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박과의 만남

오클랜드 대학에는 한 해에 네 번의 방학이 주어진다. 물론 그중 두 번은 Study Break이라고 해서 주요 시험 전 공부와 과제들을 하라고 주어지는 방학이지만 말이다.

하나님은 왼팔의 마비 증상으로 2년 동안 바이올린을 쉬게 하시고 독일 유학의 꿈을 접은 나에게 기적적인 치유를 허락하시며, 학사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게 하셨지만 계속 클래식 바이올린을 할 수 있게는 하지 않으셨다.

석사과정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매일 6시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지만, 왼팔의 컨디션이 100%까지는 돌아오지 않아서 그만큼의 연습량은 무리가 되었다. 그래서 석사과정은 음대가 아닌 교육대학원으로 전환했다.

청소년기에 방황했던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때 나를 신앙적으로 잡고 이끌어줄 수 있는 멘토나 선생님이 계셨다면, 그 중요한 청소년기 때부터 주님을 위해 공부하고, 헌신하여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기에, 내가 청소년들에게 그런 멘토가 되어주기 위해 고등 교육 Secondary Teaching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자 바이올린 연주는 놓지 않고 있었기에, 더 깊이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뉴질랜드나 한국에서 레슨을 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만 해도 전자 바이올린이 매우 생소한 악기였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영국의 바네사 메이 Vanessa Mae와 한국의 유진 박 외에는 다른 연주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유진 박이 내 연락을 받아줄까 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유진 박의 SNS를 찾아냈고, 그곳에 기재된 연락처로 용기를 내어 국제전화를 시도했다.

전화를 받은 것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유진 박이 아님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다름 아닌 유진 박 매니저였고, 내가 2주의 대학원 방학 기간 동안 한국에 가서 유진 박에게 전자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그때부터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가서 그와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사실 직접 만나본 유진 박은 광범위한 장르의 음악을 즐겨듣고 해석하며 연주하는 천재성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임은 틀림없었지만 누구를 가르쳐주거나 지도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연주를 듣고 따라 하고, 애드립하는 패턴을 익혀 카피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매일 연습실에 나가 재즈와 팝 음악을 들으면서 솔로 악기인 색소폰과 일렉 기타의 즉석 연주와 애드립을 카피하는 연습을 했다. 클래식 연주자는 나만의 템포와 해석으로 솔로 곡들을 연주하기 때문에 박자(beat)에 구애받지 않고 따라와 주는 반주에 맞춰 연주한다. 그에 비해 드럼 비트에 정확하게 맞춰서 연주해야 되는 실용음악은 그야말로 나에게 큰 도전이자 과제였다. 그래서 매일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연습하며 내 팔과 손가락의 근육을 정확한 박자에 맞춰 길들이는 훈련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몸으로 뮤지컬 프로듀싱과 한국 방문, 석사과정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그럴때일 수록 주님께 의지했고, 정말 신기하게도 과제와 시험을 볼 때마다 하늘의 지혜를 허락하셔서 매번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다. 내가 그 무엇 하나 소홀하지 않고 열심으로 주의 일과 학업을 감당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 나머지 부분을 채워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었다.

졸업할 시기가 되자 유진 박 매니저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그는 내가 바이올린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까지도 가능한 아티스트라 제2의 유진 박으로 키워보고 싶다며 아예 한국으로 와서 활동하자고 제안하였다. 하지만, 세상 음악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클래식 음악보다는 실용음악이 더 다양한 연령대, 특히 젊은이한테 더 다가가기 쉬워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깨달은 터라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상상하고는 있었지만, 찬양이 아닌 세상 음악을 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가가 가장 먼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여러 신앙의 선배들과 가족한테 자문하고, 기도 부탁을 했다.

기도의 응답은 Yes, No, Wait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배웠다. 기도 응답을 주실 때 간혹 직접적인 계시, 또는 환상을 통해서도 주시지만 대부분은 여러 상황과 주위 사람들을 통해 주신다.

이번의 경우는 가족과 교회 신앙 선배님들, 친구들 등 모든 지인이 한국에 가서 도전해 보라고, 주님께서 주신 기회일 지도 모른다고, 만약 갔다가 No 하시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느냐고 권유해 주셨고, 어느 상황도 No의 상황이 없었기에 나는 한국행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