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Pease, wear a mask!”

레벨 3를 지나면서 한동안 가지 않던 중국 마트를 찾았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한인 마트가 없는지라
라면 하나를 사더라도 동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으로 가야만 합니다.

그래도 감사하게 가까운 중국 마트에 가면
우리나라 라면이나 두부를 살 수 있어
가끔 가기도 합니다.

슬슬 먹을 것이 떨어져 갈 때쯤
다른 지역 이동이 금지된 상태인지라
가까운 중국 마트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향해
덩치가 나의 두세 배는 될 듯한 섬나라 아저씨가
두 손으로 연신 입 가리개를 하듯
손을 바삐 움직이며 외칩니다.

“Please, wear a mask!”
“Please, wear a mask!”

“엉!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겨?”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나처럼 마스크 없이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되돌려 보냅니다.

“N마트에는 마스크 없이 거리 두기만 하면 되었는데
여기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네?”

혼자 궁시렁 거리며 쫓겨 나왔습니다.
다행히 우리 성도가 얼마 전에 만들어 준 마스크가
차에 있어서 들어 가긴 했습니다.

그 후 다시 시작된 레벨 3에서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라는
정부 지침이 있어서 이젠 어디를 가든지
마스크 쓴 사람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써 본 적 없는 마스크를 쓰다 보니
숨도 막히고,
습기도 차고,
답답도 하고,
말하기도 불편합니다.

그런데 자꾸 마스크를 쓰다 보니 좋은 점도 많습니다.
화장을 안 해도 괜찮고,
처진 볼도 가려줘서 좋고,
입가의 팔자 주름도 안 보여서 좋고…

눈만 껌뻑여도, 눈으로 웃어주기만 해도,
고개만 저어도, 고개를 끄떡거리기만 해도
그저 통합니다.

그중에 제일 좋은 것은 많던 말이 줄었다는 겁니다.
여자는 하루 2만 단어를 말한다는데
이제는 만 오천 단어로 준 것 같습니다.

아내들은 한 마디를 백 마디로 늘려서 말한다는데
이제는 남편에게 팔십 마디로 줄여서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더 좋은 것은
점점 높아지던 내 소리가 좀 낮아졌다는 겁니다.
그렇게도 큰 내 목소리가 좀 작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의 소리도,
아이들의 소리도,
다른 이들의 소리도
더 잘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도 듣게 되었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가 깨져도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그 큰 음성을,

지축을 흔드는 지진 속에서도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그 소리를,

지진 후에 일어난 불 가운데서도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그 목소리를,

내 입을 다물고,
내 입술의 말을 줄이고,
내 소리를 낮추고,
내 목소리를 줄이고 나자
비로소 그때서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네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네, 하나님! 저는 지금 재봉틀 앞에서
<사랑의 손 마스크 보내기 캠페인>에 보낼
마스크 만들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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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