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행복

이은태 목사<오클랜드인터내셔널처치>

영어 단어 중에‘패션(passio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픔, 고통’을 뜻하는 라틴어 ‘passio’에서 나온 말입니다. ‘패션(passion)’의 파생어로 ‘컴패션(compassion)’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접두어 ‘컴(com)’은 ‘함께’라는 뜻이므로 ‘컴패션(compassion)’은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픔과 고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컴패션’긍휼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 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은 공생애 3년 동안 가난한 자, 병든 자, 창녀, 세리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셨고 마지막으로 친히 죄인이 되셔서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바로 긍휼한 마음입니다.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가난한 자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야 하고 고통받는 자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나눔입니다. 인생에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입니다. 나눔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나눔의 대상이 없고 나눔의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바로 참 나눔을 실천하며 생명까지 우리에게 주신 분입니다. 참믿음이란 바로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삶입니다. 이웃사랑의 첫걸음은 나눔이요 바로 구제입니다. 구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구제란 단순히 물질의 나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나눔을 의미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만을 소원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누리면서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즐비합니다.

믿음이 무엇이고, 신앙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눈에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웃이 보이십니까? 우리의 귀에 그들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있습니까?

아무리 믿음을 외치고 사랑을 외쳐도 내 이웃의 배고픔의 아픔을 함께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은 다 위선이요, 거짓이요, 외식입니다. 믿음은 종교의식이 아니요, 경건의 흉내가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수반하 게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지금 고통받고 있습니다.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납니다. 이곳 오클랜드 시티에도 한 끼의 배를 채우려고 끝없이 기다리는 노숙자들의 행렬이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이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 곳에서는 다이어트한다고 땀을 흘리며 살을 빼고 있지만 당장 한 조각의 빵이 없어 눈물 흘리는 우리 이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한 개의 빵 외에 그 어떠한 것으로도 사랑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빵 하나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닙니다. 빵 하나에 담긴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메말랐습니다. 조금만 절제하면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습니다.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물질로부터 자유 하는 삶을 살길 원하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언 19:17)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24–25)

우리의 행복의 근거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베푸는 마음, 베푸는 생활, 그리고 더불어 사는 생활, 그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긍휼한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기까지는 우리는 절대 자유 할 수도 없고 평안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주어야 합니다. 베풀어야 합니다.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이 적은 선행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27년 전 38세의 나이로 뉴질랜드 땅에 신학을 하러 왔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하는 동안 제 삶의 비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집을 팔아 가져온 돈은 다 떨어지고 영주권은 아예 신청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참담한 순간이 어느덧 지나가고 한 번도 꿈조차도 꾸어보지 않았던 은혜의 삶을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불쌍한 이들을 위한 조그만 긍휼의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마음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세상에 많은 기쁨이 있으나 나눔의 기쁨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이 기쁨이 나를 이끌어 주는 힘이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행복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도서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