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어릴 적에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여서 항상 형이랑 동네 중국집과 분식집에서 외상으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매달 말에 어머니가 정산했다. 어릴 적 기억엔 항상 집밥보다는 밖에서 밥을 많이 먹었고, 집이나 버스정류장에서 형과 일찍 출근하셨다가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많다.

5년 전쯤 어머니가 뉴질랜드에 여행 오셨을 때 옛날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와 부대끼며 크고 싶었던 그 시절에 그렇지 못했기에, 다른 애들보다 “사랑을 덜 받은 것 같이 느꼈었던 거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을 때 어머니는 참으로 슬퍼하시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서운해했다.

그리고 목이 메는 음성으로 말씀하시길 “그때 엄마가 할 수 있던 것은 열심히 일하고 너희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는 것이었고 그게 어머니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사랑표현이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언가 속에서는 알고 있었고, 존재했지만 마치 우리가 친숙한 공기로 숨 쉴 수 있는 감사함을 잊듯 평범했지만 소박했고 소중했던, 어렸을 때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사랑받고 있었다’고. 갑자기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벅차게 느껴지며 다가왔다.

그렇다. 사랑은 ‘느껴야 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결코 이해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랑을 주어도 받질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어리석고 철없게도 그 충분하게 넘쳤던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듯 사랑은 느껴야 하는 것이기에(Invisible)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을(Visualize) 보이고 느껴볼 수 있게 표현해 보고자 했던 ‘Love’라는 주제로 시작했던 패션 학교 3학년 1학기 작품을 오늘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How do you feel the love?
그래서 ‘사랑=느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전화 통화, 신체 접촉, 안아주기, 요리 등등 여러 가지 피드백이 있었다.

그러던 중 무릎을 ‘탁’치며 다섯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이라는 오감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묘사 해보는 것이었다.

시각(Vision)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을 때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떤 시각적인 색으로 따뜻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브라운이라는 색이 나에겐 따뜻해 보이는 색이었다.

청각(Hearing)은 어머니의 음성을 생각해보면 부드러웠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미각(Taste)과 후각(Smell)을 묶어 생각해보게 했던 엄마의 음식이란 항상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주어 자극적이지 않았고 깔끔하고 고소하며 담백했던 맛이 떠올랐다.
촉각(touch)을 생각한다면 “Snug(아득한)”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엄마의 그 품은 참 포근했고, 항상 편안했다.

그렇게 모여진 다섯 가지에서 얻은 재료들을 써놓고 생각해보았다. 따뜻해 보였던 색과 부드러운 느낌 그리고 깔끔하며 담백한, 마지막으로 엄마의 품을 떠올렸던 ‘아늑하며 포근한 건 무엇이 있을까?’라며 골똘히 생각을 꽤 오래 해도 답이 없었다.

골똘한 생각에 너무 집중을 해서인지 배가 고파왔고 그러던 중 “와……빵!”이란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가 눈을 감고 빵을 생각해보면 빵은 부드럽고 포근하며 담백하고 편안하고 색감조차 내가 생각할 때 따뜻함을 주는 브라운이었다.

그렇게 빵이라는 결론을 얻고 빵에 대해 찾다가 빵 패키징을 보며 봉지 끝에 묶는 부분처럼 옷 디테일을 표현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다가 빵 클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빵 클립들은 사람마다 느끼는 사랑의 방법이 다르듯 여러 색감을 표현하기도 좋았고 또 무엇보다 유통기한의 날짜는 무언가 기억에 남게 하는 참 좋은 재료였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과 교회 사람들에게 “혹시나 빵 먹고 남은 빵 클립은 나에게 가져다 주시오!” 해서 빵 클립을 모아서 스캐너를 통해 프린트로 제작하게 되었다.

순종
옷을 만들 때는 몰랐지만 완성되어가는 걸 보니 들었던 생각은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필요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조정하시며 고쳐 만드시고 포인트들을 잘 남겨주신다는 것이다.

Chiffon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원단. 매번 써오던 직기 원단을 안 쓰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엄청 얇은(Sheer) 원단을 쓰며 다루어보느라 성질이 났었다.

자꾸 왔다 갔다 패턴을 대고 그릴 때도 움직이고 가위로 자를 때도 움직이고, 하물며 박음질할 때도 이리저리 쉽게 박음질할 수 없게 움직여댄다. 그런데 쉬폰으로 만들다 보니 너무 매력 있고 아름다운 원단이었다. 박음질하느라 했던 고생들이 무색해질 만큼 보기에 뿌듯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쉬폰에 분필이 그려질 때처럼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듯 절대 안 된다며 몸부림을 친다.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며, 우리가 인생의 주인이길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친구든, 어떤 것들에서든 떼어 혼자 두게 하실 때가 있다. 마치 원단이 다같이 붙어있다가 혼자 가위로 오려져서 어디론가 목적에 의해서 가듯이.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체대로 구상하시며 삶을 하나하나 붙여가신다. 또 동역자들(팔, 목, 등등)도 붙여주신다.

그렇게 나의 색 위에 다른 색을 칠하실 때 나는 나의 색이 중요하므로 많이 노력했고, 또 나의 삶의 중요한 부분들이 가위로 잘려 나가듯 아팠을 때는 그저 원망했지만 그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붙여가며 다듬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지나 보았을 때 ‘너무 아름답고, 그랬었어야만 했다’라는 고백이 나오듯.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에 거룩한 동참을 하게 하신다.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가? 알고 싶은가? 나는 오늘 순종하고 있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하기 싫은 공부, 쓰기 싫은 원단을 써야 할 때가 있지만 순종으로 하는 가운데 또 깨달아갔던 건 참 중요했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