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기뻐할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즐겁게 할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세상 속에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술로, 도박으로 즐겨보려고 하고 여기저기 같이 세상적인 기쁨을 함께 즐길 사람을 찾아 다니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하고 비교할 때 다른 점은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에 시달리고 또 짜증스러운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 기쁘게 즐겁게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의 소원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기쁨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6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해 근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 그대로 여러 가지 많은 시험을 이 땅에서 경험합니다. 육체의 질병, 인간관계의 단절, 경제적인 시련 등등 형형색색의 시험을 만납니다. 이런 시험 앞에서 성도들인 우리들도 근심합니다. 근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본문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 근심을 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근심에 대해서 “잠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오히려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근심을 넘어선 기쁨, 이 커다란 기쁨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8절 말씀을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베드로는 그 기쁨을 이중, 삼중으로 표현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차원을 계산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최상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와 같은 독특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이 주는 것들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이 기쁨이 다시금 회복되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쁨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만 있는 기쁨입니다. 우리만이 알고 있는 기쁨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 안에는 이 기쁨이 계속 솟아오를 수 있는 이유가 3개가 있습니다.
첫째, 소망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기쁨은 아무런 역경이 없기에 가지는 기쁨이 아닙니다. 오히려 역경 속에서 가지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역경조차도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가지는 기쁨입니다.
6, 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이 우리에게 마지막 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는 여러 가지 근심된 일을 만나고 시험과 시련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 하반절에서 보면 믿음의 사람들이 시련을 당할 때마다 오히려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시련과 시험은 우리 믿음을 점검하는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시련을 당할 때 그 시련을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믿음의 시련을 이겨 낸 결과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자기의 인생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영원한 기쁨이 보장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는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그 사랑 때문에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랑은 항상 기쁨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다닙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 치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무엇이든지 다 주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대상을 발견했다고 합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사랑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가 알지도 못하던 때에 이 세상에 오셔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느니라”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주님, 사랑합니다.”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받는 자도. 사랑하는 자도 기뻐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특징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겨워 예수님을 온 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구원의 확신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까?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을 생각하면 너무 좋아서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곳에는 고통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죄나 유혹도 없습니다. 아픔이나 죽음도 없습니다. 영적 전투도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 주시옵소서.”하고 땀 흘리며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최상의 낙원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아들답게 광채를 발하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영원히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만 받으면 세상에서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가난하건 부하건, 실패했건 성공했건, 남에게 천시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생을 살았건 간에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구원입니까! 그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우리를 가장 보람있게 세상을 살다가 온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생을 살았든지 그는 성공자입니다. 구원을 못 받았습니까? 어떤 생을 살았든지 그는 실패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의미와 질을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구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구원받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잘 살았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구원만큼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바로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라운 기쁨을 주셨는데, 평생 이 기쁨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기쁨,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며 나오는 기쁨, 이 기쁨이 우리의 힘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으로 그 모든 현실의 어려움을 녹여 버릴 수 있습니다.
현실의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리는 더 차원 높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설혹 거지 나사로처럼 초라한 생을 살다가 간다 해도 절대로 후회하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보이는 것 때문에 기쁨을 추구하면 그것이 사라질 때 기쁨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 보이지 않는 값진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면 언제 어디서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이지만 믿음과 소망으로 구원의 은혜 안에서 기쁨과 행복의 주인공으로 사는 성도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