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구세군의 초기 역사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구세군은 1865년에 영국 런던의 이스트엔드에서 개혁감리교의 목회자였던 윌리웜부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부스에 의해서 시작 되었다.

뉴질랜드 구세군의 역사는 1882년 더니든에 있던 아라벨라 발피(Arabella Valpy)라는 여성이 윌리웜부스에게 200파운드(2010년 기준 NZ$36,000)과 함께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할 전도자들이 필요하니 보내달라는 선교 요청에 대한 편지였다.

1883년초에 두 명의 젊은 사관, 죠지 폴라드(George Pollard) 에드워드 라이트(Edward Wrigjht)을 파송했다. 그들은 항해 중 배 안에서 전도한 3명과 함께 도착해 1883년 4월1일에 더니든 광장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당시 뉴질랜드 상황은 경제 불황으로 매우 힘들었고 실업자와 의 증가로 가난과 범죄가 많아졌고 매춘까지 횡횡 했다. 도시의 삶은 매우 황폐해져 갔다.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었다.

그 때 구세군의 사역은 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었다. 구세군은 예배장소를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시 한복판에서 열린 예배를 드렸다. 찬양과 템버린 그리고 구세군 밴드는 그들에게 즐거움과 새로운 힘을 회복하게 했다. 그러면서 불신자들이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자비석은 지금까지도 전통으로 구세군 예배의 의전가운데 남아있다. 개척 3년 후인 1886년에는 5,000여명의 교인으로 부흥했고 교회는 40여개 개척되었다.

흑암의 방해(Waging War)
그러나 사역에는 언제나 흑암의 세력의 방해도 있었다. 불량 청소년들은 예배 때 뒤에 와서 고성으로 방해를 일삼기 일수였다. 더 심각한 것은 오클랜드에서 결성된 불량단체인 해골단이 전도집회 방해로 돌을 던지고 인명 살상까지했다. 이들의 방해의 원인은 사회가 정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불만을 무력으로 표출했다.

사역 분담으로서의 여성사역
구세군에서는 그 당시 집안
에서만 머물러있던 여성들을 사역의 현장으로 불러 내는데 도화선이 되었다. 초기 구세군 사역에서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1893년 여성 투표 참여까지 이어지게 했다.

구세군에서는 여성 사관들의 사역이 동일했고 일반 여성 신도들에게 남신도들과 똑같이 제복을 입게 했다. 1892년에는 절반이 여성사관들로 세워졌다. 다섯개의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여성사관들이 맡게 되었다.

마오리 사역
타교단과 비교해서 구세군의 사역은 처음에는 마오리 사역이 아니었고 이민자중심의 사역이었지만 점점 마오리 사역을 확대해서 지금은 마오리 사역 전담부서를 만들어서 마오리 사역을 활발히 병행해 가고 있다.

1888년에 어너스트 홀더웨이(Ernest Holdaway)와 그의 부인이 팡가누이 강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그곳 추장인 타마티아 아루누이(Tamatea Aurunui)를 회심시켰다. 회심된 추장은 사역을 돕기 위해 카누를 기증했다. 그리고 선교의 이름을 티오페 파카오라(Te Ope Whakaora-번역하면 생명을 주는 단체) 그 후에 그들은 재정 자립을 위해서 전국적 집회와 해외순회집회를 가졌다.

그러던 중 일부 사역들이 마오리 전쟁 후에 백인들이 주도한 선교의 진정성을 의심받아 다른 교단의 선교상황과 비슷하게 선교의 소강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악조건 가운데서도 계속 선교의 불씨를 지켰던 여러지역에서 불씨가 살아나 다시 새롭게 구세군 마오리 선교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구세군은 이 땅에서 언제나 어려운 이웃,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개인의 삶을 변화 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를 개혁시키고자 오늘도 모든 사역자 들과 성도들 그리고 자원봉사들은 120,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오늘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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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길
뉴질랜드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구세군오클랜드한인교회 담임사관.루터의 독일, 장 칼뱅, 츠빙글리의 프랑스와 스위스, 얀후스의 체코, 네덜란드와 벨기에, 존 낙스의 스코틀랜드, 감리교와 구세군의 부흥지 영국, 종교개혁이 넘지 못했던 스페인, 무슬림의 땅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답사하여 그들의 사역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