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할 때, 좋은 선물을 하고 싶은데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를 세심히 관찰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며, 때로는 정성을 담아 준비하고, 비용을 지불한 뒤, 받는 이가 잘 사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을 전한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기뻐하고, 그 가치를 충분히 누리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해진다.
어느 날, 오랫동안 함께 골프를 쳐온 친구가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곰곰히 생각해 본 끝에 그 친구에게 꼭 맞을 것 같은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그런데, 친구는 아까워서인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일 년에 한 번 꺼내볼까 말까 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관계’라는 꼭 맞는 선물을 주셨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친구, 그리고 동역자 등 다양한 관계 속에 살아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귀한 관계를 혹시 아끼느라 또는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면 어떻게 할지 잘 몰라서 그 가치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결혼제도의 근거가 된 창세기 2:18절에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부부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 즉 관계의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우리 역시 하나님처럼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것이다.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서로 참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한다. 또한 다듬어지고, 배우며, 서로를 세워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관계라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
이런 관계를 통한 성숙은 비단 부부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관계, 곧 가족, 친구, 공동체 안에서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관계는 우리의 성장 터이고, 진정한 공동체는 바로 이런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다.
세대 간의 갈등과 단절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는 ‘관계의 미성숙’이다. 미디어를 통한 왜곡된 기대와 선입견 때문일까. 다음세대에게 관계란 가볍고 일시적이다. 진솔한 나눔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장이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방어하거나 매력을 어필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곤 한다.
요즘 세대는 자기 계발에는 열심이지만, 관계의 계발과 성숙에는 종종 무관심하거나 두려움을 보인다. 점점 소규모로 축소되는 인간관계를 보면 외로움, 우울증, 불안증 등 현대병의 증상들이 결국 ‘관계의 미성숙 또는 관계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개인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관계들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해 가야 한다. 내 신체 건강을 관리하듯, 주변 관계들이 건강한지 돌아봐 주어야 하며, 내 정신 건강을 챙기듯, 주변 관계들 사람들의 내면은 어떤지-외로움은 없는지, 이해받고 있는지-를 살피고 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배우고 다가가야 한다.
한동안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익숙한 MBTI 테스트는 자신의 성격과 성향을 이해하고, 동시에 세상에 나와 다른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데에만 머무르거나,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고, 맞지 않는 사람은 멀리하는 등 쉽게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하곤 한다. 이처럼 다양한 정신 분석이나, 성격 테스트 등을 통해 구분과 분리의 수단이 아닌,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관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선택한 나 중심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는 나에게 맞고, 유익하며,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관계에 하나님의 주권과 개입을 총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는 때로 내 생각과 다를 것이고, 내 이해 밖일 것이고, 불편하거나 심지어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관계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분명 이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개입과 뜻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을 경험한다. 이런 성장이 없다면 우리는 미성숙한 자세를 고집하며, 결국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단절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모든 관계가 다 완벽하고 원만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의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셨듯이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기에 능하심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늘날 부부, 가족, 친지 간의 관계가 깨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가까운 예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살펴보면, 자녀는 대체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가까운 경향이 있다. 이는 자주 대화하며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같이 산다고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야 한다.
가족은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고 보완하며 고쳐나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일을 해결하기 위한 가족 구성원이 아닌,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해 나갈 때 그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진정한 관계의 성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전도를 하다 보면, 상당수의 사람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관계 안에서 상처를 입는다. 특히 교회 안에서, 그리고 한인 사회 안에서의 관계는 그 무게가 더욱 크다. 교회 공동체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교회 행정팀이나 리더, 목사들의 의무가 아니다. 교회가 특정 사람들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성도 개개인이 모여 교회가 되듯이 각자가 주체가 되어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는 태도를 가질 때 진정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향해 사랑을 실천할 때 성장이 일어난다. 그럴 때 교회는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 될 것이다. 반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그저 알고 지내는 미성숙한 관계는 계속해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 돌리고, 자신을 피해자처럼 여기게 된다. 이런 태도는 결국 고립을 만들고 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진정한 관계는 좋은 모습뿐 아니라, 연약함도 함께 나누며, 수용해 줄 수 있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질수록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견고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연약한 모습이 있고, 평생 배우고 성장해 가는 존재다.
실제로 필자는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모든 학생에게 멘토를 가지라고 강력하게 권장한다. 멘토가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의 차이가 크다. 부모님의 유무를 떠나 깊이 경청해 주는 멘토가 있는 학생은 문제가 있더라도 진솔한 대화를 통한 정서적 안정과 성장의 기회가 훨씬 더 많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고, 존중해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뿌리내려 말씀과 기도 안에서 가치관을 세워가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멘토들이 꽤 있다. 멘토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또한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는 건강한 문화는 이미 뉴질랜드에는 잘 정착이 되어있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관계들이 쉽게 깨지는 요즘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필자도 멘토와의 관계를 통해 건강한 성장을 경험했다. 나를 향한 진실된 마음과 본인의 진솔한 나눔, 경청해 주며 중보해주는 모습은 나 역시 그분을 위해 기도하게 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응원해 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로 지속되고 있다. 나 또한 나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며 멘토가 되어준다. 그들이 누구든, 내 경력과 경험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관계 속에 함께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는 멘토를 요청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다음 세대를 향해 ‘내가 무슨 멘토냐.’는 생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다가가 도와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함께 성장하기에 완벽한 곳이다. 왜냐하면 내가 고른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모습에서 좋은 모습뿐 아니라 연약한 모습도 드러나지만 서로 멘토링을 통해 기도해 주며 성장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공동체와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통해 다음세대는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관계의 성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자주 만나는 것, 오랜 시간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서로를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삶을 나눌 때 비로소 시작된다. 다음세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어려워하거나 피하기보다는 함께 성장하려는 진실된 자세가 필요하다. 이 관계 안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성숙해 가는 것이다. 아직 문제를 풀어낼 힘이 없고,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용기가 없으며, 성숙한 관계를 형성해 가기 어려워하는 다음 세대에게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실수를 인정하는 정직함을 삶으로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하고, 진실된 나눔을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세워져 가기를 바란다.
다른 생각의 방식과 문화, 새로운 기술 속에서 낯설기만한 다음세대와의 단절에서 회복하고 연결하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이 우리 삶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쉽지 않지만 기꺼이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하나님이 주신 관계 속에 함께 성숙해 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