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려왔습니다. 그 중 하나의 제목은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왔습니다>입니다. 책을 고를 때 작가의 이름이나 이력, 출판사 혹은 서문 같은 걸 보고 정하기도 하지만 사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제목입니다.

마음에 들어서 펼쳐보니 여행기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왔습니다>라고 해서 너무 감동받아 빌려 왔습니다. 술술 읽히긴 했지만 제목만큼 다정하지는 않습니다. 다정한 사람을 만났다는 작가는 외국어도 너무 잘하고, 여행 경력도 많고, 젊고 매력적인 사람인 듯합니다.

호스텔에서 묵기는 하지만, 6개월간 남부 유럽을 여행하며 원하면 서핑 강습 같은 걸 받으러 다닙니다. 사교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하고 더구나 겁도 없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누구와도 친해지고 또 잘 어울려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친해지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만큼 비호감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이 있잖아요. 다정한 사람이란 말로 눈길을 끌었지만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그런 책입니다. 요 근래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음 한쪽을 툭 건드려 그 진동이 두둥 울리면 사실 제목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빌려 온 두 번째 책을 펼칩니다. 유명한 작가의 <소소한 풍경>이란 책입니다. 이것도 제목으로 고른 책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작가가 으리으리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읽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내 핸드폰에는 게임이 하나 있는데 직소퍼즐 입니다. 가보고 싶거나 가 본 듯한 풍경, 예쁜 정물화 같은 그림을 400피스 짜리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는 겁니다. 전화기에 있는 게임이라 조각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마구 섞여 있을 때도 방향은 한 방향으로 해놓을 수 있어서 옆으로 돌리거나 위아래를 뒤집어 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 두 가지 장점이 얼마나 큰지 아마 실제로 퍼즐을 펼쳐놓고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 퍼즐을 맞출 때 제일 확실한 것 하나는 모든 조각은 제자리가 있다는 겁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맞춰 나가는 순서가 다를 뿐이죠. 제일 처음엔 가장자리부터 빙 돌려 채워 놓습니다.

그 다음엔 색깔이나 톤으로 우선 골라서 하늘이나 풀밭 또는 바다를 맞춰 갑니다. 건물이나 나무 같은 건 색으로만 찾는 게 어려워요. 그럴 때는 퍼즐이 들어갈 자리가 어느 모양으로 되어 있는지 먼저 보고, 퍼즐 조각 중에서 색이나 톤에 현혹되지 말고 순전히 모양으로 골라 보는 게 확률이 높아집니다.

긴가민가 하지만 막상 딱 맞게 되면 주변과 사~악 어우러지면서 빛이 잠깐 비치는 것처럼 딸깍하는 그 순간이 참 좋습니다. 그림의 중앙에 들어갈 작은 조각이 눈에 확실해 보여도 그 조각을 비어있는 퍼즐 판에 미리 가져다 놓지 않습니다. 기다려야죠. 가장자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채워 옵니다.

최소한 조각의 네면 중에 한 면이라도 맞아야 그 조각을 거기에 놓습니다. 완성이 되면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하고, 추억의 장면이 되기도 합니다. 조각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은 어설픈 수 차례의 망설임과 계속되는 실패 후에야 이룰 수 있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건 제자리가 없는 조각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퍼즐을 맞춰서 근사한 그림을 완성하는 일이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기 위해 이건가 저건가 하면서 읽는 일이나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해 보는 일이 꽤 재미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얼마간의 시간이 또는 얼마간의 품이 드는 건 당연하잖아요. 음식을 할 때도, 젖은 머리를 말릴 때도 그런데요. 감기에 걸렸다 나을 때도, 틀어진 마음을 돌이킬 때도, 상처가 아물어 갈 때에도 말입니다.

기다림 구름이 촘촘히 겹겹이 박혀있어
하늘색은… 모르겠다
회색 되고 검은 구름 보이더니
하늘이 까맣다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지니
온 하늘이 물방울무늬

비가 된다는 건
그 많은 구름의 간절하고 치열한 소멸

비가 되어 내린다
후두둑 가랑가랑

구름이 비가 다 되지 않으면
하늘은 제 맨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된다는 건
비로 흩뿌려지려는 둥둥 떠다니던 물방울들의
단단하고 위험한 연합

기다려야 할지니
구름 되고 비 되어
온전히 흘러내릴 때까지

이전 기사“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다음 기사윤여정 배우의 성공
남궁소영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졸업, 은총교회 권사. 리테일 숍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음에 품은 소원 잊지 않기와 여행이나 소소한 일상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걸 찾아 내 글로 쓰고 싶은 보통 사람, 아님 보통 아줌마로 이젠 할머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