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놀이터이다. 아가들의 욕조에서부터 어린아이들의 수영장에서 적응을 마치면 바닷가로 나온다. 찰랑거리는 바닷가는 모래성을 올리며 중장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든 아가의 놀이터이다.
아이들에게부터 어른에게까지 물은 우리의 삶과 닿아있는 삶의 무대이다. 여름이 다가오면 늘 행복이 가득하고 이야기가 넘쳐난다. 단순히 수중에서 하는 놀이를 즐기는 이들에게만 아니라 먹거리와 삶의 터를 잡고 사는 어부들과 학자들에게까지 바다는 귀한 자원이다. 우리가 보존하고 가꾸어 아름답게 만들어갈 동산이기도 하다.
이 놀이터가 기후변화와 극단으로 바뀌는 것은 그림을 그리며 상상해 봐도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섬뜩하다. 이는 다른 이야기이니 또 언젠가 나눌 자리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많은 이들의 쉼터이고 삶의 터전이며 즐길 수 있는 놀이터인 바다가 참 좋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극단적인 기후 위기가 아니어도 무서울 수 있다.
즐겁고 안전한 바다
바다를 즐기는 이들처럼 물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위험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올해 초 해수욕을 하던 남성이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뉴스도 있었다. 현지 뉴스 기사에도 기록이 남게 되었다. 단순히 올해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의 80%가 모여 사는 오클랜드는 매년 100여 명의 인명피해가 바닷가에서 일어난다. 한해에 3만 명 정도를 구조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게 해마다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인력이 필요했다. 전문가들의 노력과 삶의 지혜가 필요한 자리이다.
바닷가 문화로서의 서핑
뉴질랜드/호주에서 서프인명구조 팀을 구성해서 몇몇 메이저 협력회사들과 함께 안전을 우선시한다. 패션도 앞서서 이끌어간다. 여성/남성 수영복에서 래시가드로 트랜드를 바꾸었고 많은 해수욕객은 이제 수영장에서도 수영복과 함께 래시가드를 입는다. 모두 서핑을 비롯한 워터스포츠의 영향이다.
뉴질랜드 인구의 대부분이 모여 사는 오클랜드만 아니라 웰링턴, 타우랑가, 뉴플리머스, 기스본, 크라이스처치 등의 도시들은 이러한 서핑 문화가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작은 도시인 래글런과 아히파라는 세계 서핑 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뉴질랜드 서핑 명소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어떻게 농촌과 어촌 및 도시에 사는 서퍼들과 신앙인들에게 삶의 깊이와 행복한 영성을 선물할 수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신개념의 농어촌 선교
해양도시로 이주를 해오거나 이사를 한다면 그 지역의 삶과 풍요에 대해서 조사를 하거나 여러 방편으로 살아갈 터에 관해서 확인을 거듭한다. 조사를 마치면 지금 있는 곳보다 살기 좋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는 이들도 있다. 또는 가야만 하므로 가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때론 건강의 문제로 환경을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그곳에 정착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관습 곧 반복하는 문화와 전통의 흐름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는 그 문화와 삶의 흐름 중,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서핑의 시작과 전통, 그리고 한국 서핑
서핑은 듀크 카하나마쿠, 하와이 출신 미국 서퍼이자 수영선수였던 섬나라 원주민을 통해 미주 서부와 호주, 뉴질랜드에 소개된다. 하와이 전통문화인 서핑은 그렇게 백인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빠르게 성장한다. 20세기 초반의 일이다.
결국 세계 파도가 있는 대부분의 바닷가의 스포츠로서 서핑은 자리를 잡았다. 100년이 흘러온 시점의 결과이다. 모든 서핑 애호가와 그 문화를 동경하는 남녀노소가 전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렇게 환호하는 즈음 한국도 열차에 올라탔다. 뉴질랜드로 서핑 유학을 오는 한국 프로선수들도 있지만 한국에서의 서핑 여행은 더욱 그 열기를 타오르듯 힘을 더해간다.
도시에 있는 청년들이 농어촌이 있는 바닷가로 이사/이주해 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더 많은 젊은이가 바닷가로 물이 일려 오듯 몰려오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밀려오는 추수의 때에 어떻게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지 꾸준한 기도와 깊은 탐구의 결과가 나왔다. _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