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씀이 아닌 들려 주시고 싶은 말씀

윤 석 목사<주를향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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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전국을 다니면서 집을 짓고 목수 일을 하는 전문가였다. 초등학교 시절, 어쩌다가 집이 있는 동네에서 일을 하게 되면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방에 내팽개치고 아버지의 일터로 달려가서 대패나 톱과 같은 연장들을 가져다 드리는 성실한 조수 역할을 했다.

나는 맨 땅 위에 집이 지어져 가는 것이 신기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공사 현장에 가면 여러 가지 연장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쓱싹쓱싹 장난도 치는 놀이를 하다가도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연장이 있으면 아버지가 말씀하기 전에 한 발 먼저 가져다 드리는 퀵 서비스에 나름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연장이 아니라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연장을 제때에 미리 챙겨 드리는 것을 즐겼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좋아했고 일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 조수였다.

전문 조수가 되기까지 나는 연장들의 쓰임새를 파악했고, 아버지의 일을 유심히 살폈고, 집이 지어져 가는 과정 하나하나를 알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했던 일이 침대를 내 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24년이 지난 지금 성인이 된 아이들이 버리자고 해도 버리지 않고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평생 보증에 무료 수리까지 해주니 이만한 침대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전문가 같은 비전문 목수다.

전문 조수의 경험은 신앙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5월 즈음에 친구의 인도로 얼떨결에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주일마다 예배와 그룹 성경공부는 물론이고 사찰 집사 아들이었던 단짝 친구 덕분에 교회에서 먹고 놀고 자기까지 하면서 저녁예배까지 드린 후에 귀가하는 완전한 안식의 날들을 보냈다.

열심을 다하는 신자를 알아보는 깊은 영성을 가진 전도사님이 2학년에 올라가면서 친교부장이라는 엄청난 임원직을 맡겨주셨다. 이때부터 나의 신앙에 성경이 절대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고등부 임원은 우유 먹던 시절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여학생 삼총사와 어리버리한 남학생 4명으로 구성됐다.

주일마다 하는 임원 회의는 꿀 먹은 남학생들을 여전사 같은 여학생들이 가르치고 지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유는 성경과 교회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말을 한마디 하면 여자들은 성경이 어떻고 집사님이 어떻다는 말로 나의 말을 처참히 짓밟아 버렸다.

나는 그때마다 사나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되갚아 주기 위해서 마음에 칼을 갈았다. 그 칼은 성경과 교회를 알아야겠다는 인간의 본성적 오기가 동기가 된 열심이었다.

내가 했던 첫 번째는 모든 설교와 성경공부 내용을 성경에 메모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성경만 펼치면 언제든지 성경을 다 아는 것처럼 곁눈질을 해서라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제일 먼저 세운 목표는 성경을 가르치는 서클에 들어가서 성경을 후회 없이 배우고 알고 믿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선한 동기이고 기특한 열심이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바로 CCC(대학생선교회)였다.

다행히도 매주 금요일마다 성경공부 Retreat을 했는데 나만한 모범생도 없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왜냐하면 열심히 배워서 여자 삼총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성경공부 Retreat에서는 권별로 공부했고, 강해식으로 공부했다. 내가 원하는 주제나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따라가며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 배우고 살아내기 위해서 매주 금요일마다 밤을 지새우며 성경에 코를 박고 여백에 메모했다. 성경에 기록했던 메모들만 봐도 성경의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결과 대학생활 동안 3권의 성경을 바꿔야 할 정도로 성경 여백이 글로 채워졌고 밑줄 쫙, 별 세 개, 돼지꼬리 뾰로롱, 오색찬란한 줄로 가득 채워졌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내 성경을 볼 때마다 탄성을 질렀고 나를 따라 하는 그룹이 생기기까지 했다. 성경에 메모를 하면서 좀 더 여백을 넓게 하면 더 많은 메모를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놀랍게도 여백성경이 처음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메모의 유용성이 인정받은 것이다.

다트머스대학과 카네기멜론대학 연구진이 디지털 기기와 종이로 읽을 때의 차이점을 실험했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보를 빨리 얻으려면 디지털 기기로 읽고, 새로운 생각과 종합적이고 넓은 의미를 깨달으려면 종이로 읽으라 했다.

종이의 또 다른 장점은 나의 글로 메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귀에만 들려지고 눈으로만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재현되는 살아내는 신앙을 도울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모르게 성경을 내가 원하는 신앙을 위한 지침서 내지는 매뉴얼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흘려 보내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닫기보다는 지금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어서 원하는 것을 하려는 의도에서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 아니라 내게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을 듣고 살아내는 신앙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삶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성경은 성공하는 신자를 위한 도구 또는 매뉴얼인가 아니면 신앙으로 이뤄야 할 궁극적인 원인이고 이유이고 방법이고 목적인가?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을 들으려 하는가 아니면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지만 말고 교훈을 메모해 보라. 교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거나 은혜를 얻었던 추억으로 그치지 않고 내 안에 머물러 나로 하여금 말씀대로 신앙을 살아내도록 도전할 것이다. 이 도전을 선하게 받아들일 때 말씀은 곧 내 삶의 현장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