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반,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글쎄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좋아한다’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뮤지컬 한 편에 들어가는 수많은 시간과 재정, 그리고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어려움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이어 반쯤 농담처럼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지만, 그것 역시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길과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의 좋아함이나 사명을 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가 이 길을 끝까지 붙들게 하고 있음을 본다. 아이가 자라며 부모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지만 그 끝을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씀과 삶을 고민하며 뮤지컬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나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 사랑을 알아갈수록 이 길이 좋고, 부르신 사명을 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자체에 기쁨이 있음을 깨닫는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하며 뮤지컬과는 연관 없는 삶을 살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지난 2년 동안 세 편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공연하게 하셨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에는 분명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인도하심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2026년 한 해 동안 크리스천라이프 신문에 매달 연재를 하며 내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이 연재는 매회 두 부분으로 구성하여 내가 뉴질랜드 뮤지컬 사회로 들어오게 된 이야기와 함께 그동안 공연했던 뮤지컬의 창작 과정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한 분 한 분께 하나님의 사랑이 따뜻하게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진흙으로 빚어진 그릇’
‘메시지(Message)’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문예 작품이 담고 있는 교훈이나 의도이다. 작가의 의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예술은 많지만, 뮤지컬은 글과 음악, 그리고 몸짓이라는 그릇에 작가의 세계를 담아 전하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관객에게 전할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뮤지컬이라는 그릇에 담기 시작한 출발점은 참으로 미약했다. 창작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모방하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은 내가 26살의 늦깎이 유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동시에 교회 청소년부 교사를 처음 맡아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던 해였다. 그때 준비한 공연은 러닝타임 10분이 채 되지 않는 무언극〈내 마음의 버스〉였다. 주인공의 마음을 상징하는 버스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예수님이 점차 공부, 연애, 돈과 같은 유혹에 밀려나 자리를 떠나시고, 삶이 무너진 주인공에게 다시 찾아와 회복시키는 이야기였다.
당시 인터넷에 있던 영상을 그대로 참고해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조금 바꾸고 싶었다. 예수님 역할을 맡은 아이가 무대에 등장 해 쓰러진 주인공을 일으키기 전, 십자가의 모습으로 음악이 바뀔 때까지 서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실제로 무대에 올렸고, 공연 후 예상보다 큰 환호와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모방한 무언극에 아주 짧은 내 생각을 보탰을 뿐이었지만, 그 경험은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미래의 창작을 준비하는 첫 시작이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게 된 것은 2년 후, 세 번째 성탄 행사를 맡았던 2015년이었다. 마음에 드는 무언극을 찾지 못한 나는 이전 경험을 살려 직접 글을 써보려 했지만 컴퓨터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몇 주를 보냈다. 성도들은 이전 공연들을 기억하며 기대를 표현해 주셨지만 결국 연습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준비하지 못해 포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차 안에서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성탄절을 준비하며 마음고생하던 나 자신의 모습이 하나의 캐릭터로 떠올랐고, 지난 한 해 동안 겪었던 사건들, 스쳐 지나간 드라마의 장면들,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생각들이 마음에 남아있던 말씀과 함께 순식간에 하나의 이야기로 엮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생각이 사라질까 두려워 글을 쏟아내듯 써 내려갔다. 한 달 가까이 애써도 나오지 않던 메시지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장면마다 어울리는 음악을 찾았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곧 ‘나’였기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분명했다. 무대 위에서의 등장과 퇴장 역시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쓰인 내용은 학업과 직장, 교회 사역으로 바쁜 한 사람이 성탄절을 준비하며 더욱 분주해지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내 삶에 어떤 분이신가”를 되짚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너무 뻔한 내용일지도 몰랐지만, 연습이 거듭될수록 나는 말씀 앞에,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내 삶을 올려놓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이민자이자 유학생으로 바닥을 기어오르듯 살아온 내 인생이 진흙처럼 느껴졌고, 멋대로 뭉쳐진 그 진흙의 그릇들은 토기장이 되신 예수님의 손에 들려 깨지고 다시 빚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성탄절 당일에는 정신이 없어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지만, 많은 성도님이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공연 후 나눠주신 말들 속에서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감동을 느꼈다. 나의 이야기가 이해받고 공감받은 것을 넘어 내 삶 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을 발견한 고백이 관객들의 삶 속에서도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4년 7월 14일, 뮤지컬〈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21명의 배우와 6명의 연주자, 그리고 45명의 스태프가 함께하며 60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1시간 20분 동안 공연되었다. 뉴질랜드 한인 기독교 사회에서 창작된 뮤지컬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였지만, 그 시작은 진흙으로 가득했던 내 인생에 대한 울분에서 비롯되었다.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살아온 삶, 끝이 보이지 않던 가정의 어려움, 13년 만에 받게 된 영주권, 멀어져야 했던 사람들, 노래를 배우며 마주하게 되었던 빈약한 재능, 의료사고로 인한 신경 마비, 그리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통장에 만 달러도 없는 부끄러운 인생. 무엇보다도 이 모든 진흙 같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무런 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이 너무 버거웠다.
2023년 11월, 뉴질랜드를 떠나려 했던 내 삶은 청년 코스타에 참여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말씀 앞에서 내 인생에 쌓여 있던 진흙과 분노, 질문들이 낱낱이 드러났고, 토기장이이신 예수님의 손 안에서 그것들은 깨지고 다시 빚어지는 시간을 경험했다. 현실과 주변의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그 모든 것은 주님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새로운 그릇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흙들은 이야기가 되어, 뮤지컬〈내 어린 양을 먹이라〉로 이어졌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찾아와 물으신 말씀,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면서도 세상을 놓지 못한 채 타협하며 살아오던 나에게도 주님은 같은 질문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먼저 찾아오신 그 사랑을 뮤지컬을 통해 성도들과 나누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가며 나는 흔들리겠지만 나를 붙들어 주실 주님을 의지하며 이 길의 끝에서 근심 없이 주님께 사랑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앞으로 1년, 이 연재를 통해 LoveU라는 이름의 뜻처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을 사랑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