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그리스도인은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사람이다. 이 둘을 가장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성경은 잠언과 시편이다. 분주한 일상 중 잠시 시간을 구별해 잠언과 시편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다 보면 우리 안에 영적인 지성과 지적인 영성이 형성될 줄 믿는다.
성경이 말하는 지성은 전문적 지식이 아니다. 이는 참과 거짓, 본질과 비본질, 허무와 의미, 바름과 어그러짐,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영성 또한 신비적인 힘만을 말하지 않는다. 참되고 본질적이며 의미 있고, 바르며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힘을 말한다. 나아가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지라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미약하나마 잠언과 시편이 선사하는 지성과 영성을 맛볼 수 있길 소망하며 받은 은혜를 공유한다. 말씀으로 흥왕하여 하나님의 뜻과 시대를 분별하는 성도로 존재하고 기동하길 소망한다.
잠언 1: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은 지혜의 책이다. 역사 속의 수많은 위인이 지혜를 얻기 위해 잠언을 읽었다. 하늘의 지혜를 담은 잠언을 더 풍성히 습득하려면 서론에 기록된 저술/편집 목적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잠언의 첫 문단은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목적은 바로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고,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하게 하며 슬기와 근신함을 주기 위함이다.
위와 같이 풍성하고 구체적인 잠언의 목적이 성도의 내면과 삶에 이루어지기 위해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는 행위가 있다. 그것은 경청, 곧 듣는 것이다. 한글 번역에서는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경청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Let the wise listen and add to their learning (5절 NIV).”
예수께서 비유 후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신 것처럼 잠언의 유익을 나열한 후, 들을 귀 있는 자들이 그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청,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며 생각이 굳어질수록 듣기가 어려워진다. 분명 우리는 경청의 유익을 잘 알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내 말에 경청해주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즐겁고 위로가 되며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 대화 도중, 계속해서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생의 분주함에 경청할 의지를 내어주고 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이웃과의 진솔한 대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청의 비결은 무엇일까? 듣는다는 것은 잠언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는 경외감이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경외하면 듣고, 그렇지 않으면 듣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위자 앞에 선다면, 귀를 활짝 열고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20년간 점심 식사 자리를 경매 내놓고 있다. 2022년 그 3시간의 식사권은 246억 원에 낙찰됐다. 그 식사권을 얻은 사람은 워런 버핏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의 말뿐일까? 그의 제스처와 매너 모든 것을 눈여겨봤을 것이다. 그렇다. 경외하는 마음은 상대방을 향한 우리의 자세를 조정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지혜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만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허락된 귀중한 시간들이다. 이를 인지할 때 우리 안에 경외감이 샘 솟을 것이고, 그 경외감은 주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르게 할 것이다.
나아가 주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사랑의 대상으로 규정하신 이웃을 향한 우리의 자세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위로부터 난 지혜가 우리 삶에 의와 화평의 열매로 결실하길 소망한다.
시편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인가? 대중은 건강하고 좋은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복 받았다고 말한다. 친구도 많고 배우자를 잘 만나 덕을 보며 자녀들을 많이 낳은 이들을 복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지식과 돈을 많이 쌓고 사람을 부리며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삶이야말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복된 삶이다. 그러나 시편 1편은 복에 대한 통념을 깨뜨린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는 것이 복의 핵심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모든 것을 가졌어도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는 자는 복 없는 사람이다. 반면 아무것도 없어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자는 복 있는 사람이다.
복에 대한 이와 같은 성경적 기준은 금수저, 흙수저 따지며 복의 불평등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침묵시킨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남녀노소, 빈부 고하를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사람이다. 그런 이에게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그렇다면 고통도 복인가?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고통도 형통의 재료가 된다.
하나님의 형통은 성공, 장수, 재물, 자녀와 같은 일시적인 것들을 초월한다. 하나님의 형통은 참되고 영원하다. 이는 일시적인 시련과 시험을 넉넉히 견디고 이길 힘을 제공한다. 반면 악인들은 고난과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바람의 겨처럼 날아가 버린다.
인생은 고난은 연속이다. 극심한 고통 앞에서 우린 좌절과 수치와 무기력을 경험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견디고 이긴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승자이고 마지막에 서 있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다. 주의 말씀으로 풍성한 복된 2023년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