 그대로 부딪힌다. 충격이 크다. 움켜쥔 손끝이 으스러지듯 아프고 이와 이가 부딪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막았다는 것. 맞으면 죽지만 막으면 산다. 그러니 중요한 건 충격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막아냈다는 것이다.

순간 상대의 몸이 열린다. 철퇴를 한 번 더 휘두르기 위해 몸을 크게 뒤로 젖힌 것. 열린 몸 틈으로 깊숙이 찔러 넣는 칼. 어디까지 들어간 걸까? 칼끝이 딱딱한 뼈에 닿은 것이 느껴진다. 부르르 떨리는 상대의 육신, 곧장 쏟아 내리듯 늘어진다. 늘어진 시신은 고깃덩이와 같아서 칼을 쥔 손에 그 무게가 다 실리면 뒤엉켜 쓰러질 수 있다. 얼른 뽑아야 한다.

이 아수라 속에서 내가 보호받을 곳은 어디일까? 살과 살이 썰려 나가는 이 한복판에서…
방패! 그래 왼손에 쥔 이 방패뿐이다. 한 품 정도의 방패 안, 그 안에 나를 닮으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 그러니 절대 놓쳐선 안 된다. 끝까지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일단은 안심이다. 앞서 지나간 창끝과 철퇴가 이 방패에 막히지 않았다면 고깃덩이가 되는 건 저들이 아닌 내 신세였을 것이니…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이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편 3:3).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베테랑 군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전투 중 가장 두렵고 떨리는 순간은 총알이 빗발치는 순간도,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도 아니었다고 한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바로 중대장의 ‘착검’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숱한 전투에서 싸우고 살아남은 그 베테랑 용사들조차도 백병전을 앞둔 착검 명령 앞에서는 머리가 쭈뼛 설만큼 두려움을 느꼈다고 하니, 세상에 참혹하지 않은 전투가 어디 있으랴 만은 눈앞에서 적을 마주 보고 싸워야 하는 ‘백병전’만큼은 그 심적 부담이 다른 전투와 남달랐음을 의미한다.

다윗 역시 평생을 전장에서 보낸 전사였다. 전투의 일선에 나서기도 하고 지휘도 하며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사명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훗날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 손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다는 이유로 거절하실 만큼 (역대상 22:8) 그의 삶에는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살아온 장수에게 ‘방패’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지난 3월 호주에 전시 차 나가 있을 때 현지에서 COVID-19가 터졌다. 퍼스 시내 상점이 문을 닫고 마트에는 휴지와 소독제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맞은 팬데믹이었다.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곳에서는 나는 아무런 의료 혜택도, 어떤 복지제도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이방인‘ 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항공편조차 끊겨 버렸고 귀국 길은 완전히 막혀버리고 말았다. 머리를 식히려 공원이라도 가려 하면 ‘중국 바이러스 나쁘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 차별적 발언까지 듣곤 했으니, 그 흔한 산책 한 번 마음 편히 할 수가 없었다. 무려 4개월 동안을…

어느 날 아침, 묵상 중에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이시요. (시편 3:3)’

전장에서 방패의 역할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나를 보호해주는 방어 수단. 전장 같은 상황 속에서 방패의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재산일 수도 있고 각종 기초 사회 보장 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말씀은 재산이나 기초 사회 보장 제도의 보호가 없는, 한 마디로 기본적인 방패 하나 없는 나 같은 나그네도 하나님이 보호해주고 계시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내게 다가왔다.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은 너무나 ‘실제적(實際的/Practical)’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대한항공 화물기가 수송 목적으로 왔다가 비공개로 자국민을 태우고 갈 거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귀한 정보였다. 정보를 얻은 나는 곧바로 귀국 항공편을 신청했다. 호주 퍼스에서 시드니로, 시드니에서 인천공항으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통해 나와 우리 가정은 무사히 고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귀국 후 2주간의 자가 격리와 코로나 음성반응 등, 모든 절차를 안전하게 마친 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을 다시 영위하고 있다.

‘주는 나의 방패이시요.’라는 다윗의 고백은 다윗에게 단순히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병전을 치르며 현장을 경험한 백전노장의 ‘실제적(Practical), 경험적 고백’이었다. 방패로 사람의 ‘생과 사(life and death)’가 갈리는 것을 직접 목격한 그이기 때문이었다.

다윗처럼 백병전을 치른 것은 아니었지만 타지에서 맞이한 코로나 상황 속에서 내 마음은 백병전을 치르듯 치열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내게는 적의 칼이었고 뉴스 속보가 달려드는 철퇴였다. 게다가 인종 차별적 발언까지!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비수처럼 마음에 꽂혔으니 날아오는 화살이었다고 표현해야 할 듯.

어쨌든 그런 심적 부담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요소들로 우리 가정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 집 앞에 조용히 쌀과 고기를 두고 가신 어떤 집사님과 차량과 집 한 켠을 내어주신 집사님, 손 세척제와 휴지를 챙겨다 주신 또 어떤 집사님과 이 모든 일을 지지해주신 한인교회 목사님. 무사 귀국 후 돌이켜보니 하나님의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마치 하나님의 방패처럼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해 그저 익숙하기만 했던 ’주는 나의 방패시요’라는 다윗의 고백은 이제 나의 고백이 되었다. ‘은유적’이거나 ‘문학적’이 아닌 아주 ‘실제적’인…(호주 퍼스(Perth)의 ‘맨두라 소망교회/Mandurah Hope Korean Church’ 목사님과 교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며)

당신에게 하나님은 어떤 방패인가? 고국을 떠나 먼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당신이라면 나보다 더 실제적이지 않을까? 뉴질랜드에 입국해서 집을 구하고 차를 사고, 비자를 받고 영주권까지 받아 지금에 오기까지, 그 쉽지 않은 여정 속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방패가 되어주셨을까?

차 한 잔 마시며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다윗의 이 고백이 나의 고백임과 동시에 당신의 고백도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