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날래 아이들 데리고 너 살던 곳으로 돌아 가라우. 우리나라가 언제 어느 때 어드래케 될려는지 아무도 모르지 안카서. 전쟁을 안 겪어 본 너희들은 모른다우. 전쟁! 무섭다 무서워”
이민목회 20년 만에 처음으로 안식월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형제들이 성탄이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워낙 시국이 혼란스러운지라 언제 어느 때 누구를 만나든지 끊이지 않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염려와 근심어린 이야기들 뿐입니다.
우리 형제들도 한 자리에 모이자 자연스럽게 나라 걱정, 전쟁 걱정, 미래 걱정, 자녀들 걱정이 큰 산입니다.
한참을 전쟁과 피난길에 겪었던 이야기를 주고 받던 제일 큰 언니가 갑자기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빨리 뉴질랜드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고 성화를 부립니다.
“언니, 괜찮우.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우?”
이 한마디에 언니의 옥타브는 높은 ‘도’ 까지 올라가고
오래 전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수없이 들었던 피난보따리 이고지고부터 시작을 다시 합니다.
어린 두 동생 피난길에 죽은 이야기, 대포 떨어지면 땅바닥 어디든 엎드렸던 이야기, 부모 잃고 우는 아이들, 아이 잃고 울부짖는 부모들…
끝없이 펼쳐지는 언니의 피난길 행렬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시작하여 2016년 12월 24일 형제들이 모두 모인 자리까지 와서야 막을 내립니다.
대단한 기억력입니다.
대단한 애국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나도 잊지 않았을까 참 놀랍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아!
너희는 물렀거라!
너희가 전쟁을 알어?
전쟁을 겪지 않는 세대는 그 앞에서 어쩌구저쩌구 했다가는, 촛불이 어쩌고저쩌고 했다가는 그날 밤 집에 가기는 커녕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합니다.
팔십을 바라보는 언니의 결론은 바로 그겁니다.
“촛불은 왜 들고 난리냐?”
그런데, 열변을 토하는 언니의 뒷켠에선
조카들은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러 광장으로 나갑니다.
촛불과 태극기가 한 집안에 함께 합니다.
우리 형제 안에서도
태극기를 흔드는 세대와
촛불을 드는 세대가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태극기를 흔드는 세대와
촛불을 드는 세대가 함께 살아갑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과 겪지 못한 사람,
전쟁의 참상을 본 사람과 못본 사람,
촛불을 든 사람과 태극기를 듣 사람,
무엇을 겪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촛불을 들기 전에
태극기를 들기 전에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애굽기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