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에 처한 교회와 성도를 위로하기 위해 연 콘서트, “그리고 좋은 교회가 되자”는 말씀 담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라는 뮤지컬줄거리가 마음속에 지어진 올해 1월의 어느 날, 염평안 작곡가님이 지은 모든 노래들을 들어보고, 총 5곡의 사용을 허락받기 위해 처음으로 연락드렸다. 어려움에 빠져있는 교회와 지쳐있는 성도님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비전을 나누었고, 또한 뉴질랜드로 한번 오시면 좋겠다는 말을 웃으며 지나가듯 했는데, 그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5월 5일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위해 준비하던 중 염평안 작곡가님을 뉴질랜드로 초청해야겠다는 마음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예배 직전에, 한 성도님과의 대화 속에서 이 생각이 주님께서 주신 것일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기도하게 되었고, 생각을 정리한 후 다음 날 염평안 작곡가께 연락드렸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해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8월이라는 제한된 기간을 말씀드렸고, 한 명의 왕복 비행깃값 및 2주간 회사 휴가를 내어 모든 일정에 함께하며 도움을 드리겠다는 제안을 했다. ‘같이걸어가기’가 어떤 팀이고 무슨 사역을 하는지도 몰랐었고, 나는 뉴질랜드 교회들과 많은 연결고리도 없었던 상태였기에 돌아보면 참 어설픈 계획이였다.
감사하게도 8월에 2주간의 ‘같이걸어가기’ 팀 사역 일정이 마침 비어있었고, 작곡가님과 오가는 대화 속에 팀원 총 4명이 왕복 푯값 및 일정비를 부담하며 뉴질랜드로 넘어오겠다고 하셨다. 대신 숙박에 대한 지원과 교회에서 주시는 사례 및 음반 판매 금액으로 경비를 충당하는 것이 뉴질랜드에서도 이해받을 방법인지에 질문을 주셨다.
여행 일정이 맞아떨어지고, 비행기 삯들은 자비량이며, 의전을 담당할 사람까지 해결된 상태였기에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될 거라 확신하며 여러 곳에 연락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름있는 특정 단체가 아닌 개인이 일정을 조율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1명이 아닌 4명이 함께하는 일정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뉴질랜드에서 너무나 큰 현실적인 장벽이었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말들이 들려오고 오해들이 생기며, 어느 순간 ‘같이걸어가기’ 팀 자체가 뉴질랜드에 오는 것이 부담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초대받는 팀 쪽에서도 재정적으로 큰 부담을 지고 역으로 제안해 주셨던 것이기에, 솔직하게 이곳에서 들었던 이야기들과 상황들을 ‘같이걸어가기’팀에 전해드렸고, 모든 것을 멈추고 2주간 서로 기도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같이걸어가기’팀이 어떤 메시지로 사역을 나누는지 더 자세히 물어보게 되었는데, 삶과 가정에서 발견한 하나님 그리고 좋은 교회가 되자는 메시지를 나누신다 하기에,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와 주변 교회들의 현실 및 많은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좋은 교회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성도님들과 목회자분들에 대해 알려드리게 되었다.
이미 많은 것들이 기적처럼 맞물렸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이 순간에 있는 듯한데, 재정과 책임 소재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가 모든 것을 멈추게 하였다. 2주간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교회와 성도를 향한 이 위로의 메시지가 뉴질랜드의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것 같은 마음이 자라나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한 걸음을 떼어 발을 물에 담그니 곧 강이 마른 것처럼, 누군가의 한 걸음에, 이 모든 현실적 이유와 주변의 말들이 사라지길 소망하며 간구했다.
비행깃값 및 숙박비도 자비량으로 온 ‘같이걸어가기’팀
2주 후 작곡가께 다시 연락드리며, 어쩌면 치기어린 마음이자 내 분수를 넘어서는 무리한 재정지원 제안을 했었는데, 이미 ‘같이걸어가기’팀 안에서 기도와 대화 가운데 모든 현실적인 조건을 부담하고 뉴질랜드로 오는 것을 결정했음을 전해 들었다.
