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의 “목걸이”

“얘 말도 마.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그 목걸이 때문에 말이야.”
“무슨 얘기니? 무슨 목걸이?”
“십 년 전에 내가 교육부 장관댁 파티에 간다면서 목걸이를 너에게서 하나 빌렸잖아.”
“그래, 생각나.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돌려주었잖아.”
“그래. 사실은 파티에 다녀온 후 그 목걸이를 잃어버렸어. 그래서 그것과 똑같은 것을 샀지. 그걸 사는데 든 돈을 갚느라 십 년이 걸렸지 뭐니?”

마틸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자그마치 삼만 육천 프랑이나 되는 거액이었어. 그동안 너는 상상도 못 할 고생을 겪었지. 하지만 이젠 고생도 다 끝났어.”

마틸드는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인 잔느가 마틸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사느라고 그렇게 고생을 한 거니?”
“그렇다니까. 아직도 모르고 있었니? 하긴 똑같은 것을 산다고 샀으니까.”

마틸드를 바라보는 잔느의 눈길이 촉촉해졌다. 갑자기 잔느는 마틸드의 두 손을 덥석 잡더니 감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오오, 마틸드. 내 목걸이는 몇 백 프랑도 안 나가는 가짜 목걸이였는데….”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이 188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목걸이’(The Necklace)의 마지막 장면이다. 대체 마틸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초지종을 한번 알아보자.

마틸드(Mathilde)는 아름답지만 사치스럽고 허영심이 많은 여자였다. 그녀는 상류층의 삶을 동경했으나 남편이 하급 공무원인 탓에 사치와 허영을 채울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마틸드의 남편이 교육부 장관 관저에서 열리는 파티 초대장을 가져왔다. 하급 관리로선 구하기 힘든 초대장이었지만 아내를 위해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마틸드는 “다들 공작새처럼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날 텐데 난 뭘 입고 가란 말이에요?” 라며 역정을 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휴가비로 모아둔 500프랑으로 옷을 사주었다. 그런데도 마틸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옷만 있으면 뭐 해요? 다들 보석으로 치장하고 파티에 올 텐데. 차라리 파티에 안 가는 게 낫겠어요.”

그 말에 남편은 부자 친구 잔느(Jeanne)에게 보석을 빌릴 것을 제안하고, 마틸드는 결국 잔느를 찾아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파티에 갔다. 파티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마틸드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새벽까지 파티를 즐긴 마틸드가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었다. “목걸이가,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마틸드와 남편은 필사적으로 목걸이를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보석상에서 똑같은 목걸이를 찾아봤지만 구할 수 없어 가장 비슷한 목걸이라도 사서 돌려주려 했지만, 값이 무려 3만6천 프랑이나 되었다. 이를 사느라 남편은 유산 1만8천 프랑을 다 털어 넣었고, 나머진 고리대금까지 얻어야 했다. 그때부터 둘은 막대한 빚더미를 떠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부부는 빚을 갚기 위해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녀를 내보내고 집을 팔아 작은 다락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은 퇴근 후에도 잔업과 상점의 장부 정리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마틸드 역시 바느질 감을 맡아 밤새도록 일했고, 몇 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쓰레기를 버리고 물을 길으러 다녔다.

그녀는 외모 뿐 아니라 성격까지 바뀌어 점점 빈민굴의 우악스런 아낙네처럼 변해갔다. 그렇게 무려 10년의 세월을 억척스레 일한 덕에 가까스로 빚을 모두 갚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물론 마틸드까지 폭삭 늙어버렸다.

어느 날 외출을 나갔던 마틸드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잔느와 마주쳤다. 마틸드는 잔느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그때 잔느의 마지막 말이 소설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 극적인 엔딩이었다.

“오오, 마틸드. 내 목걸이는 몇 백 프랑도 안 나가는 가짜 목걸이였는데…”

이것이 위 지문에 얽힌 사건의 자초지종이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나지만, 그 목걸이가 가짜였단 말을 들은 바로 그 순간, 마틸드의 마음은 대체 어땠을까?

러시아의 시인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시를 썼지만, 필경 마틸드는 슬픔이나 노여움을 느낄 틈도 없이 깊은 허무의 심연으로 곧장 빠져들고 말았을 것이다.

누가 봐도 마틸드는 헛고생을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10년 세월을 그렇게 순전히 낭비하고 만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소설은 오히려 정반대의 여운을 독자에게 남겨둔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마틸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여백….

무엇보다 마틸드는 사치와 허영을 좇는 헛된 꿈에서 깨어났다. 사치는 요한계시록17:4-5에서 바벨론이라 부르는 가증한 음녀의 대표적 속성이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또한 허영은, 빌립보서 2:3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는 대로 우리 모두가 빠져들어선 안 될 마음의 덫이다.

마틸드의 변한 모습은 어떠한가? 세상은 그녀를 비참하게 여길지 몰라도, 성경은 오히려 거친 삶으로 늙고 지친 마틸드의 모습을 더 귀하다고 평가할 것 같다. 마틸드에겐 실인즉,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 더 진귀한 보물이 안겨졌다.

그 보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셨던 가장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돌보며 지키는 사명을 주셨다(창세기 2:15). 동산지기로 섬겼던 아담과 하와의 손은 필경 일하는 농부의 거친 손이었을 것이다. 10년 고생 끝의 마틸드 손이 바로 그랬을 것이다.

이전의 마틸드가 지녔던 인생관으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인생의 허무한 결말을 피할 길이 없었다. 성경은 전도서 1:2에서 이러한 인생의 민 낯을 솔로몬의 입술을 통해 드러내 준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이 허무로 빠지지 않을 유일한 길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삶을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보이지 않는 것이니….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마틸드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녀는 10년의 고생이 가리키는 영원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다음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한다.“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인생 전부를 바쳐도 절대 허무하지 않을 진짜 가치를 그녀가 찾을 수만 있다면, 10년의 세월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라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3:44에서 천국이 보물이라고 비유해주셨다. 그리고 천국을 위해서라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 해도 아깝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소설의 결말 뒤 마틸드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혹여 마틸드가 그 깊은 허무 끝에 마침내 영원을 사모하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회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더 이상 허무하지 않다.

왜냐하면 천국은 10년 세월 정도가 아니라 자기의 소유를 모두 파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사야 할 보화 중의 보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