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라는 명령과 선교(사도행전 10:9-16)

오늘날 세상을 보면, 온통 먹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명 <먹방 이야기>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먹는 문제를 매우 소홀히 하여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먹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하는 식탐의 문제는 물론이고 그깟 먹는 것 아무렇게나 한 끼 먹으면 되지 않으냐 하는 것도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아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먹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시작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담과 먹는 문제로 언약을 삼으셨고, 신약에 이르러 베드로에게 선교적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도 먹는 문제로 지시하셨다.

아담은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으며, 베드로는 먹으라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먹지 말라는 것은 먹고, 먹으라는 것은 먹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하나님은 이렇게 먹는 문제로 하나님과 인류의 원시 언약을 시작하시고, 또한 먹는 문제로 이방인을 위한 복음사역, 즉 선교적 명령을 내리셨다.

사도행전 10장에 나타난 환상은 베드로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에 담긴 음식은 유대인으로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잡아먹으라”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곧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명령이기도 하다.

선교는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발견
레위기 11장은 유대인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하나님의 명령은 어쩌면 다소 비정상적이고 비 율법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베드로의 환상은 재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로 볼 수 있다. 온 천지 만물과 나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의식과 생각, 나의 행실과 신앙조차도 재창조하실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에게 있어서 정상적이며, 효과적인 선교지에 대한 명령은 분명히 다시스였지 니느웨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로 갈 것을 명령하셨다. 여기서 요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자기의 좁은 뜻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을 니느웨, 즉 바벨론 땅으로 70년간 포로로 보내어 연단하실 것인데, 바벨론 백성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을 아시고, 선발대로 요나를 택하셔서 요나에게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환상을 가져야 한다.

환상 속에서 조심해야 할 신앙적 자세
이 환상을 보았을 때의 베드로는 어리둥절했다. 사도행전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베드로의 말에는 선교적인 측면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담겨있다.

속단주의
베드로는 보자기에 싸여 있는 물건을 보자마자 성급하게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물건으로 단정 지었다. 벌써 ‘더럽고, 필요 없는’ 것으로 결정해 버린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왜?’라는 숙고와 사고의 과정 없이 속단하는 실수를 범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계획과 뜻의 전체 청사진을 한꺼번에 알려 주지 않으실 때가 많다. 한 단계씩, 그다음 단계를 알려주시면서, 그 뜻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그러므로 한 가지 일만을 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속단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속단은 금물인 것이다. 깊은 묵상과 숙고가 오히려 필요하다.

주관주의
베드로는 강력하게 ‘내가 결단코’라고 말하고 있다. 신앙은 자아 중심(ego-centric)이 아닌, 하나님 중심(theo-centric)이다. 나의 것을 내세우려 한다면 항상 실족할 뿐이다. 성경에는 ‘나 밖에, 나 외에’를 부르짖다가 망한 사람이 많다. 특히 모르드개를 해하려다 멸망당한 하만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하는 주관 섞인 사상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위험하다.

경험주의
베드로가 ‘결코 먹지 않았다’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내보이는 것이다. 우리 역시 경험과 경력을 자랑할 때가 있다. 베드로는 분명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경력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려 했다. 그것이 심지어 하나님의 명령이었는데도 말이다.

성경 잠언에서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했고,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했다. 이는 연륜 즉 경험을 말하고, 연륜은 곧 지혜와 직결된다. 그러나 경험적 지혜가 전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앙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지, 인간의 경험이 되어서는 실족할 경우가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고집
사도행전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거절했다. 이것이 용기인가 고집인가? 때로는 용기와 고집도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진리를 위한 고집이 필요할 뿐, 생활에의 고집은 불필요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어야
선교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나의 모든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나의 욕심이나 판단으로 선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선교다. 결국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조용히 기다리는 중에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성령의 인도로 고넬료 집에 갔을 때, 놀라운 일을 체험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즉 베드로 자신이 ‘더럽고 필요 없어서 못 먹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 ‘이방인 구원’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체험하고 배운 것이 선교지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베드로의 환상에서 깨닫게 된다.

선교사로서 의사결정에 가장 우선적인 것은 무엇인가, 파송 교회, 기도하고 후원하는 자의 입장에서도 베드로가 경험한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가 보여주는 여러 잘못된 자세가 선교지 선택과 선교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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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명균
총신신대원 졸업, 24년째 한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회세계선교회(GMS) 뉴질랜드지부장을 맡고 있다. 크리스천라이프에는 를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경일독을 이어가는 을 5년째 집필하고 있고 뉴질랜드 초기 선교사들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선교적인 시각으로 다시 보면서 이 이야기를 펼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