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스(Dux) 위에 그레이스(Grace)

치대를 합격하고 나서 방학을 한 어느 날, 아들 녀석과 드라이브를 할 때 찬양이 한 곡 흘러나왔다. ‘예수 늘 함께 하시네’라는 제목의 복음성가이다.

그 찬양 가사 중에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가사가 나온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제가 1학년 때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곡입니다.”

얼마나 공부하기가 힘들었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찬양을 하면서 공부했을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맘이 짠했다. 쉽지 않은 그 과정을 홀로 견딘 아들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아들이 대학교 1학년 입학 때는 사역 때문에 함께 가서 도와주지를 못했다.

훗날 아들이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를 떠올리며 그때 다른 부모들은 다 같이 와서 이것저것 구입해 주며 정착을 도와주었는데, 본인은 낯선 땅에 홀로 와서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에서 낯선 땅에서 홀로 도전을 해야 하는 유학생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사역 때문에 함께할 수 없었음에 그저 미안함이 앞을 가렸다.
“아들! 그러면서 크는 거다”라고 말은 했지만 그때 함께 가서 도와주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딸에게도 물었다. “너는 1학년 보내면서 어떤 곡을 들으면서 공부했어?”

딸은 자기는 공부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며 시크하게 대답했다. 딸은 혼자 방에서 공부하거나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끼리 각자의 방에서 화상 채팅을 켜 놓고 마치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듯이 서로 격려하며 공부했다고 한다.

서로가 경쟁자이지만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래, 도서관에서 공부하든, 화상 채팅을 켜서 서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공부하든,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든 그 모든 힘겨운 시간을 견뎌 주어서 아비로서는 참 고맙게 생각한다.

기도하며 공부했던 그 시간, 힘들어서 찬양을 들으며 공부했던 그 시간이 분명 너희들에게 큰 복이 되리라 믿는다.

치대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딸이 힘들게 공부한 노력도 있었지만 그 전에 항상 해 주던 말이 있었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거라.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도 없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 8:23)

그러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덕스 위에 그레이스를 잊지 말거라.”

영연방 국가에서 사용되는 덕스(Dux)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전교 수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전교 1등이 덕스(Dux)이다. 의대, 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스펙이 장난이 아니다. 전국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들은 다 모였고 수많은 장학금을 받는 별의별 최우수 학생들이 다 모였다. 정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주변을 보니 경쟁자들이 다 쟁쟁하다.

그들에 비해 우리 아들, 딸은 덕스(Dux)도 아니다. 장학금도 못 타 봤다. 조금이라도 장학금 타 보라고 장학금 관련 시험을 쳤는데 4점 맞았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물론 아들딸 모두 고등학교에서 성적은 항상 상위권에 있기는 했다. 그런데 지금의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는 거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이 느껴졌다.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주변에서는 덕스(Dux)였던 친구도 떨어졌다고 한다. 전교 회장(Head boy, Head girl)들도 도전했는데 치대에 못 갔다고도 한다. 도대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 거야? 물론 경쟁사회에서는 공부 잘하는 순서가 합격자 순서일 것이다.

덕스(Dux)들과의 경쟁일지라도 기죽지 말라 격려했다.
“덕스(Dux) 위에 그레이스(Grace)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능력보다 크다. 아들! 기죽지 마! 딸! 덕스(Dux) 위에 그레이스(Grace)가 있다.
너희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면 분명 너희들을 사용하실 거야.”

“똑똑하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은혜를 주셔야 들어간다. With God, nothing is impossible.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 덕스(Dux) 위에 그레이스(Grace)다. 역사와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이면 분명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붙게 하실 것이다. 공부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거라.”

이것이 1학년 내내 아들과 딸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은혜를 간구하기 위하여 아들, 딸은 최선을 다해 공부도 하였지만 더 중요한 기도의 자리를 지켰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었기에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다.

결과는 덕스(Dux) 위에 그레이스(Grace)였다. 덕스들이야 당연히 공부 천재들이니 합격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한 너희들이 더욱 더 복되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적이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이다.

아이들에게 치대 합격은 열아홉 살 인생에 경험한 너무도 소중한 은혜의 사건이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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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식
그리스도신학대학교(M.Div)와 침례신학대학교(D.Min)에서 공부했으며 청년사역과 다음세대 사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현재 뉴질랜드 대흥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크리스천 자녀교육에 대한 책 ‘하나님이 하셨어요’를 집필하였으며 그 내용을 본지에 연재함으로 다음세대를 어떻게 품어야 할지를 함께 공감하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