한국에서도 필요한 곳이면 찾아가 삶과 가정, 교회에 대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자신들인데, 뉴질랜드 상황을 그렇게까지 들었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가지 않는 것이 맞나 하며 팀원들과 대화 가운데 결정을 하셨고, 비행깃값 및 숙박비만 해도 당시로는 12,000불이 예상되었음에도 모든 것을 팀이 부담하고, 또한 뉴질랜드에서 내 개인의 모든 의전비용도 부담해 주시기로 하였다.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들을 없애기 위해 사례비 없이 감동후불제로 공연하기로 했고, 동시에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이는 교인이 많던 적던 필요한 곳 7~8군데의 일정을 잡아달라 말씀 주셨다. ‘같이걸어가기’ 팀이 한 걸음을 떼어주시니 많은 부분이 빠르게 채워져 가기 시작하였다.
청사모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각 지역의 교회 연락처를 받아 로토루아, 타우랑가, 해밀턴, 크라이스트처치 그리고 오클랜드 3곳의 교회들과 일정들을 조율해 가기 시작하며 총 10번의 일정을 확정하였다. 또한, 원처치 및 크리스천라이프의 협력 속에 순회공연 광고를 시작하였다.
뉴질랜드에 머무는 14일 동안 북섬과 남섬을 오가며 9번의 콘서트와 1번의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은 참으로 지칠만한 일정이였다. 하지만, 방문하는 교회마다 나눠지는 찬양들과 메시지 가운데, 하나님께서 왜 ‘같이걸어가기’팀을 뉴질랜드에 보내주셨는지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요게벳의 노래’라는 유명한 곡 또는 콘서트라는 소리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오신 성도님들에게 ‘그곳에’ 라는 찬양으로 이민자들의 모든 삶 속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노래하고, ‘눈물로 지으신 이름 예수’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가운데 담으신 우리를 향한 사랑을 노래하며, ‘교회’ 찬양을 통해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에 대해 다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했다고 말 할 수 있겠느냐마는 콘서트를 진행하며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찬양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들과 성도님들 그리고 맨 앞자리에서 눈물을 훔치시던 목사님들을 보며, 다시 한번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그 비전이 단순히 나 개인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고 인도하셨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상상 이상으로 넘치는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계셨다. 환영 포스터를 만들어 우리를 환영해 주시던 목사님부터, 불확실하던 숙박을 3일이나 제공해 주시며 집에 새로이 와이파이를 깔고 이불들과 수건들을 사두신 권사님과 양고기를 맛있게 구워주신 집사님. 6명이 충분히 머물 수 있는 넓고 많은 방이 있는 Airbnb집을 예약해 주시던 집사님. 남섬에서 이틀의 숙박과 음식을 제공해 주시며 새벽 3시에 공항으로 픽업해 주신 집사님 가정. 그리고 새벽에 기어코 공항에 나오셔서 아침을 사주시며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 오클랜드에서 머무는 6일 동안 자신들의 안방과 아이의 방까지 내어주시던 집사님 가정까지, 여기에 다 쓸 수 없는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사랑과 후원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순회공연을 준비하며 마음에 숨겨둔 여러 말 못 할 상황들과 어려움들이 어느새 내 안의 쓴 뿌리로 남아있었는데, 교회들의 귀한 사랑과 격려에 모든 것이 녹아내리기도 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후원하기도
또한 감사하게도 많은 후원금이 모여 ‘같이걸어가기’팀의 여행 일정비가 채워지게 되었다. 가져오신 모든 앨범이 전부 판매되었고, 각 성도님이 LoveU 은행 계좌로 5불부터 다양한 금액들을 감동후불제로 이체해 주셨고, 방문하는 교회와 목사님들께서 사례금들을 보내주셨다.
예를 들어, 쉽지 않은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젊은 엄마는 공연 이후 1,000불을 후원해 주며, ‘같이걸어가기’팀이 한국에서도 그리고 필요한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이 팀의 발걸음을 격려해 주기도 하였다.
