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은그릇과 함께 준 은촛대를 가지러 오셨구려. 그러잖아도 왜 은그릇만 가져갔을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오.”
주교는 벽난로 위에 놓여있던 두 개의 은촛대를 가져다가 장발장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장발장은 온 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경찰들이 물러갔다. 주교는 장발장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선에 사는 것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샀소. 이제 당신을 파멸의 세계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 바칠 것이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이 미뤼엘 주교(Bishop Myriel)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첫 경험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레 미제라블’은 1862년에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발표한 소설이다. 프랑스어 제목인 ‘레 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장발장은 과부가 된 누나와 조카 일곱을 부양하며 살았다. 어느 일요일 저녁, 그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치다 붙잡혔는데, 이에 더하여 그가 집에 소지한 소총이 발견되면서 밀렵 죄까지 추가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감옥에 갇힌 그는 4차례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기가 계속 늘어나 결국 19년의 징역을 살았다. 그는 마침내 만기출소하지만(영화에선 가석방), 당시 전과자에게 발급했던 노란색 통행증이란 족쇄가 그의 자유를 제한했고, 전과자인 그에겐 음식과 하룻밤 잠자리조차 거절되었다.
그런 장발장을 따뜻하게 영접한 이는 미뤼엘 주교(Bishop Myriel)였다. 그러나 배은망덕하게도 장발장은 밤중에 주교의 은그릇을 몰래 훔쳐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도 미뤼엘 주교는 자기가 은그릇 뿐 아니라 두 개의 은촛대까지 더하여 선물로 준 것이라며 경찰을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용서를 입고도 장발장은 또 가난한 소년의 40수짜리 은화를 가로채는데, 이 사건 직후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비로소 완전히 바뀐다. 그는 이름을 마들렌(Madeleine)으로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여 사장이 되고 시장까지 되었다. 그러나 얄궂은 것은, 전과자의 노란 통행증을 감추고 신분을 세탁한 것이 당시 실정법상 범법행위라는 사실이었다.
자베르 경감이란 자가 사라진 장발장을 계속 추적했다. 장발장(마들렌)은 그로 오인된 무고한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되자, 자기가 진짜 장발장이라며 정체를 밝히곤 충격 속에 법정을 빠져나간다.
한편, 장발장의 공장 종업원 중에 팡틴(Fantine)이란 여자가 있었는데, 그 당시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았던 미혼모란 사실이 공장에 알려지면서 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딸 코제트(Cosette)를 전에 살던 마을의 여관주인 테나르디에(Thenardier)에게 맡겨뒀었다. 코제트의 부양비를 보내야했던 팡틴은 공장에서 해고된 후 창녀가 되었다.
장발장이 뒤늦게 부당해고된 팡틴을 돌보려했지만 그녀는 폐결핵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만다. 팡틴이 죽기 전, 장발장은 그녀에게 코제트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장발장은 테나르디에 집에서 학대받던 코제트를 데려와 그녀의 아버지가 되어 보살핀다.
어느 날 코제트는 마리우스(Marius)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마리우스는 공화정을 꿈꾸는 젊은이였다. 6월 항쟁(June rebellion)이 일어난다. 공화정의 회복을 부르짖는 시위였다. 청년들은 정부군과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장발장도 코제트때문에 마리우스를 찾아왔다가 청년들을 돕게 된다. 자베르 경감도 정보 입수 차 청년들 틈에 잠입했었는데, 정체가 탄로나 포로가 된다. 장발장은 포로가 된 자베르를 죽일 수 있었지만 풀어주고 만다.
6월 항쟁이 좌절되고 마리우스가 크게 다치자 장발장은 그를 업고 하수구를 통해 피신한다. 하수구에서 나온 장발장은 자베르와 마주친다. 자베르는 장발장과 마리우스를 보내준 뒤, 용서와 법 집행간의 갈등을 이기지 못해 세느강에 투신 자실하고 만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는 결혼을 하지만, 장발장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죄인이란 죄책감에 짓눌려 홀로 떠나버린다. 후에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장발장을 찾아내 만나러 가지만. 장발장은 이미 심신이 쇠약해져 죽어가고 있었다.
장발장은 미뤼엘 주교에게서 받았던 은촛대를 코제트에게 물려준다. 코제트의 어머니 이름이 팡틴임도 알려준다. 장발장은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촛대의 희미한 빛이 그 모습을 비췄고, 밤하늘은 별도 없고 한없이 어두웠다.
이렇게 소설의 결말을 그의 죽음으로 장식한 장발장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다.
가난으로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그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형벌 탓에 19년의 옥살이를 해야했다. 만기출소를 했지만 전과자의 노란 통행증은 그에게 새로운 족쇄가 되었다.
그가 만난 첫 구원의 빛은 은그릇을 훔친 장발장에 대한 미뤼엘 주교의 용서를 통해 비춰졌다. 그 장면에서 미뤼엘은 간음한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장)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닮았다.
그럼에도 장발장은 40수 은화의 유혹에 또다시 넘어졌다가 마침내 죄된 본성을 찔러 쪼개어 회개를 이끌어내신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Irresistible Grace)를 만나 고꾸라졌다. 그 후 장발장은 완전히 변했다.
우린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성경의 용서를 만난다. 미뤼엘로부터 장발장에게로 흘러간 용서는 자베르에게까지 흘러갔다. 자베르는 결국 자살하고 마는데, 이는 장발장이란 한 인간을 오직 율법으로만 정죄하려했던, 은혜없는 율법주의의 종언이라 볼 수 있다.
장발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은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죄인이란 죄책이 코제트의 결혼식날 그를 떠나게 했다. 그 수렁에서 그를 해방시켜준 건 다름아닌 양딸 코제트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장발장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말씀하는 로마서 8:1의 진정한 해방을 누릴 수 있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엔 불쌍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5장의 그 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그러나 작가 빅토르 위고는 그 모든 불쌍한 자에게 그냥 주저앉아 있지만 말라고 외친다.
1832년, 프랑스의 6월 항쟁은 실패했다. 그래도 그 항쟁은 값졌다. 끝까지 싸우는 한, 그들은 패배한 게 아니었다. 결국 공화정은 승리했고 오늘날을 이룬 역사가 되었다. 이제 우리를 돌아보자. 죄와 싸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떠한가.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는데도 계속 레 미제라블로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피흘려 싸울 것인가(히브리서 12:4).
2012년에 개봉된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바리케이드의 젊은이들이 부른 ‘민중의 노래’를 들을 때, 하나님 백성의 진군가처럼 느껴져 그 첫머리를 소개한다.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가 죄에 분노한 우리의 함성이길 바라며….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되어 울리네 /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