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배달 사고의 은혜

“어제 신문을 돌리다가 배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신문을 배달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차 뒷문이 열린 것을 알고 내려서 닫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두 교회의 신문이 떨어졌는지 없어졌습니다.

배달 몇 년 만에 이런 사고를 당하다니 참 황당합니다. 며칠 전에 추돌 사고가 있어서 뒷문이 잘 닫히지 않아 신문 배달한 뒤에 고치려고 미뤘는데 이런 사고가 났습니다. 조그마한 부주의가 이런 일을 자초했네요. 이 일을 어쩌지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신문 배송을 맡고 계신 칠십 넘으신 집사님으로부터 이른 아침 황당함이 가득한 카톡이 날라왔습니다.

신문 배송을 사명으로 여기며
몇 년을 한결같이,
몇 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그 몇 년 동안 한번의 실수도 없이 열심히 봉사하는 집사님의 황망하고 어이없는 마음이 카톡 글 속에서 찡하게 전해옵니다.

인쇄된 신문이 이른 새벽에 도착하면 교회와 한인마트, 개인에게 보낼 봉투 작업과 지방에 보낼 신문 꾸러미들을 패킹한 후 직접 차를 몰고 집사님은 북쪽지역과 씨티지역, 그의 아내는 서쪽지역으로 신문을 배달하러 다닙니다.

뿐만 아니라 주중에는 혹시나 배달된 신문이 빗물에라도 젖었을까? 사람들 발에 밟히고 있지는 않을까? 살펴보시며‘어느 교회에서는 신문을 잘 안 가져간다, 어느 마트에는 신문이 모자란다, 어느 마트에는 신문이 좀 남는다’확인한 후 연락을 주시곤 합니다.

어찌하든 한 부의 신문도 낭비되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애를 쓰시는 분이신데 두 교회 신문 뭉치가 열린 뒷문 통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니 얼마나 황망했겠습니까?

“집사님, 그래도 다행이셔요. 집사님이 안 떨어지셔서요. 문이 열려 다른 사고라도 났음 어쩔뻔했겠어요? 신문은 넘 염려마셔요. 제가 그 두 교회에 연락할게요.”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집사님께 장문의 긴 카톡이 또 왔습니다. 그 분 보내신 카톡을 가감없이 그대로 한번 올려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누군가 가보라고…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벤트센터를 지날 때 광장에 턱이 많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거기서 뒷문이 열린 것 같아 아침에 급히 갔지요. 그런데 이벤트센터 입구 길가 인도에 신문이 놓여 있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밤새 비가 오지 않아 앞 몇 장만 서리에 젖어있었고 안에는 멀쩡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버브릿지를 건너려고 하는데 하늘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바람과 태풍이 몰아치고 앞을 가리는 비가 쏟아지더군요.

아멘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간섭을 체험했습니다. 신문 돌리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참 은혜와 위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 신문 일을 잘 하고 있는지…
때로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지…
때로는 사람들이 신문을 잘 보고 있는지…

마음속에 갈등하며 고민할 때마다 이렇듯 사람을 통해서나, 환경을 통해서나, 사건을 통해서 증거를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확증해주시고 확인시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프린트된 작은 글씨와 씨름해 가며 한 자의 오타와 탈자를 잡아내려 눈에 불을 켜고 온 힘을 쏟는 교열기자들…

신문 한 부라도 소중하게 여기며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따끈한 신문을 전해주려 비바람을 가르며 사명으로 달려가는 배송담당자들…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는 손길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늘 기다리고, 늘 읽어주시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이 안계시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