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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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8일, 드디어 약속의 땅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10년 동안 3번의 도전 끝에 이루어 낸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도전이 막힐 때 마다 포기할 법도 한데, 도리어 간절함만 더 커져 갔고, 이제 마지막이다 생각한 3번째 도전에 이스라엘이 결국 문을 열어 주었다.

도착하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 땅을 밟으리라 10년 동안 상상해 왔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니 이상하게도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도리어 막연한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내가 이 땅에서 잘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공항에서 진행되는 보안검색과 이민 수속이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나라로 유명하다. 조마 조마한 마음으로 3번의 출입국 수속절차를 받는 동안 감동의 눈물은커녕, 보안요원의 위압적인 태도에 우리 가족 모두는 심하게 주눅이 들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선교 훈련 중 가상 훈련을 받기도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결코 만만치 않았다. 영어도 히브리어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을 나는 어쨌든 침착하게 잘 받아 내야만 했다. 지난 10년의 기다림 끝에 주어진 기회였기 때문에.

1992년, 나는 27살의 젊은 청년으로 한국 오엠 소속 선교사가 되어 이스라엘로 파송을 받았었다. 6개월 가까이 힘들게 선교 훈련을 마치고, 이제 해외 훈련을 받고 이스라엘로 들어가야 할 시점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고등학교 때 문제가 있었던 신장에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상황은 어려웠지만, 이스라엘 선교에 이미 모든 것을 다 건 상태에서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해외 훈련지인 영국에서 3개월의 훈련을 마치고, 결국 네덜란드에서 진행되는 신입 선교사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몸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도 인정하실 만큼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나뿐 아니라 동료 선교사들도 같은 마음으로 절박하게 기도했다. 그러나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리더와 면담이 이루어졌고, 현지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후, 한국으로 귀국이 결정되었다. 귀국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은 했지만, 막상 결정이 내려지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 왔다.

세계 선교를 위하여 더 많은 사람을 내어 보내도 모자랄 것인데, 하나님은 왜 나를 중도에 포기하도록 하시는가? 자격 미달인가? 이럴 것이면 차라리 선교에 대한 도전을 주시지 말던지… 설명하기도, 설득되지도 않는 많은 질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13시간 비행시간 동안 나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였던 야곱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10년 동안의 기다림, 그 동안 신학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여 아이들도 생기고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새로운 사역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언제나 이스라엘 선교는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 도전도 1997 IMF사태로 불발되었지만, 옆에서 지켜 보던 아내가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다.‘이 병은 갔다 와야지 고쳐질 것 같아.’ 그렇게 세 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이스라엘에 도착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을 한다.“왜 이스라엘에 선교사로 가셨어요?” 나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한다.“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요.”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그 선택하심에 올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결국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버리게 된다.

신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된 나는,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다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고 가르침을 받았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여기에 당황스러운 질문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뜻에 올바로 반응하지 못하여 버림을 받았다면, 나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내가 받았다고 생각하는 구원은 과연 확실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이 선택 받은 사람의 조건에 의해 포기될 수 있다면, 과연 내가 받았다는 구원은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질문이었다.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을 나 스스로 확보할만한 조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쳤지만, 교회는 언제나 그 구원에 합당한 조건을 나에게 요구했다.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고민했다. 하나님의 구원이 과연 나의 조건으로 파기될 수 있는 것인가?

그 해답을 나는 로마서에서 찾았다. 로마서 1-8장에 걸쳐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한 바울은,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에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언급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8:38-39).

이제 바울의 일반적인 저술 관행에 따라, 구원 받은 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루어야 하는데, 생뚱맞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실패한 이스라엘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바울이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이 사랑이 결국 실패한 이스라엘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들의 실패를 담아 실패를 넘어서는 구원의 풍성함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로마서11:26) 고 선언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이렇게 담아내고 있다.“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로마서11:11-12).

그리고 바울은 그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한다.“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3-36).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은 결코 포기되지 않았다. 선택 받은 자의 조건이 아닌, 포기 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향한 나의 구원이 얼마나 신실하신 것인가를 이스라엘을 통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실하신 약속을 이루어 가는 그 일에 내가 작은 도구라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생각하며 10년을 기다렸다. 결코 포기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나는 이제 그 약속의 땅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