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아까운 5만 8천원

“엄마, 나 배 아파서 죽을 거 같아요. 못 참겠어요.”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딸아이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배를 움켜 잡고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화장실 가야 되는 거 아니니? ”
“화장실 갈 배가 아닌거 같아요. 나 죽을 거 같아.”

야단이 났습니다. 그냥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창자가 꼬이고 창자가 터지게 아프다는 딸아이를 보니 다리도 못 펴고, 배는 부둥켜 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병원 가야 할 거 같으니?”

멀쩡히 잘 있다가 왜 갑자기 배가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웬만한 아픔은 잘 견디는 아이인데 병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택시기사도 심상치 않은지 가까운 병원으로 급히 차를 돌립니다. 저녁 퇴근시간인지라 길은 막혀있고, 아이는 아프다고 저렇게 절절매며 금방 죽을 거 같고…

오, 주여! 아이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아픈지 손에도 흥건히 땀이 고여있습니다.

“기사님, 최대한 빨리 가까운 병원으로 가주세요.”

가까스로 십 여분 만에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 두 명이 휠체어에 딸아이를 태워 급히 응급실로 달려갑니다.
남편과 아들도 뒤따라 달려 갑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소리 외에는 더 할말이 없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의사가 이것저것 묻고, 여기저기 눌러보더니 피검사부터 하자고 합니다. 여전히 딸아이는 배를 움켜잡고 있습니다. 의사가 간 사이 아이에게 살짝 물었습니다.

“혹시 똥배 아니니? 똥누고 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엄마는 내가 지금 똥배인지 아닌지 그것도 모르는 줄 알아요?”

간호사가 피를 뽑아가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배아파하던 딸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합니다.

“엄마, 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화장실에 들어 간 아이는 한참을 지나도 안나오고, 의사는 애 찾으러 왔다갔다 하고…
한참을 지나 화장실에서 나온 딸아이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을 합니다.

“엄마, 설사했어, 많~이! 이제 배가 안아파!”
“오, 마이 갓!”

아프던 배가 멀쩡해져서 넘 감사하고 다행이지만 휠체어까지 타고 죽을 둥 살 둥 달려들어온 응급실에서 설사 한방에 아프던 배가 치료(?) 되었으니 뭐라 해야 할까요?

“저어~, 얘 이제 배 안아프데요. 화장실 갔다오더니…”
“네에?”

나보다 더 놀라는 의사 앞에 쥐죽어가는 소리로
“저희들 그냥 집에 갈게요.”

그래도 더 검사를 해봐야 한다며 어이없어 하는 의사를 뒤로 하고 얼른 딸아이를 데리고 도망가듯 대기실로 나오니 남편과 아들과 놀라서 달려온 삼촌까지 세 남자가 눈이 휘둥그레 쳐다봅니다.

“얘가… 화장실에 가서…설사하고 나더니…괜찮데”

그 날, 화장실 한번 사용하고 5만8천원 물고 나왔습니다.

10년 만에 한국에 왔다가 이것저것 뒤섞어 먹은 한국음식에 배가 놀랐는지 배탈이 된통 났었나 봅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입니까?

다 쏟아내고 나니 속이 시원해지고 그 아프던 배가 말끔히 나았으니 주여, 감사합니다! 할 수 밖에요.

2017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일년 동안 이것저것 집어삼킨 것으로 배를 부글부글 아프게 하고, 창자가 뒤틀려 끊어질듯 진땀나게 나를 아프게 한 것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짜증… 분노… 화… 무력감…절망…
불평… 불만… 불만족… 불신앙…

열받아 뚜껑이 열리게 하는 모든 나쁜 것들…
분별없이 집어삼킨 모든 나쁜 감정들…
잠 못 이루게 몹시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

그래도 우리…
무지무지 아프긴 하지만 이러한 것들 다 섞어 시원하게 몽땅 쏟아내고 올 한해를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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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