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는“역시!”라고!

“아이고, 물구경할 때가 아니어요. 우리 집에도
지금 물 차고 있는데…”

지난 1월27일 오후에 하늘이 뚫린 듯 바람 한 점 없이
일직선으로 퍼붓던 폭우로 우리 집 앞에 흐르는 하천이
걱정되어 나가 본 순간!

이미 다리는 넘쳐 온데간데없고 다리 난간만 양쪽에
삐죽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 집 이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랫집 정원에는 이미
물이 들어차 있습니다.

“세상에! 다리가 넘쳤어, 넘쳐! 아랫집 앞 정원도
물 들어와 있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삶을 누리고 있던 온 식구가
나의 비명(?)을 듣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후닥닥
뛰쳐나옵니다.

다리를 넘긴 엄청난 물은 우리 집 바로 옆 교회 주차장과
교회 유치원 놀이터를 이미 한강으로 만들어 놓았고
커다란 쓰레기통들이 둥둥 떠내려와 다리 난간에
턱 하니 걸쳐져 있습니다.

몇 시간의 폭우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점점 지경을 넓혀가며
길이고 주차장이고 다리고 다 삼켜버립니다.

우리 집 이층에서 바로 보이는 다리는
교회와 유치원으로 들어오는 다리이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다른 쪽 다리를
건너와야 합니다.

“어? 그럼, 우리 집 들어오는 저쪽 다리는 어떻게 됐을까?”

모두가 주섬주섬 비옷들을 챙겨 입고 물구경(?)을 간다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홀연히 사라집니다.

예로부터 불구경 물구경이 재미있다고 집에 남아있던 나도
옷가지를 챙겨입고 나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혹시?”

신문사로 사용하고 있는 더블게라지의 불을 켰습니다.

“혹시?”는 “역시!”라고!

순간 앞이 캄캄합니다.
카펫에 물이 차오기 시작하여 이미 삼분의 일은
물에 젖어 있고 점점 빨리 젖어 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책장에는 수천 권의 책이 빽빽이 꽂혀 있고
컴퓨터가 여러 대,
신문사 살림, 교회 살림이 구석구석 쌓여 있는데
이거 정말 큰일 났습니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허겁지겁 뛰쳐나가
가족들을 부르려고 빗속을 향해 달립니다.

열두 채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우리 동네 사람이 다 나와
염려 가득한 얼굴로 넘치는 다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보, 지금 물구경할 때가 아녀요. 우리 아래층에
물들어 와요~!”

가족 모두가 기겁하여 들어와 책을 옮기고 책장을 옮기고
컴퓨터의 전기선들을 올려놓으며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도 약간의 언덕 위에 우리 집이 있는지라
다행히 하천이 넘쳐 물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워낙 심한 폭우로 인해 벽을 타고 물이 들어오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역류하면서
바닥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지요.

바닥에서 카펫을 뚫고 슬그머니 올라오는 물이
죄악이 슬그머니 우리 맘을 물들게 하는 것처럼
소리소문없이 조용하게 카펫을 점점 적시고 있습니다.

급히 물로 넘친 다리를 건너
물로 가득 찬 거리를 헤치며
십분이면 갈 곳을 사십여 분 걸려
카펫 청소기를 대여해 오고
제습기를 사 오고
선풍기를 여기저기 틀어 놓으며
그렇게 난리를 치는 동안 하수를 넘친 물은
우리 집 들어오는 골목 어귀까지
차고 오릅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며 수습을 하고
미처 치우지 못한 책장 밑을 말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제습기와 선풍기로 말렸습니다.

이렇게 2번의 침수(?)를 겪고 난 후 다시 책과 짐들을
정리합니다.

“이 기회에 버릴 건 좀 버리고 치울 건 좀 치우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리만 조금 바뀔 뿐
꾸역꾸역 또다시 다 채워 넣습니다.

내 안에 꾸역꾸역 가득 채워져 있는 죄악들을
버리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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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