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의 첫 출발은 목사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뉴질랜드는 남섬과 북섬으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북섬 오클랜드, 아들딸이 다니는 대학교는 남섬 더니든에 있다. 비행기로 2시간 남짓 거리이다.

쉽게 말해 해외 유학은 아니지만 아들딸 모두가 국내 유학생이 되는 셈이다. 아들을 그 낯선 곳으로 유학 보낼 때 준비하고 체크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러나 제일 먼저 한 일은 교회의 선택이었으며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아무리 똑똑하여 의대를 들어가고 치대를 들어간다 한들 하나님과 멀어지면 다 끝이다.

나는 유학생 목회를 오래 했다. 유학생 목회를 하면서 내가 만약 유학생 선교에 관련된 책을 쓴다면 그 제목을 ‘유학 절대 가지 마라. 그러나 너는 가라’로 짓고 싶었다.

부모를 떠나서 돈 있고, 시간 있고, 자유가 있으니 너무도 많은 친구들이 무너진다. 부모는 집 떠나 고생한다고 돈으로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지만 많은 친구들이 무너졌다. 그러니 오죽하면 ‘유학 절대 가지 마라’는 당부를 할 정도일까.

그렇다고 유학이 주는 유익을 무시할 수는 없다. 꼭 준비된 자, 뜻을 정한 자, 결단할 수 있는 자들에게는 유학이 유익하기에 ‘그러나 너는 가라’로 끝맺음을 한 것이다.

이제 내 자식을 유학 보낼 차례가 되었다. 치과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더니든으로 유학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낯선 곳, 낯선 땅에 도전을 해야 하는 아들에게 제일 먼저 행한 일은 그 지역 교회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수고해 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입학하기 전에 잠시 짬을 내어 내 자녀의 영혼을 돌봐 줄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부탁했다. 내 자식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순서를 잘 모른다. 성경은 분명 복된 길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복된 길을 알지 못해 수많은 실수를 한다. 영혼이 잘될 때에 범사가 잘되는 것이다. 영혼이 잘 안되면 범사가 망가진다.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망한다.

이것을 부모들이 모르다 보니 내 자식의 영적 건강은 생각지 않고 세상적인 환경만 채워 주려고 노력한다. 복을 받으려면 순서를 기억해야 한다.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가 잘되는 것이다. 내 자녀를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영적 리더를 만나는 것이 대학교 합격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리고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으로 예배하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앙 교육에 있어서 아들, 딸에게 자주 해 주는 말이 있다. 주일에는 정장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결혼식 날 가장 예쁘게 입고 정장을 입으며 참석한다. 왜냐하면 특별한 날이고, 복된 날이고, 성스러운 자리이기에 격식을 차린다. 아무 옷이나 입고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는 결혼식보다 못한가?

직장에 입사하기 위하여 면접을 보는 자리는 어떤가? 슬리퍼를 신고 가나? 아무 옷이나 입고 가나? 아니다. 면접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로 깔끔하고 멋있게 정장을 입고 간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리는 면접 자리보다 못한 자리인가?

면접 잘 봐서 직장에 합격했다 치자, 몇십 년 돈벌이 직장을 얻기 위해서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시는 그분을 예배하는 자리에 막 입고 갈 수 있나? 예배에 대한 가치는 곧 하나님을 얼마나 존귀한 분으로 여기는지와 동일하다. 오히려 옷을 함부로 입고 가면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가 된다.

대통령을 대면하는 자리에 아무 옷이나 입고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이기에 격을 차려야 한다. 그렇다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왜 예식이나 대통령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격식을 갖추는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며 그 모임이 주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분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다.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절대주권자이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 소중한 은혜를 깨달은 자가 어찌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진대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그 하나님을 경홀히 대하는 자에게 어찌 복이 임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면 그 최고의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며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다
나는 유학생 목회를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섬기는 교회는 항상 꼬리표가 붙었다. ‘유학생 교회, 청년 교회.’ 큰 교회는 아니지만 항상 넓은 교회라 자부하며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겼다. 우리 교회를 거처 간 수천, 수만 명의 청년들이 전 세계로 넓게 퍼져 있으니 넓은 교회가 맞다.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저기 뿌려져 날아간 그 자리에서 열매 맺는 유학생 교회이다.

유학생 중심의 교회를 하다 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복음 전파였다. 짧게는 1주 그리고 3개월, 6개월 단위의 워킹홀리데이 청년들이 많았다. 물론 대학교를 다니는 청년들은 3∼4년의 시간을 보내지만 대부분 짧게 왔다 가게 된다.

그렇기에 복음의 긴박성이 있다. 짧게 있는 그 시간에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긴박성이 항상 있다. 주일 하루를 방문하여 예배하더라도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항상 설교의 포커스는 복음이었다.

어떤 본문으로 설교를 하든지 기승전복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처음에는 유학생 교회로 출발했기에 복음의 긴박성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든 교회의 사명이고 모든 성도들의 사명이다. 교회는 윤리를 전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선행만 전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얻게 되면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더 큰 교회, 더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로 옮겨간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이 많은 큰 교회가 내 자식에게 좋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유익을 얻고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복음이라 말해 주고 싶다. 프로그램이 좋은 교회 청소년, 청년들은 믿음이 다 성숙한가? 부모들은 착각을 한다. 교회 프로그램이 내 자식을 복되게 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다, 프로그램 없이도 오직 복음 하나만으로도 내 자식은 잘된다. 왜냐하면 그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에는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부모가 복음을 제대로 들었다면,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복음이 있는 곳에 자식을 두지, 단지 프로그램 좋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램 없이 예수 복음만 듣고 자라도 하나님은 우리 자녀가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게 하신다. 복음이면 충분하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주일마다 성도들을 환영하며 축복하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되면 특별히 다음 세대인 아동부들을 앞으로 초청한다. 그러면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일어나 ‘축복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축복한다.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곳에 모인 거룩한 자녀에게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충만하게 넘치기기를. God bless you God bless you.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거룩한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복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더 구속을 받는다고 착각을 한다. 자녀들이 고등학교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의견에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이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 스스로가 어른이라 생각하여 결정권을 가지려 한다. 물론 성인이기에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신앙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양육할 때에 확실한 복음관을 심어 주지 못하면 자녀들은 신앙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다.

자식이 죽는데 일류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식이 죽는데 세상의 성공과 출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마다 한국에서는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심지어는 유치원부터 대학교 입시를 준비시키며 우리 자녀들을 혹사시킨다.

일류 대학 합격이 내 자식을 복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자식을 복되게 만드신다. 기차는 레일 위에서 달릴 때 안전하다. 만약 기차가 나는 자유롭고 싶다며 기차 레일에서 벗어난다면 엄청난 사고를 겪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씀의 레일 위에서 인생을 달려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죽음이고, 멸망이고, 패망이다.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우리 자식들이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 참 행복이 있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말자.

우리 자녀를 복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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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