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
중동 이스라엘 한 산에서 주어진 명령이 지구촌 오대양 육대주에서 지금도 실행되고 있다. 어쩌면 2천년 전 그때 살았던 그 나라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허황된 꿈을 꾸는 극소수 무리의 미미한 움직임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명령은 쉼없이 진행되었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라는 좁은 땅덩어리를 벗어나 로마와 스페인을 넘어 미지의 세계인 땅 끝을 향해 달음질해 왔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 명령을 내린 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닌,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마28:18-20). 사람들은 몰랐을지라도 명령권자는 알고 계셨고 그의 명령이 발 빠르게 수행될 것임을 미리 내다보고 계셨다.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 명령이 어김없이 실행되도록 하셨을까? 이 명령을 수행키 위한 그의 탁월한 지혜의 걸작품은 교회를 그의 몸으로 삼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그의 몸인 교회는 머리에 붙어 있기에 머리가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머리가 앞으로 나가는 데 몸이 뒤로 가는 그림은 정상적이지 않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b-16).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지닌 유기체다. 몸을 이룬 각 마디가 상호 연결되어 있고 언제나 서로의 필요를 도우며 각자 맡은 역할을 감당함으로 건강한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적 교회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의 교회보다 더 큰 단체는 없다. 죤 칼빈이 말한 가시적(가견적) 교회와 비가시적(비가견적) 교회는 공통점과 구별점을 함께 갖고 있다. 지상에 있어 볼 수 있는 가시적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교회이지만 이미 천상으로 옮겨져 볼 수 없는 비가시적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교회다. 이렇게 천상과 지상 모두에 존재하는 교회는 그야말로 우주적이기 때문에 그 역사의 영구성(시간)과 광대한 범위(공간)에 있어 교회와 견줄 수 있는 그룹은 없다. 그리고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와 같아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한 열방이란 공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이란 은혜의 방편을 통해 새로운 신자들을 생산하고 돌보고 자라게 한다(죤 칼빈 기독교강요 4권 1559년).
언젠가 아내와 대화 중에 ‘지구촌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교회가 있어서 너무 안심이 되고 좋다’는 생각을 나눈 적이 있다. 왜 그럴까? 한 가지만 이유를 꼽으라면 교회는 맏형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족이기 때문이다(히2:11-12). 한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 어머니 같은 교회로 모여서 같이 예배하고 교제하는 것이야말로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세계다. 무엇보다 이 일을 주도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신자가 교회의 일원이 되면 교회는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각양 신령한 은사들로 그의 믿음이 건강하고 견고하게 자라도록 돕는다. 교회의 어머니 기능이 무척이나 요긴한 것은 한 사람이 신자가 되는 일, 교회의 지체가 되는 일은 사실 거대한 영적 전쟁 중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전쟁 타락한 세상에서 복음을 통해 교회의 지체로 들어오는 일에는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 이 일은 1세기 초기교회 때부터 21세기 교회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볼 때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등 가시적인 전쟁들이 더 처절하고 참혹하게 여겨질 수 있겠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이 전쟁들도 거대한 영적 전쟁의 일부이다. 혹독한 전쟁이 발발하면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이들의 땅의 시간은 보다 없어진다. 생사가 불확실해지기 때문에 늦기 전에 복음을 믿고 교회가 되거나 계속 복음을 거부한 채로 죄 가운데 생을 마치게 되는,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기로, 자신의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절박할 수밖에 없다.
전쟁뿐 아니라 매일 발발하는 많은 재앙과 사건과 사고들로 인해 복음을 더 들을 수 없는 내세로 들어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예수님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사고사한 사건을 두고 그 사망자들이 더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동일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고 경고하셨다(눅13:4-5).
사람은 모두 시한부 인생이며 허락된 기간 내에 복음을 믿어야 한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명을 수행하는 이들이 교회며 이를 훼방하는 세력과 그 배후에 있는 세상 신 사탄이 있어 온갖 형태의 다방면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을 따르기 위해 즉 세계 복음화라는 미션을 위해 영적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 1세기부터 그래왔고 2천여 년이 지난 21세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네트워킹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명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엡4:3). 아무리 외부의 적이 강해도 내부 결속력이 최상이면 필승이다. 아무리 외부의 적이 약해도 내부가 사분오열되어 있으면 자멸한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한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고 중보하셨다(요17:11 :21-22). 영적 전쟁으로서의 선교는 모든 교회와 모든 선교회가 하나 되어 결합된 힘을 사용할 때 연전연승으로 갈 수 있다.
사도행전은 교회들이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교회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아 파송 받은 선교사들이 돌아와 사역보고를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행13:3, 15:4).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범은 교회가 성령의 지도를 받아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렇게 파송된 선교사들은 교회로부터 위탁받은 사역에 충성하며 후에 돌아와 자신들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보고하는 것이다. 교회도 선교사들도 철저하게 한 팀으로 성령의 주도 아래 그리스도의 명을 수행한다. 이것이 선교다.
현실적 과제와 대안
*교회의 하나 됨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천상의 교회와 달리 지상의 교회는 생활권 지역 거주민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중에는 사실 신자와 불신자가 혼합되어 있다. 심지어 지도자 그룹에 속한 이들조차 성경을 믿는 것에 동일한 시각을 갖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 선교의 명을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필자는 소도시에서 오래 목회를 하였는데 대도시로 올라와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곳의 토양이 더욱 척박하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소도시보다 대도시 교회들의 연합과 결속이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지나치게 경쟁적이며 각자도생의 패턴을 유지하는 것에 있어 보인다. 원리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하나임을 인정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경계심이 많고 보이지 않는 벽들을 겹겹이 쌓는 것을 보게 된다. 교단이라는 구조들도 강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서로를 받는 건전한 문화가 생성되어 있지 않다.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선교라는 네트워킹
지상교회에 많은 다른 점들이 있어도 모든 교회에게 주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 복음을 모든 족속/천하 만민/땅끝까지 전하라! 는 이 명은 시대와 차이를 초월한 지상 대명이다. 그러므로 여러 차이점은 뒤에 두고 모든 교회는 성령의 권고를 받아 힘써 하나가 되어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 네트워킹을 구축해야 한다. 공동의 목표가 뚜렷할 때 불필요한 일들에 힘을 소모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필자의 기도에 오대양 육대주에 산재하는 교회와 선교사들을 위한 중보 시간이 있다. 이 기도는 교단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 일군들을 위한 기도다. 차이점들에 주목하는 눈들을 모아 이제 그리스도가 가리키는 한 곳을 향해 모두가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