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한 이유

아내의 귀국, 그리고 멈춰버린 시간
아내가 오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혼자 지내며 흐트러진 집안 곳곳의 흔적을 지우느라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휴가까지 내고 밀린 청소를 마친 뒤, 음식도 사다 놓고 차량 정비까지 끝낸 채 공항으로 떠날 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시간이 남기에 스마트폰을 들었습니다. “딱 몇 개만 봐야지” 하고 시작한 ‘숏폼(Shorts)’ 시청은 노래에서 시작해 영화, 드라마, 정치 이야기로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알고리즘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있을 때,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아내가 직접 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몰입하느라 공항 마중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도 않은 채 며칠째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몰입과 중독을 가르는 한 끝 차이
이 사례는 디지털 중독의 전형적인 징후를 보여줍니다. 물론 스마트폰을 보다가 약속을 한 번 어겼다고 해서 모두를 중독이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휴식 시간에 즐거움을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고, 때로는 무언가에 깊이 빠지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몰입(Flow)’과 ‘중독(Addiction)’은 엄연히 다릅니다. 두 상태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집중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심리학적 동기와 뇌과학적 기전, 그리고 삶에 미치는 결과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 기준은 바로 ‘자기 통제력’과 ‘활동의 목적’입니다.

몰입은 스스로 시작하고 멈출 수 있습니다. 활동을 통해 즐거움과 성취감을 얻으며, 마친 후에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중독은 하고 싶지 않아도 멈출 수 없습니다. 활동이 끝난 후에는 허무함과 자괴감, 공허함이 몰려옵니다. 중독이 되면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화되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중독이 뇌와 삶에 미치는 영향
인터넷 디지털 중독 장애(IAD)는 1998년 심리학자 킴벌리 S. 영 박사의 연구를 시작으로 현재는 미국 정신의학회(DSM-5)에서도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중독 상태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과 유사하게 전두엽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두뇌 구조의 변화는 의사결정, 추론, 감정 처리, 작업 기억력의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 약속을 잊거나, 쉽게 화를 내고, 일을 미루는 등 중단해야 할 때를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ADHD, 불안, 우울증 같은 정신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장 질환, 수면 장애 등 신체적 위험까지 초래합니다. 특히 중독된 이들의 인위적 수명 단축 시도율이 평균보다 약 3배나 높다는 사실은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된 ‘신앙적 변명’
문제는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중독을 인정하기보다 ‘변명’을 앞세운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언어로 자신의 의존성을 정당화하곤 합니다.

어떤 이는 사역의 책임감으로 포장합니다. “성도들의 긴급한 상담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폰을 꺼두는 건 무책임한 방치 아닌가요?”

다른 이는 보상 심리로 합리화합니다. “종일 영혼을 돌보느라 진이 빠졌는데, 자기 전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식히는 소소한 낙마저 없으면 어떻게 버팁니까?”

때로는 환경적 요인을 이유를 듭니다. “모든 행정과 공지가 단톡방으로 운영되는데, 이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시대가 준 ‘가시’ 같은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정교한 논리로 중독을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중독이 그렇듯, 문제를 아는 것만으로는 스스로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정직한 고백: 회복을 위한 첫걸음
디지털 디톡스는 단순한 ‘절제’를 넘어 일종의 회복 사역입니다. 디지털 중독 치료를 위해 ITAA 12단계, 새들백 교회의 ‘회복 축제(Celebrate Recovery)’, 그리고 디지털 금식 같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 이유는 자신의 결심만으로는 디지털 중독에서의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디지털 디톡스의 첫 번째 과제는 “나는 중독되었으며, 내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9가지 거울
다음은 미국 정신의학회 (DSM-5) 에서 제시하는 중독의 모습들 입니다. 아래 9가지 진술 중 5가지 이상이 ‘나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신다면, 이는 단순한 습관을 넘어 임상적으로 ‘디지털 중독’ 을 의심해 볼만 합니다.


지속적인 집착 디지털 기기를 들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머릿속은 온통 온라인 세상의 일들로 가득하며, 다음에 확인해야 할 콘텐츠나 메시지를 끊임없이 떠올린다.

금단 현상 스마트폰이 없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기면 안절부절못하고, 불안이나 짜증, 참기 힘든 슬픔 같은 심리적 고통이 밀려온다.

내성 즐거움을 얻기 위해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야 하거나,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지만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반복되는 조절 실패 사용 시간을 줄여보려 굳게 결심하고 앱을 지우는 등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매번 본인의 의지를 꺾고 다시 기기로 돌아간다.

일상의 즐거움 상실 디지털 사용 외에 과거에 좋아했던 운동, 산책, 사람들과의 만남, 혹은 소소한 취미 생활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문제의 지속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수면 부족, 안구 건조, 혹은 일상적인 실수가 반복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기만과 은폐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쏟고 있는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사용 시간을 속이거나 숨기려 한다.

부정적 감정의 도피처 현실의 무기력함, 죄책감, 불안, 혹은 외로움을 대면하기보다 이를 잊기 위한 도구로 디지털 세상을 선택한다.

소중한 가치의 훼손 스마트폰에 몰입하느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신뢰를 깨뜨리거나 직장에서의 책임, 혹은 중요한 기회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든 적이 있다.

맺으며
올해는 이 지면을 통해 디지털 디톡스 단계를 소개하며, ‘크리스천라이프 아카이브 강좌’를 통해 실제적인 모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를 편리하게 하고 신앙을 윤택하게 돕는 디지털 기술이 고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 질문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신다면, 디지털 디톡스 공동체에 함께 참여하여 진정한 회복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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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