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홈리스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것은 냄새였습니다. LA시내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던 홈리스 근처를 지나갈 때는 어김없이 지린내가 진동을 했습니다. 냄새에 민감한 나의 코는 어디에서나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전철 안이건, 버스 안이건, 심지어 거리를 걸을 때도 온통 그 냄새가 났습니다. 아예 도시 전체에 그 냄새가 배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철 의자에 잘못 앉았다가는 벼룩 같은 것이 옮아서 한 동안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그들을 향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년 동안 홈리스 사역을 하면서 제 코에는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들과 악수하고, 얼싸안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참기 힘들었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벼룩이 옮지도 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반려견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아내도 사역에서 냄새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 코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이것은 철저히 주님의 은혜요, 성령의 역사하심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홈리스 사역은 낮아짐의 훈련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홈리스 봉사를 하다보면 높아진 마음과 생각이 낮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또 그렇게 해야 봉사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홈리스 봉사를 하다보면 나 역시도 영적으로 홈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홈리스 사역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낮은 곳으로 눈길이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고, 대단하고, 거대한 것을 바라보는 대신에 약하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을 향해 마음이 갑니다. 반대로 화려하고 거대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로부터는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안에서 복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자꾸만 낮은 곳을 향해서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자꾸만 높이시는 경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021년 10월 코로나(COVID-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온 세상이 감옥처럼 변했던 암흑의 시기에 어떻게 하면 뉴질랜드에 있는 한인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행복의 길” 상담사역을 소개했습니다. 그때 한인 사이트에 올렸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몇 주면 되겠지… 쉽게 끝날 줄로 생각했던 Lockdown이 9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뉴질랜드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백신접종 90%”가 달성되는 12월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한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대박이 났다는 소식입니다… / 드라마는 동심 속의 놀이와 치열한 삶의 현실을 대비함으로써 경쟁 속에 살아가는 비극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아야 했던 한국 사람들은 경쟁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그 경쟁은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입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자존심을 억눌러야 했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치열한 경쟁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평화스런 나라 뉴질랜드에 살면서도 이유없이 불안하고, 매사에 조급하고, 이웃을 비판하며,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의 상처 때문입니다. 상처 때문에 가정은 깨어지고, 불행이 자녀들에게까지 대물림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불행의 고리를 끊고, 깊은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길을 만났습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고, 마음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행복의 길’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 글을 한인 사이트에 올리자마자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록다운 때문에 감정적인 탈출구가 없었던 한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사이트 운영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에 대한 기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체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운영자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정한 종교에 관련된 사람을 기사화하는 것은 곤란한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에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2024년 7월에야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나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목사인데 괜찮으십니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때 한인들을 위한 행복의길 상담사역과 홈리스사역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기자분이 직접 우리집을 방문해서 교민잡지 코리아포스트 766호(2024년8월9일자)의 표지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나는 낮은 자들을 찾아서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는데 주님께서는 이 사역을 알리시고, 높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또 한 번은 뉴질랜드에서 연합뉴스(YTN) 영상을 제작하시는 PD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분을 만나게 된 것은 Asian Family Service에서 일하시는 상담사분을 통해서입니다. 회사에서 광고 영상을 제작하는데 저를 모델로 추천하셨고, PD분과 만나서 광고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때 PD분에게 우리 교회의 홈리스 사역을 소개했고, 취재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드디어 일정을 잡았고, 주일 아침에 우리 집을 방문해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나와 아내는 주일아침에 함께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식 토스트, 소시지 롤,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이 모습을 촬영하였 고, 홈리스봉사 현장에도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홈리스들과 저를 포함한 봉사자들과도 인터뷰했습니다.
취재를 다 마친 PD분의 소감은 제게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남섬 크라스트처치에서도 홈리스 취재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거칠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봉사하는 곳의 홈리스들은 협조도 잘해 줘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음식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시티의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하나님의 찬양이 흐르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흐릅니다. 그러니 험한 환경에서 살면서 강팍해질 대로 강팍해진 마음이 순한 양과 같이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또 지난 2024년 11월25일에는 오클랜드장로연합회 초청으로 홈리스 사역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2025년도 한 해동안 크리스천라이프 집필진으로 초청을 받아 홈리스 봉사를 소개하는 글을 매월 올리고 있습니다. 또 지난 2025년 7월10일에는 오클랜드 한인 로터리클럽 행사에 초대되어 축사를 하고, 후원금을 전달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쫓아서 낮은 곳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홈리스사역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시고, 그 일에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온갖 악취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냄새 나지 않는 교회,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