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른다
크리스천라이프가 500회를 맞이했다는 소식에 마음의 즐거움이 일어난다. 지난 세월에 온갖 굴곡이 묻어 있겠지만 결국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온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때로는 버티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잘한 일들이 있다. 무엇이든 역사를 쓴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역사를 쓴 이들이 남긴 발자취를 후대가 보며 거기서 지혜를 얻는다.
노래 중에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말해 주는 사람이 없네~ 라는 가사가 있는데 숲과 늪을 구분하도록 지혜를 얻는 곳이 역사다. 역사는 인간의 삶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을 기록한 것을 뜻하는 말이다. 역사에서 배움을 얻는 사람은 지혜자가 되며 역사에 눈이 어두우면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사람이 그의 일생을 통해서 무엇을 남기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까? 필자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그중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글이다. 이 두 가지는 자신의 생을 바르게 세우는 데도 유익하지만 나아가 후세대를 사는 이들에게 방황과 실패를 줄이고 보다 가치 높은 생을 살도록 돕는 지혜가 된다. 인간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 직접적인 배움을 얻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의 글들을 통해 간접적인 배움을 갖는다. 이렇게 긴 세월 흘러온 역사는 그것을 보석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그들의 생이 빛나도록 돕는 스승이 된다.
선교 역사도 흐른다
인류 역사는 선교 역사이기도 하다. 처음 사람들이 범죄한 후 시작된 선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와 세월을 함께 해 왔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뱀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임을 예언하셨다(창3:15). 나아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그들이 만든 나뭇잎으로 된 옷 대신에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린 후 그 가죽으로 된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창3:21).
창세기의 이 기록들은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구원하려 자신의 고귀하신 몸을 찢고 피를 흘린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 주고 있으며,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공히 십자가를 통해 마귀의 머리를 깨뜨렸고, 죄인들의 속죄를 위해 그의 발꿈치가 상하도록 허락하셨다(사 53:4-6, 마 27:31-50).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창세로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역사는 그가 오실 것을 바라보며 전개되고 기록된 역사다. 아담 이후로 세상은 급속도로 심각하게 타락했고 노아 대홍수를 겪었음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기 시대의 의인 노아는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의를 전파했으나 그의 여덟 가족 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벧후2:5).
노아 이후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오실 그리스도를 깨닫도록 전하는 선교사로 사용하셨다(눅13:34, 히1:1). 구약의 모든 보내심을 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 역사였다.
그리고 마침내 온 세상의 구주와 주로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복음으로 오셨고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 얻는 구원이 허락되었다.
이 복음은 1세기 주신 그리스도의 큰 명령을 따라 작은 개울에서 시작되어 차츰 거대한 강물을 이루며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퍼졌고 21세기 지금도 그 힘을 잃지 않고 모든 민족과 천하만민을 품은 큰 바다를 만들고 있다.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선교는 게임 체인저로서 폭발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전의 양상이 선민 유대인을 접하면서 구원받은 백성에 합류하는 모습이었다면(구심력 모습의 선교) 그 후의 양상은 유대인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강력한 강물이 치고 들어가 구원의 역사가 발발하는 모습이 되었다(원심력 모습의 선교). 성육신을 통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고 또한 성령으로 오셔서 그의 입으로 내신 명령이 실재가 되게 하셨다(행1:8, 행16:7).
바다로 모이는 강물들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소원을 품고 행하게 하신다(빌2:13).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각인의 소원들은 그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위한 작은 물줄기들이다. 필자는 목사로서 더니든늘푸른교회와 해밀턴주사랑교회를 섬겼고 지금은 오클랜드예닮교회를 섬기고 있다. 근래 들어 놀랍도록 깨닫는 것은 이 지역 교회 간에 신자들이 오가며 믿음이 자란다는 점이다.
어느 교회에서는 믿음이 생기고 다른 교회에서는 믿음이 자라고 또 다른 교회에서는 믿음이 봉사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는 것이다. 전에 거기서 보았던 그 혹은 그녀의 모습은 명목상의 신자로 겨우 분위기에 편승하여 출석하였다면 후에 다른 데서 보는 그 형제 혹은 그 자매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신실하게 섬기는 일꾼인 것이다. 뉴질랜드의 세 도시에 있는 지역교회 간에 이런 교류가 일어난다면 온 세상 교회 간에는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이 놀라운 변화는 바울의 고백처럼 어떤 이가 심고 어떤 이가 물주는 데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것이다(고전3:7).
알지도 못했던 미전도 종족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교회와 함께 수년을 기도했는데 어느 날 현지에서 리수족, 몽족, 라오족, 라후족, 카렌족, 아카족 등, 이들을 만났을 때 이 신비로운 역사에 기절할 정도로 놀라서 이같은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높으신 분에게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품게 하신 소원은 무엇이든 헛되이 달리도록 하지 않으며 허공을 치는 법이 없다(고전9:26).
필자는 현재 섬기는 교회에서 지난 세월 수고한 이들의 흔적을 본다. 선교지로 함께 가자는 필자의 초대에 1/3에 해당하는 교인들이 합류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믿는다. 내년에 함께 갈 이들을 초대하고 있는데 이미 지난 해 갔던 이들 플러스(+)가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작은 개울이 시내가 되게 하고 시내가 강이 되게 하며 강들이 모여 바다가 되게 하신다.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다. 당연히 복음 선교, 곧 구원 역사의 주권자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할 때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라고 진술한다(계1:8 21:6 22:13). 하나님을 벗어나는 시작도 과정도 끝도 없다는 뜻이다. 특별히 성경 전체를 흐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즉 선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프로젝트이기에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역할이 없다거나 작다는 뜻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에게 묻고 그의 뜻을 따라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많은 역사 서적이 있지만 성경과 비교할 수 있는 책은 없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혜 이상의 하나님의 지혜가 부요하게 담겨 있다. 성경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기록한 책이기에 모든 선교에 관한 지침이 놀랍도록 잘 적혀 있다. 21세기는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연유로 이것들을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성경의 지혜와 성령의 권능 없이는 그 어떤 효과적인 사역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변하는 것들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며 선교 역사 또한 오직 그분에 의해서만 시작되고 끝날 수 있다.
역사의 한 지점을 사는 성도는 자신의 부르심에 충실해야 한다. 이 부르심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부르심을 지나 하나님 나라 일꾼으로서의 부르심으로 진행된다. 먼저 구원받은 자녀들은 다른 구원받을 자들을 위한 일군들이다. 심는 역할이든 물주는 역할이든 혹은 시내이든 강물이든 모두 자신을 향한 부르심에 충실해야 한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한 그날을 위해 모든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쫓아가는 자들이다(합2:14 빌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