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보입니다

여러 사람을 통해 비타민 복용의 효과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지고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저도 비타민을 먹어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막상 비타민을 먹으려 하니 비타민의 종류도 첨가물도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타민 복용할 때 입맛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에 맞는 비타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어느 분이 기관지로 고생하던 중 크리스천라이프에 연재되던 ‘나물 이야기’를 통해 ‘카와카와’의 효과를 알게 되어 카와카와 잎 차를 끓여 먹고 기관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카와카와 사진을 찾아보았더니 뉴질랜드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나무였습니다. 카와카와는 뉴질랜드에만 자생하는 나무라고 합니다.

카와카와의 나뭇잎과 열매는 소염 진통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알고 보니 낮은 산에도 높은 산에도 강가에서도 카와카와가 보입니다. 들판에도 매일 다녔던 길가에도 심지어 우리 옆집 담장에도 카와카와가 아주 흔하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알면 보입니다. 우리는 듣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보는 만큼 믿게 됩니다.

나는 뉴질랜드에 와서 밀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밀알 단장이 되고 밀알 단장직 업무 교육을 받으면서 장애인에 대해 배우게 되었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니 장애인을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밀알 단장 업무 교육에서 첫 번째 과제는 장애인이 누구인가 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들었던 것을 총동원해서 답을 만들었지만 뭔가 부족했습니다. 업무 교육을 통해 모든 강사의 공통된 답은 ‘장애인은 하나님의 형상이다’로 정의를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정의를 알게 되니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교육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내가 듣고 알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지식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들어온 내용들로 만들어진 생각들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구별하는 내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차별하는 내용으로 장애인을 재단하는 생각들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밀알 단장이 되고서도 “장애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장애인을 특별히 대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과 신학의 명제를 장애인에게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장애인을 특별히 섬겨야 한다는 내가 장애인을 구별하거나, 약한 존재로 뭔가 특별히 섬기고 대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이 대하는 것은 그 겉모습이나 그가 가진 기능이 아니라 본질이 같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복음에서 명백히 밝히셨습니다. 교회에서 자란 사람의 한 사람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이 말씀을 노래와 성경 암송을 하여 가장 익숙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사영리전도 원리를 배우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세상에는 나와 당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라는 부분을 듣는 순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주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끔 나를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실수로 부를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어릴 때는 하나님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를 동일시해 보았을 것입니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우리 집보다 집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집 밖의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한 아버지를 연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와 가족을 제외한 외부 사람들이고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을 뜻하는 단어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도 포함된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가 하신 일은 나에게도 해당되고 나를 위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엄청난 충격과 감동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의 구원의 십자가의 능력을 더 믿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설교에서 들었습니다. 그 말씀들은 언제나 윤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살아내야 할 모습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고 완벽한 삶,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한다는 유교적 설교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독교 교육을 공부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배우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사람은 그의 처지와 환경과 모습과 상관없이 누구나 귀한 존재라는 것을 듣고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귀한 존재에 나도 포함되므로 내가 못나고 돈 없고 병들고 윤리적으로 부족해도 나는 나 그대로 존중하고 나는 존귀하게 대접받아야 된다는 자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장애인은 하나님의 형상이다’는 말을 듣고 난 후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은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정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왜 차별 없이 대하여야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또한 ‘장애인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장애인을 생각할 때 구별하는 것보다 같음에서 보는 시각을 가지게 합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공격적이거나 방해하거나 때로는 자해와 같은 도전적인 행동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난처해하고 어떤 이들은 무서워하고 다른 이들은 행동을 바로잡는다고 야단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전적 행동은 의도적인 악함이 아니라 필요를 요청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보고 도울 방법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전적 행동의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싶다는 몸으로 하는 의사소통의 한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어린이가 장난감이나 좋아하는 음식을 얻고 싶은데 표현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를 때 떼를 쓰거나 주의를 끄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말로 소통하지 않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자나 사탕 같은 대체 응답으로 채워주면 그 행동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라고 배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도전적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의사소통 과정을 생략하고 그들의 요청을 추측해서 알아서 먼저 채워주는 돌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또한 대화나 사회적 상호 작용을 원하는 데 관심을 주지 않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은 도전적 행동을 합니다.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꼬집거나 하는 이유는 자기를 봐 달라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면서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발달시킬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자기가 하기 불편한 활동의 중단 요청하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도전적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도전적 행동을 한다면 꾸짖거나 체벌하거나 반대로 사탕이나 음식과 같은 다른 보상으로 대체하기보다 적절한 의사소통 과정을 연습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방법을 연습하여 대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도전적인 행동의 이유를 알면 그들의 필요를 알게 됩니다. 알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보입니다. 보이면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ASD)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은 소리를 선별해서 차단하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발달이 지연됩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큰 소리는 비장애인이 상상하는 것 보다도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그것은 마치 불에 덴 것과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반응도 불에 덴 아이가 놀라서 펄쩍 뛰어 위험을 피하는 것처럼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서 도망을 가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도망가면서 주변의 사람들이나 물건들을 망가지게 하거나 벗어나는 현장을 완전히 혼동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런 고통을 알게 되면 그 고통을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망가는 것은 무조건 반사라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을 인정하고 대신에 그 장소와 사람을 마구 헤집어 놓지 않고 질서 있게 벗어날 수 있는 의사소통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전략을 연습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알게 되면 보입니다. 보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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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충성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기독교교육 대학교 석사 졸업. 밀알선교단장. PCK선교사. 장애인 토요학교, 연합주간센터 (UNITED CROSS CULTURAL COMMNUNITY CENTRE, 치매 어르신 주간센터, 주바라기 사랑방)를 운영하며,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