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군통령!

“탈모! 탈모! 탈모! 탈모!”
“왼발! 왼발! 왼발! 왼발! “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군 교회에 가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구호와 찬양이다. 탈모는 모자를 벗으라는 의미로 노래의 박자에 맞춰 모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외치는 구호이고, 왼발은 줄지어 행진할 때 발을 맞춰 걸으며 외치는 구호이다.

군 교회 역시 미션스쿨과 같이 황금어장이다. 훈련소 내에 있는 군 교회는 특히나 더 그렇다. 훈련소 특성상 훈련병이 처음 겪게 되는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자살 기도하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종교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가 없는 훈련병도 불교, 천주교, 기독교 중 하나를 택하여 참석해야 한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초코파이 등의 간식거리만 제공해도 훈련병이 교회로 몰렸는데 타 종교에서도 초코파이 및 그 이상의 간식과 먹거리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서로 경쟁하게 됐다. 이런 훈련병에게 여성 CCM 가수가 와서 앞에 서서 함께 찬양하고 공연하는 것은 그들을 교회로 발걸음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훈련병은 약 두 달 후에 자대배치를 받아 이동하기 때문에 두 달 단위로 새로운 훈련병이 들어온다. 그래서 어떤 군 교회에서는 여덟 개의 여성 CCM 사역팀을 섭외해 두 달에 한 번 주기로 초청한다. 교회에서 여성팀을 섭외하는 것에 맞받아쳐 어느 군 법당에서는 섹시 댄스 추는 그룹을 섭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군 교회에서도 솔로 가수보다는 팀을 선호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노래와 연주, 랩, 레이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컨텐츠를 보여줄 수 있어 많은 군 교회에서 섭외가 들어온다.

보통 군 부대가 교통이 좋은 도심이 아닌 첩첩 산골에 대부분 위치해 있어 차로도 찾아가기 어렵다. 게다가 보안상의 이유로 정확한 위치가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아 교회 관계자와 부대 밖에서 만나 함께 출입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뉴질랜드 국적을 갖은 외국인이라 출입 몇 주 전에 외국인 거소증 및 연락처 등 세세한 정보를 미리 보내야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출입이 가능할 수 있게 된다. 여러모로 불편할 수 있는 사역지이지만 여성 사역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하고 필요성이 큰 사역이기에 군인 영혼들을 만나 쓰임 받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하다.

군 교회도 여러 종류이다. 재밌는 사실은 부대가 얼마나 도심에서 멀리 있는지에 따라 군인들의 호응이 다르다. 도심에서 가까이 위치한 부대에서 복무하는 군인은 휴가를 얻어 나가거나 근무 중에도 시내에 나가게 되면 여자를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런데 도심에서 먼 산골짜기나 섬에서 복무하는 군인은 좀처럼 젊은 여자를 마주치기 어렵다. 그래서 여성 사역자가 교회에서 찬양한다고 가면 수많은 군인이 몰려들고 호응도 어마어마하게 크게 한다.

특히 해병대는 특유의 직각 박수로 유명하다. 음악과 공연이 좋아서라기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남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고 박수 치는 것 같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강원도 산골에 있는 군 교회에 갔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진 날씨였다. 군인들은 부대별로 무리 지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예배 시간 40분 전부터 예배당에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두시간 정도 미리 가서 세팅과 음향 체크하고 대기실에서 환복과 메이크업 등의 공연 준비를 한다.

그렇게 미리 도착한 교회 안은 너무나도 추웠다. 장갑을 벗고 바이올린을 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손을 입안으로 쑥 넣어 호호 불고 연주하다가 다시 차가워지면 다시 입안에 넣어 불기를 반복했다. 이런 겨울 날씨에 사역지에 가게 되면 손난로를 몇 개씩 챙겨가야 하지만, 그날은 손난로도 소용이 없었다. 어렵사리 음향 체크를 마치고 많은 사병을 만날 기대감으로 준비를 했다. 예배 시간이 다가와 예배당이 채워지기 시작했고, 사람의 열기로 인해 따뜻해져 갔다. 드디어 내 순서가 돼서 연주하며 무대에 오르자 고막을 뚫을 것 같은 함성으로 반응해줬다. 역시 외진 곳에 있는 부대라 호응 소리가 더 큰 듯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신나는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앉아있던 사병들이 하나 둘씩 무대에 나오더니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두 명이 나오니 질세라 더 많은 사병이 나와 무대를 꽉 채워 흥에 겨워 춤을 추는데 연주하고 있는 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마치 정글에서 원숭이 떼가 덤벼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다가오면 내 몸에 닿아 곤란해질 수 있겠다 싶어서 순간 어떡할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멀찌감치 서 있는 키 큰 헌병들이 눈에 들어와 뚫어져라 쳐다보며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헬프 미!’

그러자 내 절실한 생각을 읽었는지 헌병들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무대에 있는 무리를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들어가 앉습니다. 지금 바로 자기 자리로 들어가 앉습니다!”

더 춤추며 즐기고 싶은 아쉬운 얼굴을 하며 사병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휴~ 다행이다. 연주를 멈출 수도 없고 참 곤란했는데,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공연을 이어갔다.

백령도에 군 교회를 설립하고 후원하는 교회가 서울에 있다. 그 교회에서 나를 초청해서 성도 30여 명과 함께 위문품을 들고 백령도 행 배에 올랐다. 도착해서 위문품을 건네고 위문 공연을 준비했다. 사뭇 좁은 공간에 수많은 군인들이 함께 했고, 역시나 뜨거운 반응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증을 시작하는데, 수십번 한 이야기인데 하필 군 교회에서, 또 젊은 사병들 앞에서 말이 헛나온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저는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뉴질랜드에 이민을 떠났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날따라
“저는 국.민.학.교 때…!”
라고 말실수를 한 것이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고 얼마 안 돼서 한국을 떠났기에 국민학교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 해도 한국에 돌아와 수년을 초등학교라고 하고 살았는데…. 동안인 외모 덕에 사병들의 나이 대와 큰 차이 없이 여겨져 그들과의 공감대가 더 잘 형성됐는데 순간적인 실수로 내 나이가 드러나 버린 것이다.

“국민학교? 국민학교래~” 하면서 사병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아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국민학교라고 하셔서…” 라고 수습해 봤지만 이미 입술에서 빠져 나와 버린 말이기에 주워 담는 게 불가능했다.
“How old are you!? 몇 살이에요!?”라고 객석에서 사병들이 크게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내 얼굴이 벌게 지는 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고 간증과 공연을 진행해 나갔다.

늦은 시각에 위문 공연이 끝난지라 서울로 출발하는 배가 없어서 군인회관에서 모두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출발했다. 서울로 향하는 배 안이었다. TV 앞에 사람들이 다 모여 뉴스를 보고 있어서 나도 무슨 뉴스인가 하고 가서 봤다. 다름 아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백령도를 떠나고 나서 바로 일어난 듯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대표님, 동료들이 여기저기서 안부 연락이 왔다.

“저는 괜찮아요. 저도 뉴스 보고 알았어요.” 하고 안심시키고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기도하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