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되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러다가 해가 바뀌었다. 해가 바뀐 것도 새해가 온 것도 예전처럼 반갑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무겁기만 한 것은 꼭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해가 바뀌기 전 마지막 달에 너무도 무서운 일들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영영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던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계엄령을 선포했던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대행했던 국무총리도 불과 며칠 만에 다시 탄핵당했다.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고 나라의 운명조차도 위태로웠다. 사람들은 모두 빨리 해가 바뀌었으면 했다. 해가 바뀌면 정국도 바뀌어 이런 사태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가냘픈 희망에 기대 날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해가 바뀌기 불과 사흘을 남기고 참사가 터졌다. 전남 무안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여객기가 조류 충돌로 엔진에 이상이 생겨 동체 착륙을 하다 활주로 끝에 있는 콘크리트 로칼라이저(localizer)와 충돌하여 기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폭발하여 화염에 휩싸여버렸다.
‘오, 하나님!’ 사고 소식을 접하고 티브이로 뉴스를 시청하던 나는 승무원을 포함한 승객 181명 중 생존자 2명을 빼고 전원 사망 확인되었다는 아나운서의 침통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몰래 소리쳐 하나님을 불렀다. 비행기 안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모습과 너무도 기가 막힌 비극 앞에서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못할 유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밖에 없었다.
누구의 죄인가?
‘그들이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가야 했습니까?’ 나는 어느덧 하나님께 대들 듯 항변하고 있었다. ‘당신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들이 참새보다 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마태복음 10장)’
너무도 참담한 비극 앞에서 누구에게든지 소리를 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이어서 그랬는지 나는 생각나는 대로 성경 구절을 집어내 들이대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따지고 대들었다. 그러면서 펑펑 울었다. 참 오랜만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누가복음 13장)’고 하셨던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떨구면서 신음하듯 소리를 뱉어냈다. ‘그렇군요. 하나님, 우리 모두의 잘못이군요. 우리 모두가 죄인이군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나는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나의 죄를, 우리의 죄를, 우리의 오만을, 하나님보다 세상을 따르려 했던 죄를, 생각나는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힘을 다해 기도했다.
십인의 의인이 필요한 대한민국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내 머릿속에서는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계속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옛날 죄악이 극에 달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을 붙들고 목숨을 걸고 그들의 구원을 간구하던 아브라함이 생각났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인의 의인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창세기 18장).’ 어떻게 해서든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고 싶었던 아브라함은 오십인의 의인으로부터 십인까지 내려오며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들어 ‘이르시되 내가 십인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십인의 의인마저도 없어서 결국 멸망했지만 오늘 우리나라에는 필히 십인 이상의 의인이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의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0년 동안 뉴질랜드에 나와 살다가 2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온 내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풍요 그 자체였다. 불과 한 세기도 안 되는 지난날 우리나라는 암흑과 빈곤 속에 묻혀 있었다. 그랬던 이 나라의 삶이 짧은 시간에 풍요로워졌을뿐더러 문화, 예술, 스포츠 등의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세계 어디에서도 자랑스러워졌다. 이런 사실을 두 눈으로 보면서 나는 일면으로는 놀라고 또 감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겉으로 보이는 풍요와 발전의 이면에 가려 있는 질곡과 갈등과 어둠이 보였다.
빈과 부의 차이는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았다.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정치로 인하여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못된 정치인들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선거에서 이길 표를 얻기 위하여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나라가 지역으로 갈라져 다투었고 남과 여로 갈라져 서로를 비하했고 노(老)와 소(少)로 갈라져 위아래가 없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풍요의 맛에 깊숙이 빠져버린 대부분의 사람은 나라 꼴이 어떻든 맛집을 찾아서 새로 생긴 멋진 카페를 찾아서 외제 차를 몰고 거리를 휩쓸었고, 이름도 생소한 외제 상표의 고급 상품이 흘러넘치는 쇼핑 센터엔 사람들의 물결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라를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정쟁만 일삼던 정치판에서는 돌연 계엄령이 터져 나오고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정국은 더할 나위 없이 불안해졌고 밖에서 보는 나라의 사태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평생을 평화 속에서만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은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는 듯 태연히 연말연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밤거리엔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고 번화한 거리 곳곳엔 매일 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찼다. 쾌락과 안일만을 탐닉하는 전형적인 군중의 모습이었다.
참사로부터 배워야 할 것
이러던 중 참사가 터진 것이었다. 철새 서식지가 가까운 무안에 공항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 조류 충돌(Bird Strike)의 사고 확률이 크다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무안 지역 주민의 표를 얻기 위해 공항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결국 사고가 났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179명의 희생자와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유가족들을 바라보는 국민 모두의 마음은 안타깝고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시간은 갔고 해가 바뀌었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끝나 가고 있다. 이제는 모두 정신을 차리고 이번 사고가 가르쳐 주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고도 그냥 또 하나의 사고로 지나가 버리고 우리의 운명이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유가족들의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참사의 아픔도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데 정치인들은 다시 서로를 물어뜯으며 날 선 공방을 시작했고 개념 없는 사람들은 다시 맛집과 명품을 찾아 거리를 휩쓸고 있다. 그리고 허리띠보다 가느다란 비무장지대 너머에는 전쟁광의 명령에 언제라도 우리에게 총칼을 들이댈 북한군이 대기하고 있다.
이대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 이 나라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망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목숨 걸고 기도하여 십인(十人)의 의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의인을 찾기가 힘들다면 우리 자신이 의인이 되자.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면 2025년의 우리나라는 의인으로 가득한 나라가 될 것이다. 결코 멸망하지 않고 복 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