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다.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전기담요로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 안은 하루를 마감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알기에 겨울 채비를 한다. 아내가 여름옷은 정리해서 넣어두고 두툼한 옷가지들로 옷걸이를 채웠다. 히터도 준비해서 을씨년스러운 뉴질랜드 겨울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정작 마음은 겨울을 기다리지 않고, 가고 싶은 계절로 마실 나간다.

매해 똑같은 겨울맞이 준비를 하지만, 그 마음은 매해 다르다. 오랜 타향살이가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고향의 계절이 진짜 같고,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추위는 가짜 같다.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거짓부렁이 아니었나 보다.

마음에 남은 고향
몇 해 전 서울에 있는 한 대학합창단이 미국 순회 연주를 하는데 로스앤젤레스에 들러 공연을 마치고 잠시 관광을 하기 위해 태평양이 내려 다 보이는 시원한 전망대를 찾았다고 한다.

젊은 대학생들이 사진 찍고 분주하게 오가는데, 그 틈 사이로 한 중년의 한국 부부가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태평양 너머를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애잔했는지 합창단원 중 한 명이 남촌이란 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한 명이 부르던 ‘남촌’은 이내 합창단 전원의 라이브 콘서트가 되었다. 그 가곡을 듣던 중년 부부 눈에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 합창단원의 인솔자가 중년 부부에게 사정을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 부부가 말하기를, “자신들은 한국을 떠나온 지 25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사느라고 바빠서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그립고, 형제들이 보고 싶고, 친구들이 그리울 때마다 쉬는 날, 이곳에 올라와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곤 했는데, 합창단이 부르던 ‘남촌’의 가사와 음률이 마음속에 있던 고향을 꺼내어 보게 했다는 것이다.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고향에 대한 추억,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그리운 벗들과 지내던 시간이 고스란히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주름살도 깊어지지만, 고향의 하늘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상록수처럼 사철 푸르게 남아있다. 내 지나간 젊은 날들을 고스란히 간직해 놓은 고향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마음을 훔친다.

마음에 겨울이 찾아오면
겨울이 마음에 찾아올 때가 있다. 매서운 바람이 살갗을 때리지만, 마음마저 차갑게 할 수 없다. 마음에 겨울이 찾아드는 까닭은 지쳤기 때문이다. 살아야 한다는 의미와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을 상실할 때, 찬 바람의 냉기는 마음 깊은 곳까지 얼어붙게 한다. 추운 날씨는 견딜 수 있지만, 마음에 불어온 찬 바람을 견디는 것은 어렵다.

겨울에도 피는 꽃이 있다. 모든 식물이 추위를 피해 숨을 때 수선화는 그 영롱한 자태를 가장 추운 계절의 눈밭에서 드러낸다. 식물들은 저마다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 추운 겨울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서 견디고, 따뜻한 계절이 오면 발화하게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겨울에 꽃이 피려면 이 생체시계의 사이클이 반대로 작동해야 한다. 따뜻한 계절 동안 에너지를 축적해 추운 겨울, 꽃이 피게 한다.

마음에 겨울이 찾아오면 외롭고 지친다.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다. 좋은 경치를 보아도 감흥이 없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아도 식욕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겨울은 외부의 아름다움으로 녹지 않는다. 마음의 겨울은 냉랭한 나의 곁을 누군가가 채워주어야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보이지 않으면 깊은 고독에 침잠된다. 내 곁을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많은 사람이 흐르는 세월을 따라 멀어져 간다. 따뜻한 봄날 찬란할 것만 같았던 내 인생에 가을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어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몸이 늙어가는 것은 수용할 수 있으나, 마음마저 색 바란 화폭의 그림처럼 낡아지는 것을 한사코 부인했던 용기는 사치였다.

마음의 겨울에 피는 꽃
수영을 잘하는 비결은 몸에 힘을 빼는 것이다. 그런데 물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당황한 사람에게 힘을 빼라고 하면, 그 말을 듣고 힘을 뺄 수 있을까? 수영강사의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이, 오랜 시간 수영을 통해서 물과 친해지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된다.

물속에서 힘을 뺀다는 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물에 내 몸을 던지는 것이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쓰던 힘을 물에 잠기도록 내 몸을 맡기는 것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몸을 물에 던지면, 물은 나의 또 다른 쉼터가 된다.

마음에 불어온 찬 바람을 막을 방법은 없다. 만약 그 방법을 알았다면 내 소중한 마음을 겨울 삭풍에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에 내 몸을 던지는 것처럼, 마음에 불어온 겨울바람에 마음을 던졌다. 죽을 것같이 아픈 줄 알았는데 괜찮았다. 매섭게 몰아친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사라졌는데, 그래도 남은 벗이 있었다. 모든 소망이 다 사라져 간 겨울 저녁 황량한 들판에 핀 수선화처럼 곁을 내준 벗, 그분이 거기에 계셨다.

수선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 뜨거운 여름 동안 축적한 에너지를 추운 겨울 쏟아내는 것처럼, 오월의 햇빛같이 찬란했던 젊은 날, 당신과 함께 나누었던 사랑의 노래를 그가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 빈자리에 당신이 계셨다. 왜 몰랐을까? 당신이 거기에 늘 계셨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당신 곁을 떠났다는 것을, 마음에 분 겨울바람이 당신의 빈자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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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서울신학대학과 APTS M.Div를 졸업하고, 예동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목회와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사건들 속에서 묵상하며 깨달었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연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