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낳은 슬픔

특별 영주권의 결과를 기다리던 중, Centrestage 극장에서 준비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러나 2022년 1월, 대본을 받고 배우들과 첫 만남까지 마쳤지만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모든 리허설과 공연이 취소되었다.

꿈꾸던 무대가 사라진 것은 아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이 승인되었고, 13년간의 뉴질랜드 생활을 잠시 멈춘 채 한국으로 돌아가 약 반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난 6월,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고 나오던 중 허리와 발이 저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다리에 힘이 빠졌고, 결국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움직임에도 견딜 수 없는 통증 속에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다음 날 목과 허리 MRI를 촬영하고 두 곳의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병명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의사의 판단으로 신경 시술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고, 의료진도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간병인이 수건으로 닦고 씻겨주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사흘이 지나자 잠시나마 혼자 앉을 수 있게 되었고, 조금씩 보행기를 붙잡고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일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걸을 뿐허리에 힘을 줄 수 없어 오래 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거나 차라리 서 있는 것이 더 편했다. 재활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았지만, 2022년 9월에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새로 받은 영주권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매년 6개월을 뉴질랜드에 거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2년만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과 함께, 건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으며 혼자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던 그때, Centrestage 극장에서 다시 ‘레미제라블’ 공연을 시작한다며 배우로 함께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자 너무나 하고싶던 공연이었음에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를 위해 배에 힘을 줄 수도 없었고, 천천히 걸어도 척추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과 통증이 찾아왔기에, 춤과 연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극단의 제안을 포기함과 동시에, 건강에 대한 두려움 속, 뮤지컬에 대한 나의 미래 또한 포기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공간을 끊임없이 채워가던 그 두려움이 슬픔으로 변했던 순간이 있었다.

뉴질랜드에 돌아온 지 약 6개월 후, 영주권의 거주 조건을 채운 뒤 다시 한국으로의 출국을 며칠 앞둔 날, 내리는 비 속에 몸의 균형을 잃고 계단에서 크게 떨어졌다.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허리를 계단에 강하게 부딪쳤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등이 찢어진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충격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한동안 차가운 빗속에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으나 13년의 뉴질랜드 삶 가운데 그 순간 연락해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내 연락처에는 없었다. 인생의 허무함과 체념 속 내 눈과 마음은 메말라 있었지만, 쏟아지는 빗방울이 마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대신 울어주는 것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토록 바라던 영주권을 받았지만 긴 기다림 속에 나는 지쳐 있었다. 그나마 모아 둔 돈도 치료비로 모두 사라졌고, 다시 가족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건강이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의 처지를 집중하게 하였고, 나를 자기연민의 슬픔에 빠트렸다.

왜 내 삶은 이렇게 풀리지 않는지, 왜 하나님은 내가 소망했던 일들을 계속 미루셨는지, 나는 왜 내 삶조차 책임질 수 없게 되었는지, 하나님을 향한 서운함과 슬픔,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깊어져 갔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고 기록한다. 예루살렘 입성 때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외치는 장면을 보았고, 예수님의 기적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던 제자들이 왜 슬픔에 잠겨 있었을까?

내 신앙 여정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슬픔은 미래를 향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예수님께서 정말 붙잡혀 죽으신다면, 제자들 자신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유대인들에게 출교를 당하고 심지어 목숨마저 위협받지 않을지, 3년간 버린 가족과 생업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두려움 앞에서 제자들은 자기연민이라는 슬픔에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말씀 속, ‘두려움에 져서 예수님을 배반하지 말자’는 교훈의 설교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며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직접 경험했던 베드로에게 과연 두려움만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죽은 자를 살리시고, 거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며 자신을 물 위로 걷게 하셨던 예수님의 권능을 경험했던 사람이 베드로였다. 그렇다면 시종에게 자신을 들킬까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단번에 물리치실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았을까.

뮤지컬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후반부에는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받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베드로와 요한이 대화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서 거짓 증언과 모욕 앞에서도 침묵만 하고 계시는지 답답해하고,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당장 권능을 나타내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베드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베드로는, 어차피 부활하실 것이라면 왜 죽으셔야 하는지, 왕이라면 저렇게 조롱당하는 모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자신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베드로가 세 번째 부인을 마쳤을 때 들려온 것은 닭 울음소리였고, 어떠한 기적과 권능의 발휘 없이 끌려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뮤지컬 장면이 마무리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면 자신들도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서로 누가 큰 자인지 다퉈왔던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기대와 시선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나타낸다.

또한, 성경 곳곳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들으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 저는 아니지요’(마 26:22)라고 묻는 모습은 그들도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감하며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겟세마네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제자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기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마주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정말 죽으신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따라온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 두려움은 결국 자신의 처지를 집중하게 하며 슬픔과 자기연민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슬픔이 자기연민이 아니었더라도, 그 슬픔은 예수님을 향한 기대와 환상을 무너뜨리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공과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다가오는 군병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들의 진실된 신앙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의 슬픔은 역설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누가가 기록한대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슬픔을 ‘와서’ 보셨기 때문이다. 슬픔에 지쳐 잠든 제자들을 끝내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두려움과 자기연민, 그리고 슬픔도 주님께서 사용하셔서 우리의 왜곡된 기대를 벗겨 내시고, 그분의 생명과 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와서 보시니,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눅 22:45,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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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준영
2019년오클랜드 사랑의교회 집사. LoveU대표.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며 뮤지컬과는 연관 없는 삶을 살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지난 2년 동안 세 편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공연하게 하셨다. 크리스천 라이프에 매달 연재를 하며, 내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