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 주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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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로부터 50일 이전이 되는 주일을 킹카게시마(Quinquagesima), 60일 전 주일을 섹사게시마(Sexagesima, 실제로는 64일), 70일 전 주일을 셉투아게시마(Septuagesima, 실제로는 64일)라는 주일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이때에도 사순절과 마찬가지로 예복이나 강대 보의 색깔이 참회와 성찰의 뜻을 지닌 보라색인데요, 음악도 예배의식에서 할렐루야와 영광의 송가를 생략했다고 합니다.

특히 사순절이 시작되기 바로 전 주일에는 ‘할렐루야 고별’(farewell to Alleluia)예배로서 할렐루야를 마지막으로 부르고 사순절이 시작되면 부르지 않습니다. 이 날 할렐루야를 부르면서 할렐루야 초상을 강단에 매장하였다가 부활절 첫 예배에서 관을 열고 할렐루야를 부르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토록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금욕하며 참회하고, 명상하며 성찰하면서 기쁨의 노래인 ‘할렐루야’까지 억제하는 것입니다. 부활주일 새벽에 이르러 ‘할렐루야’를 힘껏 외치며 부르니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예수 부활 했으니’이 찬송에서 “예수부활” 하는 첫 대목도 예수님께서 수의를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듯이 ‘도미솔’하며 일어나는 음화(音畵)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민찬송”, “천사들이” 등 모든 첫 대목이 상행(上行)하며 솟고 있지요?

특히 “사망권세 이기고” 에선 가장 높은 음을 사용함으로서 기쁨 벅찬 승리의 감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찬송 시와 노래의 구조로 볼 때 히브리 시를 읊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노래 ‘쾌지나칭칭나네’ 처럼 ‘메기고 받는’ 응창(應唱)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먼저 선창자가 “예수 부활 했으니” 하고 메기면, 모든 이들이 “할렐루야” 하고 받고, “만민 찬송 하여라” 하고 메기면 “할렐루야”로 받아 응창합니다.

“할렐루야”로 받는 부분도 참 재미있지요. ‘할’에서 ‘아’ 모음을 길게 늘어뜨린 멜리스마(melisma)가 매우 즐겁습니다.

멜리스마란 모음(母音) 한 음절에 많은 음표가 붙어있는 것을 뜻하는데요, 많은 작곡가들은 ‘기쁨 동기’(joy motif)라고 해서 가사 중 뜻깊은 단어에 사용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헨델의 메시야 중 ‘우리를 위해 아기 나셨다’를 보면 ‘born’이란 단어를 길게 늘어뜨린 멜리스마가 있지 않습니까? 가사 가운데서도 유독 할렐루야에 붙여진 멜리스마는 ‘유빌루스’(jubilus)라고 해서 신앙심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곤 했습니다.

유빌루스는 환희라는 뜻인데, ‘아’(a)모음을 계속 부르다 보면 웃음소리 같이 들리지요? “하하하하할렐루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통곡이 변하여 웃음이 넘치는 천국잔치의 웃음소리 같지 않습니까?

찬송 시의 3절까지는 14C 경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근방에서 불리던 11절까지의 긴 라틴 찬송이었습니다. 원래 ‘할렐루야’라는 후렴구는 없었지요. 이 찬송을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가 3절로 추리고, 마지막 절을 지어 붙여 1740년 ‘찬송가와 성시’(Hymns & Sacred Poems)에 발표했습니다.

이 후 ‘성가작가선’(Complete Psalmodist)에 편집인인 아놀드(Anold)가 ‘다윗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편곡해서 실을 때 “할렐루야” 후렴구를 첨가하여 지금의 응창식의 부활찬송이 되었습니다.

웨슬리가 편집하기 이전에는 이 찬송을 헨델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배우스’(Judas Maccabaeus)에 나오는 개선행진곡 ‘보아라 용사’(165장 ‘주님께 영광’) 곡조에 맞춰 불렀는데 물론 ‘할렐루야’후렴구는 없었겠지요.

곡명 EASTER HYMN인 지금의 멜로디는 1708년 편찬된 ‘리라 다비디카’(Lyra Davidica)에 작자미상으로 실렸던 ALLELUIAS라는 곡에 붙여 애창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활절 아침에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말로 “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살아나셨습니다.” 라고 했다고 하는데, 웨슬리는 이 인사말을 노래 첫 대목에 넣었습니다.

“Christ the Lord is risen today!”

90장(통98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찬송 시 ‘주 예수 내가 알기 전’은 내가 주 예수를 알기 그 이전부터 이미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고, 그와 내가 만났을 때 비로소 내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저 포도비유 같으니…”로 번역된 1절 마지막 부분의 원문 가사는 “나는 그의 것, 그는 나의 것, 영원히, 영원히”(For I am His, and He is mine, Forever and forever)라고 되어있어요.

“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I am my lover’s and my lover is mine)이라 노래한 아가서 6장 3절이 생각나는데 나와 주님과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진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찬송 번역가사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15;5)는 말씀과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5;15)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내 친구 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의 2절에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복음15;13-14)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님의 친구인 나를 구하시려고 목숨을 버리셔서 살려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찬송 원문에서는 “내 마음, 내 힘, 내 삶, 나의 모든 것 다 주의 것 영원히”(My heart, my strength, my life, my all Are His, and His forever)이지요.

그리하여 3절에선 어떤 형편에서라도 주님과의 믿음을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하며 굳은 사랑과 우정을 다짐하고 있습니다.(Shall life or death, or earth and hell? No! I am His forever) 너무나 좋은 찬송이죠.

찬송 시를 지은 스몰(James Grindly Small, 1817-1888)목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태생으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부한 영국자유교회 목사입니다. 두 권의 시집을 낼 정도로 평생 많은 시를 썼는데요, 이 찬송 시는 1863년 발행한‘부흥성가’(Revival Hymn Book) 제2집에 처음 발표하였고, 우리 찬송가에는 이 한편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곡명 FRIEND는 스테빈스(George Coles Stebbins, 1846-1945)가 작곡했습니다. 그는 뉴욕의 버펄로(Buffalo)와 로체스터(Rochester)에서 음악공부를 하였고, 23세 때 시카고로 가서 찬송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며 침례교에서 찬양대를 지휘하였습니다. 1874년 보스턴으로 옮겨 당대 유명한 복음성가 작곡가 생키, 블리스, 팔머, 루트 등과 교류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요,

우리 찬송가에는 ‘고난 받은 주를 보라’(33장), ‘저 멀리 푸른 언덕에’(146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272장), ‘영광 받으신 만유의 주여’(331장), ‘너 성결키 위해’(420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425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531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608장) 등 많은 교인들의 애창곡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찬송은 찬송가 오른쪽 위에 표기되어 있는 대로 1878년 발간된‘복음성가’(Gospel Hymns) 제3집에 실어 발표하였습니다.

멜로디 전체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리듬 형태는 친구인 예수의 모티브처럼 반복으로 강조하고 있어 우리에게 더욱 친밀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찬송가에서 드물게 음악의 강세와 가사의 강세가 잘 들어맞게 번역되어 가사의 뜻을 잘 삭이며 부를 수 있어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악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구요.

I’ve found a friend, oh, such a fri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