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이병익 목사<파머스톤노스한인교회>

오클랜드에서 파머스톤 노스(파미)까지는 자동차로 왕복 15시간 정도 걸립니다. 당일치기로는 힘들어서 저는 보통 이틀에 걸쳐 다녀옵니다. 작년까지는 위의 세 녀석이 오클랜드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일 년에 두어 번 다녀오곤 했습니다.

얼마 전 2월에는 막내아들까지 오클랜드 대학에 진학하게 되어서 짐을 싣고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왔습니다. 장거리 운전이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은 오클랜드 운전이 지루하다거나 너무 멀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겠지요.

불가항력적 은혜가 좋아요
이번에 막내를 기숙사에 데려다 줄 때는 오클랜드에서 3박 4일을 계획했습니다. 그래 봤자 가고 오는 날을 빼면 이틀 여유가 있을 뿐입니다. 큰아이들을 데려다 줄 때는 기숙사에서 부모도 하룻밤 잘 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지역 확진자가 발생하여 3일간의 Level 3 직후여서 그런지 기숙사 신세를 질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 은혜로 아내와 저는 귀한 지인의 집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의 정착은 올해부터 일을 시작한 큰딸이 마침 2주 휴가를 얻어 부모 대신 이곳 저곳 다니며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오클랜드에 지역 확진자 나오는 뉴스를 듣고 우리는 계획을 하루 앞당겨 큰딸을 데리고 오클랜드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 며칠 후 오클랜드는 다시 Level 3로 격상되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두 Level 3 경보 사이에서 순조롭게 오클랜드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우연은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저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모든 일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은 바이러스 감염 불안 때문에 비행기나 버스 이용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또 일찍 예매하지 못하면 매우 비쌉니다. 그래서 저는 딸이 휴가를 마치면 오클랜드로 태워다 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클랜드에서 내려오는 자동차 안에서 딸이 비행기 표를 알아보더니 모든 날이 다 비싼데 목요일 새벽 비행기만 59불, 마일리지 사용하면 23불이라며 망설이지 않고 그 비행기 표를 예매했습니다.

딸이 파미 집에 온 며칠 후에 오클랜드가 다시 Level 3로 격상되었으니 그때 비행기 표를 예매하지 않았더라면 오클랜드로 돌아갈 길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출발하기 전날인 수요일, 그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취소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딸은 전화기를 붙들고 1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려서야 항공사와 통화를 하고 결국 비행기 표를 요금 인상 없이 토요일 오전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사랑하는 딸과 이틀이나 더 함께 지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딸은 오클랜드로 잘 귀가하여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저는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구원만 불가항력적 은혜로 얻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불가항력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불가항력적 은혜란 우리의 구원을 성경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거부할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게 되어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자연인은 태생적으로 복음을 듣기 싫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역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원죄 아래에서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인은 성령의 일을 매우 재미없어하고 싫어하며, 십자가 구원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부활은 더더욱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므로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자연인은 복음을 깨닫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할 수 있었던 것, 두아디라 성의 루디아가 주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모두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며, 저항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10)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것,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적으로 큰 업적을 이루는 것, 이것이 자신의 선택적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을 붙잡게 만드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는 놀라운 일을 해내고 구원을 받게 된 모든 과정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 길도 그들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걷게 하신 길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을 걷는 내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복을 받으며 광야 40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나 지금 우리가 걷는 세상 광야는 똑같이 험하고 어려운 길이지만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도는 불가항력적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며, 성도의 삶도 불가항력적 은혜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거짓된 유혹이나 고난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