출국하기 전날 LoveU 계좌로 모인 앨범판매금 및 대략 4명의 비행깃값이 넘는 금액들을 회계지표로 정리하여 팀원들에게 발표 및 은행 거래내역서를 보내드리고 난 후, 모든 금액들을 팀 한국계좌로 송금하였다. 현재 9월 말까지 계좌를 열어 모인 후원 금액을 추가로 송금계획이다.
‘교회’라는 찬양 반주 통해 마음이 울리고 눈물 쏟아
첫 번째 일정인 로토루아 갈릴리 한인교회에서 공연을 위해 총연습 중, 뒤에 앉아 PPT를 하던 중에 나오던 ‘교회’의 노래로 많은 눈물을 쏟았다. “주님이 피로 사신 아름다운 교회. 서로를 사랑함으로 하나 되는 교회. 주님이 머리 되신 거룩한 교회.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이 찬양의 반주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마음이 울리고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교회를 개척하시고 36년 째 한 곳에서 섬기시는 목회자 부모님을 두며, 나에게 교회는 집이자 놀이터였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따듯한 장소였으나 어느새 어른이 되어 바라본 교회는 상처와 아픔만 남아 보였다. 나는 긴 시간 교회를 다녔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만나지 못했고,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의 의미를 알지 못했기에 내 생존과 신앙의 성장만을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이 머리 되신 거룩한 교회를 몰랐기에 내 열심과 이상을 주장함으로 교회 안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을 주었다.
교회에 머리 되시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각 개인을 만나주시고, 매 순간 삶 속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더욱더 깨닫게 하시어, 우리가 모두 예수님 안에서 함께 교회로 지어져 가는 말씀대로 이뤄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같이걸어가기’ 뉴질랜드 콘서트 후기
지난 뉴질랜드의 모든 일정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끝에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한 마음만이 남게 됨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이야기와 찬양에 귀 기울여주시고, 함께 찬양하며 박수로,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는 모습들에 격려와 힘을 얻었습니다.
_조찬미<보컬리스트>
먼저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교회를 다니며 변덕스러운 뉴질랜드의 겨울 날씨만큼 고독하고 외로운 마음들이 느껴졌습니다. 저희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전해졌기를 소망해 봅니다. 받은 큰 사랑을 기억하며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_임성규<보컬리스트>
계산 없이 와서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그네임을, 좁은 길 같이 걸어가는 형제자매임을 깨닫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_염평안<송라이터>
“무슨 일 있어요 ?”
교회 앞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유준영 형제를 보며, “무슨 일 있어요 ?”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준영 형제는 내가 다니는 교회의 청년으로, 중고등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회학교 선생이자, 이민교회에서 이민자들이 느끼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이민자이기도 하다.
나의 심심한 위 질문에 준영 형제는 한국에서 CCM 가수.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뉴질랜드로 초청하여 우리 교회 및 이민 교회들을 위로하는 공연.작은 음악회를 열고 싶은데 제공할 숙소와 비용 부분에 아직 확신이 없는 상황에 있음을 알려 주었다.
사실 나는 작년부터 모기지 이율이 인상된 부분으로 인해 우리 세 식구만 사는 큰집이 맞지 않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남아도는 우리 방의 쓰임이 이거였구나 싶은 마음이 바로 들었고, 흔쾌히 숙소를 제공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깜빡한 것은 아내의 허락이었다. 항상 거의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 아내의 착한 심성을 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같이 걸어가기 팀’이 오는 시간이 되어 가고, 도착하고 짐을 풀 때, 그리고 이들이 Auckland, Hamilton, Rotorua, Taupo and Christchurch를 2주 안에 정말 빡빡하게 채우고 우리 집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이 팀원들이 오랜만에 만난 한국에서 온 내 형제자매와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밤마다 함께 나눈 대화시간은 이들이 돌아간 이후 ‘요게벳의 노래’ 외에도 하나님을 삶에서 만나 영감을 얻고 지은 염평안 형제의 모든 찬양을 귀로가 아닌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의 귀찮음을 극복하고, 섬김의 자리에 있었음에 감사는 배가 되었다. 다시 오면, 좀 더 맛있는 음식과 좀 더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드릴 마음 밖에는 없다.
_양찬주 집사<오클랜드 숙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