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답게 살자

김종두 목사<임마누엘교회>

생의 마지막 순간,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얼마나 복일까?“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디모데후서 4:7~8)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말한 것이 그에게는 유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의 종으로서 이것보다 더 의미 있고, 복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추운 겨울날, 처자식 하나 없이 낯선 지하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얼마나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는가? 그러나 바울은 감격과 희열에 찬 모습으로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런 승리의 개가와 같은 유언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자신의 사역과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아 줄 믿음의 제자들을 양육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곁에는 의사였던 누가가 1차 로마감옥 때도 있었는데 2차 로마감옥에까지 따라와서 제자로서, 의사로서 바울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먼 거리에 있다 할지라도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와 줄 디모데도 그의 곁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선교여행 중 힘들다고 도망을 쳐버렸고, 그 일로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툰 후 서로 갈라서게 만들었던 마가 요한도 그 동안 변화되고 성숙되어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사도 바울, 디모데, 마가, 그리고 누가, 이들이 신약 성경의 27권 중에 16권을 기록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물려받아 계승, 발전 시켜 줄 후배와 후진들을 기르고 양육하는 일에 일평생을 바쳤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내가 뉴질랜드에 온 지 13년이 되었다. 처음 5년은 오클랜드순복음교회, 에덴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다가 8년 전에 임마누엘교회로 부임하면서 목회 초년병으로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으며 목회를 하고 있다. 내 짧은 목회의 경험으로 진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요즘 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 모든 이념이 보수, 진보로 나누어지고, 교회도 그런 이념으로 나누어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시대에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가?

믿음의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싫어할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으니까 싫어할까? 둘 다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그냥 대충 살라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4:12에 보면 디모데에게 말하기를“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디모데전서4장12절)고 권면하고 있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이다. 바울의 핵심은 그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욱 더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능력이다. 목사들은 성도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양육해야 한다.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가운데서 목사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디모데후서 4장13절 상)고 디모데에게 부탁을 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이 순교를 당하기 전, 남긴 유품이라고는 이 겉옷 한 벌과 가죽 종이에 쓴 책 한 권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세 때는 예수님의 수의와 함께 바울의 이 겉옷까지 한 번 찾아보자는 운동도 있었다고 한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이 얼마나 초라하고, 서글퍼 보이는 인생인가? 땅 한 평, 반반한 집 한 채 남겨 놓지 못하고 다 낡아빠진 외투 한 벌 남겨놓고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노사도의 모습이 얼마나 볼품없어 보이는가?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사도 바울의 그런 인생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값진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그 좋은 가문과 배경, 학벌, 권세와 명예, 재산 다 쏟아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다 낡아빠진 외투 한 벌 이 땅에 남겨 놓고 간 것이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교회의 소식 중에 교회의 대형화의 모습 속에서 이런 검소함을 찾아볼 수가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검소함과 낮아짐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먼저 온유와 겸손, 그리고 사랑을 회복하기를 소망한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디모데후서 4장13절 하)고 부탁한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책이 무슨 책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학자들이 구약 사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죽음이 바로 앞에 두고 있던 바울이 왜 그 책을 갖다 달라고 부탁을 했을까? 비록 죽음이 앞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끝까지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목사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러한 바울의 갈급함이 있기를 소망한다.

이런 바울이었기에 마지막에 그런 고백을 남기고 순교를 하여 주님 앞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서 어떤 유언을 남길 수 있겠는가? 바울과 같이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