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목

0
10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주시고, 성막 안에 들어갈 기구들을 언급하셨다. 또한, 성소와 지성소에 배치될 기구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먼저 지성소에 배치될 증거궤, 성소에 들어가게 될 분향단, 떡상, 촛대, 그리고 성막 뜰에 배치될 번제단을 언급하셨다. 그런데 이 기구들을 조각목을 사용해서 만들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왜 조각목으로 성막에 사용될 기구들을 만들기 원하셨을까?

조각목은 가공하기 위해서 많은 손질이 필요하다
조각목은 영어로 ‘Acacia Wood’이다. 영어 성경을 중국어 성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아카시아 나무가 중국에 있는 조각자나무와 비슷해서, 중국어 성경 번역가들은 아카시아 나무를 ‘조협목’으로 표기했다.

이후에 영어 성경을 한글 성경으로 번역할 때 중국어 성경을 참조했는데, 이때 참여한 초기 번역가들이 이를 ‘조각목’이라고 표기해서, 우리에게 아카시아 나무가 조각목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이 이해했던 아카시아 나무와 애굽과 아라비아, 이스라엘 남부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는 많이 다르다.

일단 자라는 토양이 다르다. 광야에서 흔하게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는 물이 부족하므로 연 강수량 50mm 이하에서 자라도록 최적화되었다.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일단 그 뿌리가 땅속 깊이 400~500m까지 뻗어 있으며, 어떤 나무는 그 뿌리가 2km에 달한다고 한다.

히브리명으로 Shittim 나무라고 불리는 조각목의 특징은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나무 자체에 수분이 많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을 정도로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다. 또한 나무가 곧게 뻗지 않고, 휘어져 있으며, 잎이 가시로 덮여 있어서 가공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우선 성막 안에 있는 증거궤와 분향단, 떡상, 그리고 번제단을 조각목으로 만들기 위해선 여러 조각목을 이어 붙여야 한다. 그 절정은 성소와 지성소의 벽을 이루는 널판이다.

총 48장의 널판이 사용되는데, 그 널판 역시 조각목으로 만들어야 했다. 시내 광야에서 얼만큼의 조각목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쳐서 이 기구들이 만들어졌을까?

성막에서 사용될 기구들을 조각목을 사용해서 만들 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조각목으로 형태를 갖춘 다음, 금으로 도금하는 것이다.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기구들은 정말 볼품없었다.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가공된 나무들을 붙이고, 이어서 기구들을 완성하고 나면 그 모양은 누더기처럼 보였다. 그 누더기 같은 조각목 위에 금이 부어져 성소와 지성소를 이루는 널판과 기구들로 다시 태어났다.

하나님이 다듬는 조각목은 내 생각과 마음이다
하나님이 조각목의 거친 표면과 곧지 않은 나무를 펴서 성막의 기구를 만드는 것과 같이 나를 다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내 생각과 마음이다. 주께서 내 생각과 마음을 조각목처럼 다듬고 고치는 이유는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마음에 품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상봉 박사가 그의 블로그에서 마음과 생각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했다.

“생각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며, 그것들을 배열하고, 다른 조합들로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한가지의 생각에서 또 다른 생각으로 계속 움직이는데, 그런 생각의 흐름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 흐름이 과거에 경험했던 나쁜 기억들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유심(有心)이라고 하고, 이런 마음의 흐름을 멈추는 것을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그는 이 생각의 흐름을 멈추는 무심 혹은 무념(無念)이 우리가 당면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산에서 산다면 몰라도, 21세기 첨단 사회에서 살면서 나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비우고 살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핸드폰이 없으면 하루의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많은 생각이 핸드폰의 영향을 받는다. 생각의 흐름을 정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간절하게 바라는 세상의 욕망과 과거에 받았던 상처들이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마음을 이루고, 그곳에서 말과 행동이 만들어진다.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결심은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쉽게 매몰된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잠언 4장 23절).

그러나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사고의 익숙한 패턴이 되었고,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마음에 담는 생각들을 연장을 들고 다듬겠다고 조각목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조각목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목수가 볼품없는 조각목을 다듬어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 때 가구로 사용되는 면보다 더 많은 부분을 깎는다. 때로 목수는 나무를 손질하다 잎에 돋아난 가시에 찔리기도 한다.

깎이는 조각목도 아프다. 그러나 조각목을 다루는 목수는 성막 기구를 만들기 위해서 아파하는 조각목을 다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생각의 변화는 외부의 자극과 충격을 통해서 바뀐다.

하나님이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고난이다. 고난이 다가오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빨리 배우는 사람이 있고, 더디 배우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다듬어 사용하기엔 너무나 흠집이 많다.

좀 괜찮은 나무를 고르면 일하는 공정도 빠르고 쉬울 텐데, 굳이 손이 많이 가는 나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어갈까?

이만해도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또 조각칼로 모난 부분을 깎아낸다. 아프다. 그리고 이젠 그만하고 싶다. 나 같으면 포기했을 텐데, 하나님은 당신의 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내 생각과 마음에 당신의 말씀이 가득 채워질 때까지, 그래서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닮을 때까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옹이와 썩은 것을 도려내길 멈추지 않으신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신다.
“힘들지? 그러나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될 때까지, 내 말이 너의 말이 될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네가 해야 할 일이 될 때까지 난 널 떠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