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서울 나들이

가까운 사람이 골절을 입어서 휠체어를 전달해 줄 일이 생겼습니다. 손에 들고 가자니 무겁고, 헤라클레스처럼 어깨에 매고가자니 다른 이에게 부딪혀 불편합니다. 그래서 밀고 갑니다. 영등포에서 휠체어를 픽업해서 출발하여 마을버스를 타려니 버스 입구가 좁아 뒷문으로 휠체어를 들어 올립니다. 다행히 마을버스가 붐비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없고 휠체어만 올라오니 사람들이 약간 의아해합니다.


휠체어를 전달하기 전에 지하철을 타고 서초동 꽃 시장으로 가서 먼저 다른 일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영등포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탑니다. 출발 지점인 영등포역에서부터 난항에 빠졌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수리 중입니다’라는 아주 친절한 표지판만 붙어 있고 휠체어는 어디로 가라는 대안 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혼자 타고 나왔다면 아주 난감할 겁니다. 휠체어를 들쳐메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리고 긴 통로를 지나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갑니다.


플랫폼에 앉을 자리가 없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휠체어에 잠시 앉았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오는데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걸어가려니 머쓱해서 본의 아니게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릅니다. 장애인 칸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승차를 시도했는데 휠체어의 앞바퀴가 전철과 플랫폼 사이에 끼입니다. 몇 번을 뒤로 빼고 끼이고를 반복해서 겨우 지하철에 탑승합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도 밀어주는 사람도 손 내밀어 밀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너무 포악해 보였나 싶어 어두운 전철 창밖을 내다봅니다. “잘 생겼는데요. 말 안 해도 목사님처럼 선하게 보이던데요..내 눈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출근길에 전철을 타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나 봅니다.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복잡한 신도림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장애인이 환승하도록 동선이 잘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장애인 칸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지하철 오르는 길에도 문턱이 덜컹거리며 걸리니 누군가 다가와서 잘 타도록 끌어 줍니다. 작은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 간다면 이렇게 작은 배려를 꼭 해야겠습니다.


휠체어를 손으로 밀고 타고 움직이는 것은 허리와 팔에 많은 힘을 주어야 합니다. 비장애인보다 몇 배의 체력 소모가 됩니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피로가 겹치며 전철의 따뜻한 기온에 나도 모르게 휠체어에서 스르르 잠이 듭니다. 얼마를 지나 눈을 뜨고 보니 장애인석 주변의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가득 서 있습니다. 휠체어에 낮게 앉은 자세로 사람들에 가로막혀 있으니 내가 어디만치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교대입니다. 내가 내리려는 사당역 한 정거장 전 역입니다. 휠체어를 탄 채 밀집된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게 일입니다. 장애인인 것 같기도 한데 왠지 잘생긴 듯한(?) 알 수 없는 내가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들고 보니, 주변에서 힐끔거리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낍니다. 복잡한 출근길에 맞닥뜨린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역력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노인들과 장애인들과 휠체어를 타고 가면 모두 웃는 얼굴로 쳐다봐 주는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가끔 내가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너는 왜 그렇게 표정이 무뚝뚝하니?” 라고 듣던 모습이 이제 뭔지 알게 됩니다. 휠체어의 낮은 자리에 앉아보니 낯선 사람, 낯선 풍경에 무뚝뚝하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다음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어느 쪽인지 못 들었습니다. 어쨌든 지하철이 서기 전에 문 앞까지 가야 합니다. 움직이려고 하는 데 무언가 걸려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전밸트를 풀지 않았습니다. 문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니 모두 뒤돌아 서 있습니다. 뒤돌아 있는 분의 몸을 터치하고 보니 엉덩이를 터치합니다. 돌아본 분이 남자라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전철에서 성추행범이 될뻔했습니다. 휠체어에서 아무리 손을 길게 뻗어도 어깨까지 터치하기는 앉은 위치가 너무 낮습니다. 대여섯 일곱 명을 지나가니 서로 옆 사람을 터치해서 길을 열어줍니다. 이제 지혜가 생겨서 지하철에서 내릴 때도 바퀴가 걸리지 않도록 뒤돌아서서 내려봅니다. 이젠 제법 휠체어 꾼이 되어갑니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가는 길은 여러 번 아주 긴 통로를 거쳐 가야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는데 장애인 칸 위치가 다릅니다. 장애인 칸을 찾아 몇 번 좌우로 플랫폼을 움직여야 합니다. 몇 번을 지하철을 타고보니 장애인 칸이 끝에 칸에 규칙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얼추 양재 꽃시장에 도착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와 길을 가로질러 방문하려는 건물로 찾아갑니다. 날은 덥고 길은 멉니다. 그런데 휠체어가 자꾸만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빗물이 고이지 말라고 길을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포장해 두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길을 지나면서 나의 왼팔은 지독히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에 도착하니 경사가 너무 심해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브레이크를 잡는 손에 불이 납니다. 그렇게 건물에 도착하니 문턱이 또 장애물입니다. 화딱지가 나서 일어나 휠체어를 들고 걸어가자니 보는 눈이 있어 겸연쩍스럽습니다. 본 게 있어서 체중을 뒤로 실어 휠체어를 굴려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 봅니다. 겨우 세 계단인데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희열을 느낍니다. 보행자 인도에는 물 잘 빠지는 기능보다 교통약자를 배려해서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한 도로를 유지하는 작은 배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건물에 들어서니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무심히 자기 일을 합니다. 비장애인이 지나가면 눈길 주지 않듯 장애인이 지나가도 특별하게 보지 않고 주목하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편하기는 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건물 안에 휠체어가 지나가면 불편한 게 없을까 돌아보는 내가 많이 오지랖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을 마치고 다시 길을 돌아 나갑니다. 여전히 2중으로 된 입구의 거대한 출입 유리문을 휠체어로 밀어제치고 나가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이번에는 김포로 가야 합니다. 마침 한 번에 가는 광역 버스가 있어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찾아갑니다. 양재대로가 심하게 넓어서 휠체어로 다 건너기 전에 신호등이 바뀝니다. 휠체어가 낮아서 줄지어 선 차들에게는 안 보입니다. 상황을 잘 모르는지 아니면 인내심이 없는 차들인지 모르지만 길 끝의 차 두어 대가 이미 반쯤 나와서 앞길을 막고 있습니다. 차를 피해 겨우 건너보니 직행버스 정류장은 또 길이 멉니다. 이번에는 휠체어가 오른쪽으로 쏠립니다. 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번은 왼쪽 오른쪽 골고루 사용하게 하니 감사합니다.


