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외주화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요즘 우리는 AI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AI에게 묻습니다. 특히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나 헷갈리는 게 나오면 AI에게 물으면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저도 디지털 디톡스를 더 잘하는 방법을 AI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디톡스를 하겠다고 시작한 그 걸음이 오히려 AI와 보내는 시간을 훨씬 늘려 놓았습니다.

우리는 AI를 통해 창작을 하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충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신기함이 딱 거기까지입니다. 한참을 쓰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플라스틱처럼 값싸게 대량 생산된 결과물들에서 순수한 인간의 향기와는 다른 인공적인 냄새를 맡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의 눈과 머리는 신기한 것에 흥분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인공이 만든 것을 구별해 내고, 거기서 거기네 하고 실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AI는 통계를 기반으로 예측합니다. 그래서 그 창작물은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뇌는 그 패턴을 반복해서 보게 되면 AI 냄새를 간파해 버리고, 더 이상 새로운 정보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과도한 정보로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 버린 상태를 인지적 포화라고 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지고, 만성 피로와 기억력 감퇴, 알 수 없는 불안감까지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하는 답을 AI에게 동의받는 것 외에는 흥미롭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생각의 외주화: 놓치고 있는 것들
이 공허함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결과물이 식상해졌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위’ 그 자체를 AI에게 통째로 맡겨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씨름하며 생각을 종이에 써서 정리하고, 펜을 들고 몇 번이고 문장을 쓰고 지웠습니다. 그 씨름의 과정 자체가 바로 창작이었고, 그 긴 과정을 통과하면서 사람은 비로소 자기를 넘어서는 것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대화형 AI가 나오고 나서는 시나리오를 몇 줄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립니다. 고민하고 인내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사고의 여정을 통째로 AI에게 넘겨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게으르고 싶어 하기에, 누군가 생각을 대신해 준다면 기꺼이 결과만 사용하려 합니다. 이것이 ‘생각의 외주화’입니다.

문제는 이 외주화가 창작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성경의 난제, 신앙의 회의, 나는 누구인가 같은 존재의 질문들마저 AI에게 던지고, 그럴듯한 답을 듣고는 생각하기를 멈춰 버립니다. 본래 이런 질문들은 답을 듣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면서 체득하는 것입니다.

AI는 그럴듯한 설명으로 우리를 디지털에 묶어 두고, 우리는 사랑의 관계를 찾는 생각을 멈추고 시간을 빼앗깁니다. 그러면서 디지털 과의존을 개인의 의지력 문제로만 치부하다가 결국 더 강력한 AI 같은 도구에 다시 빠져버립니다.

디지털 디톡스 5, 6, 7 단계 : 하나님께 구하자
IA(인터넷 디지털 과의존 익명 모임)의 5, 6, 7단계는 우리가 스스로 디지털 과의존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결심하고 실패하기를 거듭하며 내가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경험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5단계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시인하는 단계이고, 6단계는 내가 고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단계이며, 7단계는 겸손히 하나님께 단점을 없애 주시기를 간구하는 단계입니다.

이 세 단계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디지털 과의존은 의지력이나 지식만으로는 스스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림 차단이나 사용 시간 관리도 필요하지만, 진짜 디톡스는 결국 ‘관계의 회복’, 최종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AI가 안겨 주는 가장 위험한 착각은, 충분한 정보와 논리만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이 신념이 우리 신앙의 자리를 조용히 잠식해 갑니다. 말씀 묵상보다, 기도보다 AI에게 먼저 묻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논리로 다 설명되지 않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인격적인 사귐 속에 머무는 것인데, AI가 주는 지적 충족감은 이 신비와 사귐의 자리마저 정보로 대체할 수 있다고 우리를 슬쩍 속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는 차곡차곡 쌓이는데, 정작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은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성경을 잘 이해하려고 시작한 AI와의 대화는 쇼츠를 계속 스크롤 하다 보면 어느새 찾지도 않은 아마존 카피바라 영상으로 가 있는 것처럼,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끝나 버립니다.

디지털 디톡스는 AI를 끄고 디지털을 끄는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지 않으면, 계속 얼굴을 바꾸어 우리의 시간과 생각을 빼앗아 가는 디지털 과의존 알고리즘을 우리 스스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자리, 하나님과 신비와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거룩한 성경 읽기와 기도야말로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는 진짜 디톡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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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