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라는 설교는 아마 교회를 다닌다면 한번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기독교를 그저 종교가 아닌 신앙으로 살아나가고 있다면 분명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인 기준으로 사는 것은 이타적인 사랑을 본받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학생부를 가르칠 때 교회에서 튕겨져 나가는 아이들 대부분이 근본적으로 왜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거나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무조건 거짓말하지 않고 모두에게 상냥하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생각하며 인간승리를 하고 희생하며 사는 것이 ‘그냥’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왜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왔거나 아니면 지금은 그 의미가 좀 희미해지진 않았는가 한번 생각해보길 원한다.
타락한 세상 사람들 vs 좀 더 나은 그리스도인
교회에 오래 있다 보면 사실 세상과 교회를 따로 구분하여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선민사상으로 가득했었다. 은연 중에 나는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기복 신앙적으로 내가 사람들보다 더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지 않았어도 나는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또 하나님의 큰 뜻 안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나도 하나님의 택한 제사장과 백성으로 나 자신을 높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우리 죄를 지심으로 우리의 삶의 주관을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꿔주셨기 때문이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 죄 사함을 받은 은혜와 감격으로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임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세상은 타락했고 교회가 빛이고 우리가 희망이라는 말을 섣불리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그 말이 맞는 말임에도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교회가 되는 순간 사람 위주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빛이 되고 세상의 소망이 되는 것이 아닌 동일한 죄인에게도 죄 사함을 주시는 그분 예수님이 빛과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바라볼 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든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든 그 안에는 똑같은 죄의 뿌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별 없이 사랑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뉴질랜드에서 학생부를 다닐 때부터 많은 간사들과 교역자들을 만나며 평신도로서 좋은 role model이 되는 어른, 혹은 청년들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짧은 이민 역사를 가진 뉴질랜드는 그 안에서 Korean Kiwi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충분히 본받을 만한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다는 이야기다.
고로, 다음 세대가 세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것이 21세기에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믿고 따라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란 것이다.
사실 이건 특출난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그저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도를 열심히 하는 집사님, 세상을 마음에 품는 청년부 선배, 모든 것을 평화와 형제애로 이끄시는 교역자들 중 아무나 한 명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교회 밖에 있는 다른 모임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 너무 많은 청년이 좋은 말과 좋은 것들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미화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집착한다.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입에서 미소가 끊이지 않고 남들이 보기에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바른 foundation에서 서서 다른 사람들도 보고 부러워하며 교회로 다가올 수 있도록 살아간다. 바로 super Christian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과 같이 돈과 명예, 그리고 보이는 것들로 세상의 마음을 훔치려 한다면 교회는 힘없이 무너질 것이다. 좋은 직장과 성적과 학벌, 그리고 재산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성과 위주의 노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궁극적인 방법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와서 깨달아가는 것은 내가 잘해서 하나님이 내 삶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보일 때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 와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중 하나는 형제들 간의 진실성과 투명함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이때까지 나의 성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나의 삶 가운데 나의 연약함으로도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육강식이 깊이 뿌리 박혀있는 이 세상에 우리 삶의 투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나님의 힘으로 해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힘이 작용하는 그 순간 자체를 드러내는 것 말이다.
우리의 가치가 하나님의 가치들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너무 닮으려 한 나머지 예수님을 통한 용서하심과 우리에게 보여주신 은혜를 우리는 삶에서 나타낼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