버스 정류장에 하염없이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니 좌석버스가 옵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접어들고 타니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베드로의 성전 미문 사건을 목도한 이들의 표정이 그랬으리라 싶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휠체어를 실어도 되냐고 물어봅니다. 낯선 풍경인지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좌석버스 짐칸에 휠체어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 않은지 물어봅니다. 일반버스에는 휠체어를 놓을 공간이 있는데 좌석버스에는 휠체어를 놓을 공간이 없어 불편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 좌석버스를 타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듯합니다. 휠체어를 아래 짐칸에 넣을 수 있지만 휠체어를 고정하는 장치가 없어 휠체어가 상할 염려가 있으니 승객이 없는 시간에 좌석에 실어 가는게 좋다고 합니다.

좁은 좌석에 휠체어를 싣고 구겨앉으니 자세가 많이 불편합니다. 김포에 내리니 길을 건너는 것도 방향 구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친절합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왜 휠체어를 가져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도와줄까? 묻습니다. 가는 주소를 말하니 휠체어가 무거우니 걷기보다 돌아가도 버스를 타고 가라고 친절히 마을버스 번호와 타고 내릴 위치도 알려 줍니다. 비록 휠체어를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에 맞추어 제때 배달을 못 했지만 시민들의 따뜻한 도움은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이제 휠체어에 사람을 태우고 공항 철도를 타고 서울역을 거쳐 미아역으로 갑니다. 공항철도와 서울역 그리고 4호선을 갈아타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막상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 보니 지체 장애인을 위한 동선은 잘 만들어져 있어서 가장 복잡한 서울역에서조차 빠르게 환승하여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공공시설을 마음먹고 지으면 장애인에게 아주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을 봅니다.

휠체어 서비스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영등포로 돌아오는 길에 휠체어를 들어서 버스에 타려는데 버스 기사가 서둘러 문을 닫습니다. 버스 타는 시간을 아끼려는 것인지 휠체어를 거부하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버젓이 장애자 편의 버스 마크가 있고 휠체어용 엘리베이션이 있는 버스였습니다. 뉴질랜드 운전기사는 시간이 걸려도 엘리베이션을 내리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보곤 했던 내게는 이 운전기사의 모습에서 장애인을 귀찮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내릴 때도 보도와 버스를 멀리 대어 놓아서 휠체어를 도로에 내려 보도 경계석 턱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체 장애인이 공공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버스 운전 기사님들의 따뜻한 배려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영등포역 광장에서 반대편으로 가는 마지막 과정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날은 저물었고 백화점은 문을 닫았고 백화점을 통해 가는 엘리베이터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도 역 반대편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친 몸으로 휠체어를 들쳐메고 계단을 오르고 다시 건너편에 갔더니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고장이었습니다. 다른 길을 찾았으나 에스컬레이터에는 휠체어는 타면 안 된다는 안내만 뚜렷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70개가 넘는 계단을 휠체어를 짊어지고 오르니 녹초가 됩니다. 이제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것 없이 택시를 부릅니다. 택시는 가스탱크가 있어 휠체어를 제대로 싣지 못합니다. 뒷자리에 접어서 싣고 숙소에 도착합니다. 그러고 보니 숙소에는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와 슬로우프 설치가 잘 되어 있어 출입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루를 휠체어로 움직이고 나니 팔이고 다리고 안 아픈 데가 없습니다. 특별히 허리가 너무 많이 아픕니다. 지체 장애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신체적으로 몇 배나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진짜 힘든 것은 보행권이 보장되지 않는 산 같은 장벽이었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끊어지고 막힌 장벽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이 가끔이 아니라 매번 일어난다는 것을 겪으면서 장애인을 만나면 눈길을 주고 “무엇이 필요한 게 있나요?” 하고 가볍게 물어주는 배려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배우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장벽은 사람들의 낯선 시선과 무관심입니다. 스스로 이동하려고 애쓰는 장애인들을 보면 웃어주고 작은 한마디로 격려하는 모습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생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의 낯선 모습을 볼 때 눈이 크지 않더라도 웃으면서 바라봐주고 목소리가 명랑하고 크지 않아도 작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무엇이 필요한 게 있나요?” 하는 배려 깊은 말을 자주하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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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