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5장1절-11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10절)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는 단연코 ‘복음’ 입니다. 사실 오늘날처럼 복음을 많이 말하지만 그만큼 복음이 무시되고 있는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이 무시되고 있다는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세상의 걱정거리로 변해버린 교회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복음이 살아있다면, 교회는 세상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세상의 대안과 희망이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민교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인 이민교회 성도들 중에는 교회를 통해 고단한 이민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소망을 얻기보다 오히려 교회 때문에 더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어 하고, 그래서 결국 신앙에서 멀어지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복음이 많이 선포되지만 복음의 능력은 체험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1절에서 자신이 고린도교회에게 복음을 전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 내용을 이렇게 다시 설명합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3-4절)
그렇습니다.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의 죽으심뿐만 아니라 부활하심까지도 바로 우리를 위한 사건이라는 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로마서 4장 25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그 근거를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근거는 그것이 성경에 예언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면서 예수께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성경대로’ 행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둘째 근거는 그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내용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이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예수께서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4~8절에서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 게바를 비롯한 열 두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 야고보와 모든 사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증거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직접 본 증인이 최소한 515명이나 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건임을 증명합니다.
복음의 능력, 변화
이어서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난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 복음을 믿기 전까지 바울은 자신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와 같았고(8절), 심지어 자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었기 때문에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 라고 고백합니다(9절).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자신이 사도로서 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10절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8-10절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전한 복음을 “내가 받은 것”(3절)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바울 자신이 먼저 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2절)고 설명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이 이런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가 복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자신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그런 자신을 보니까 그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큰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이 놀라운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경험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삶의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자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신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임한 놀라운 복음의 능력과 그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면서도 그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한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은혜가 헛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 속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 놀라운 복음의 능력의 증거는 과연 무엇입니까?
매일 하루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사 나를 의롭게 하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시작한다면 분명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음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